#14. '열심'은 제각기 다르니까

- 울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는 그들

by Kelly Kenye Kwon

올해로 43살이 되어 간다. 점점 꼰대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원하지 않았고, Position에 fitting 되지도 않는 대리가 플젝 룸에 들어왔다. 기존 멤버들과 같은 회사, 그러니까 나의 3년 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대리였고, 후반기에는 본부도 같아서 꽤 안면이 익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 친구의 background와 현재 플젝에 필요한 Position은 전혀 맞는 구석이 없었다. 그럼에도 팀장님은 부득부득 우리 룸에 그 친구를 배치했다.


나는 그 친구를 마냥 놀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인력,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직급의 사원이 들어왔을 때, 일을 쪼개고 나누어 주는 것도 일이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작년에 이어 올해로 2년째 하는 것이다.

대리들도 과장으로 승진했고, 클라이언트도 우리의 익숙함을 발판 삼아 더욱 가열하게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계약직으로 함께한 막내는 그동안의 다사다난한 일들을 모두 기록해, 그 친구의 노트만 보면 작년 역사를 다 들춰낼 수 있었다. (실제로 클라이언트의 황당한 뒤엎기를 막내의 노트 덕분에 뒤 막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대리에게 무슨 일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경험했던 산업군이 아니어서 제품 지식마저 전무했다.


그래도 대리의 태도는 매우 nice했기에 꽤나 적극적으로 일을 떼내어 분배해 주었다. 뭔가 해 보라는 식의 일들이었고, 실제로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을 주면 줄 수록 아래 직급에서 묵직한 소란이 발생하는 듯했고, 같이 일한 과장과 막내한테서 비공식적인 면담 요청이 자주 올라왔다.


문제는 그 친구가 매우 일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의 이해, 산업군에 대한 기본 지식까지는 가지도 않고, 기본기 자체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도 동기급의 과장과 연차 어린 막내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서로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직접적인 평가를 위해 내가 직접 가이드를 주고, 결과물을 챙기기로 했다. 결국 내가 끼고 일하기로 한 것이다.


10일 정도 지난 뒤, 나 역시 그 친구가 일을 매우 못하며, 더욱 심각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지, 그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되려 자신 때문에 플젝룸 분위기가 삭막해지고, 다른 멤버들이 피해를 입는 것만 걱정을 했다.

새로운 캐릭터였다.


천성이 착하고, 배려심이 넘치지만, 그것은 자신도 모른 게 얇게 쓴 가면 같아 보였다. 무엇이 착하고 배려하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없었다. 자신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매우 얕아 보였다. 다만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엑셀 파일을 계속 만들어내고는 있었다.


그런 상황이 쌓이고 쌓여 모두가 미적지근하게 불편해한 분위기의 어느 날이었다. 작년에 함께 일했지만 지금은 퇴사하신 부장님과 곱창을 먹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그 대리는 약속에서 제외가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모두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과 달리 대리와 나는 좀 심각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보고자 대리와 면담을 예정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늦어진 만큼 면담도 미뤄지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먼저 출발하라고 하고, 나는 일을 얼른 마치고 약속대로 나란히 앉은 사무실 책상에서 그대로 면담을 진행했다.


"서대리, 적응하느라 힘들지?"

"아닙니다. 제가 되려 폐가 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폐...라는 단어는 사무실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거 아니잖아. 그런 생각보다 서대리가 왜 이렇게 적응이 안되는지 혹시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지 싶어"

"아 네... 사실은 집에서 매일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왜 그런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저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그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그냥 멍해지는 것이... 집중이 잘 안돼요"


..."도움이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집중이 잘 안돼요"...


애매한 단어들이 귀에 걸렸다.

'도움?, 지금 무슨 사회봉사하러 나왔나?'

'집중이 안돼...?, 이 말이 지금 사무실에서 할 말인가? 무슨 학습 상담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긴장감 떨어지는 말을 할 수 있지?'


더 의아한 멘트는 '저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였다. 그래. 그 친구는 스스로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PM인 나에게 '집중이 안돼요....'라는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눈물까지 보이며 울먹였다.


저 친구의 감정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 '집중이 안된다'를 태연 작약하게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를 보면 그냥 naive 한 건데, '저는 한다고 하고 있고, 매일 밤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봐요'를 보면 또 뭔가 고민하는 거 같기는 하다. 이래저래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인내심을 발휘해서 얘기했다.


"천성이 주변을 먼저 생각해서 그런 거 같아. 하지만 여기는 성과를 내야 하는 사무실이야. 긴장감은 항상 맴돌기 때문에, 그런 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곤란해. 이 프로젝트에서 본인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조금 더 대리답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네"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고, 그 친구는 작년 자료를 보겠다며 나름 '열심'을 부려 더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신규 플랫폼의 기능을 익히고, 작년 보고서를 더 보기를 바라면서도 그 양이 만만치 않을 거 같아 '너무 늦게까지 하지는 말아'라는 말을 해 주고, 곱창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그 친구는 한결 해맑게 나타났다. 어제 많은 소득이 있었나? 싶어 물어봤다.


"서대리, 어제 많이 늦었어? 저녁도 같이 못 먹었는데 배고프게 퇴근했겠다"

"아니요. 어제 폴더 정리만 하고 1시간 정도 뒤에 나와서, 햄버거 먹고 집에 갔어요."


"폴더 정리 1시간?"

"햄버거?"


'얼마 전에 합류했으면서 1시간 동안 정리할 파일이 뭐가 있지?, 그 불편한 면담 뒤에 햄버거를 먹었다고??'


이게 이 친구가 부릴 수 있는 '열심'의 최고치인가? 다양한 생각이 오고 갔다.

어쩌면 '열심'이라는 상대적 개념의 단어에 (내 안의) 절대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상대적이라 할지라도 상식선이란 존재하지 않을까? 그마저도 없는 완전한 상대적 개념의 ‘열심’인가?

폴더 정리 1시간이 눈물까지 보이며 열심히 하겠다고 한 직후 할 일의 전부라면... 도대체 서대리의 '최선'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천성은 착하니까(!) 가식과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겠다.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디까지 순수하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될 뿐이다.


아,,, (꼰대라 불리더라도) 혼자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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