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다시 신경정신과에 갔다

- 3년 만에 약을 받아왔다

by Kelly Kenye Kwon

calm down

- 판단을 잃은

byKelly Kenye KwonJul 25. 2020

조용해지고, 고요해지고, fresh 할 때 조용히

고개 드는 판단력.

주장하는 바가 무엇이든 내 머릿속이 맑아졌으면 좋겠다.


망원동 술집에서.

레즈비언 커플 옆에서 술 마시다

- byKelly Kenye KwonJul 04. 2020

한라산을 마시면서 일탈을 꿈꾼다. 비굴하지만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결심

byKelly Kenye KwonJul 27. 2020

터널 속을 지난 기분이다. 가장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걸 다 했다. 새벽에 소주를 마시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부모님 댁에 가서 몇 마디 갑갑한 대화 후 울화를 풀 듯 화를 내고 왔다. 집으로 돌아와 밤이 깊어질 때까지 늘어짐과 잠드는 걸 반복했다.

일요일 밤 11시. 나는 집 정리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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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려는 결심을 철회한 뒤, 내면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책임감으로 지속되는 상태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인내심을 요구했는데, 그동안 몇 번의 퇴사 통보, (공감능력이 거의 없는) 팀장 과의 면담, 결심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내 안의 모든 에너지는 소진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몇 개월 남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버티려고 했었다.

그 과정에 항상 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거의 알코올 의존증에 상태였던 것 같다. 퇴근 후 캔 맥은 당연하고, 그것조차 감흥이 없어 혼자 Bar에 가거나, 불금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하더라도 헤어진 뒤 혼자 2차, 3차를 갔었다. 제정신으로 있는 게 불안할 만큼 '현재의 상태'가 괴로웠었다.


당연하게 건강과 정신력은 약해지면서, 신경세포는 날로 예민해져 갔다. 결국 제대로 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회사에서도 작은 일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3년 전에 앓았던 섬유 근육통 같은 증세도 나타났다. 출근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팔다리가 쑤시던 어느 날, 감기에 걸려 타이레놀을 처방받듯 정신과에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부터 다니던 신경 정신과가 있다. 화정역에 있는 작은 이 병원은 일종의 나의 감정의 쓰레기통 같은 곳이었다. 내가 온갖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으면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말로 시작하나 결론적으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상담을 해 주곤 했었다. 그래서 약물 치료가 끝나고 나서도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 때마다 가서 5-6회 정도 상담을 받곤 했었다.

예약을 하려니 역시나 토요일 상담은 3주 뒤에나 가능했다. 약 처방이라도 받을 심경으로 오전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안면이 있는 환자이다 보니 의사 선생님도 약간의 상담과 함께 '약하고 부작용 없는 수준'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국에서 받은 두툼한 약봉지를 꼭 쥐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 잠실로 가는 길에, 나는 무슨 진통제라도 투약하듯이 약을 급히 삼켰다. 그러지 않으면 회사에 도착해서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감정의

폭발을 경험할 것 같았다. 나를 추슬려야 했고, 달래주어야 했다. 스스로 그럴 힘은 진작 소진되었고 이 처방약이 그렇게 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냈다. 약은 내 분신처럼 꼭 붙어 다녔고, 급격한 감정 기복은 줄었지만 처음 복용했을 때 느꼈던 약 기운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중독은 아니지만 감정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머리 회전이 둔해져 의사 판단이나 기억력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사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많은 약들은 그런 부작용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약을 먹을 때와 먹지 않을 때의 감정과 의사 판단의 상태는 분명 다를 것이다. 동시에 온 몸을 휘감은 근육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을 가기 전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던 심신의 상태를 약으로 버틴 것이니, 퇴근 후 혹은 주말 동안은 거의 시체와 다름이 없었다. 움직일 수도,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이 되어 모든 약속을 미루고 보류했더니 생활은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몇 달간 방문을 못한 부모님 댁에 간 그날, 나를 걱정해 차려주신 삼계탕을 앞에 두고 엄마에게 분풀이를 해 버렸다. "왜 나를 이렇게 낳았냐고"


회사 생활이 버거울 때마다 정신과 약을 받아먹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어떤 회사도 2년 넘게 다니지 못하는 나의 얕은 인내심도 치 떨리게 부끄러웠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고 살았는데 어떤 장벽을 마주할 때마다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 같았다. 냉정한 태도로 이성적으로 상담해주던 의사도 이번만큼은 내 상황을 이해한다며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고 했고,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지금 퇴사하는 게 실패하는 건 아니라고 응원해 주었지만, (누구로부터 받은 것인지조차 희미해져 버린) 모멸감과 패배감은 내 안에 딱지처럼 굳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계속 가라앉게 했다.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시는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부모님 댁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은 마치 동굴 같았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를 옭아매는 어두운 감정들을 모두 털어내고 싶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술 같은 일탈도 아니고 명상 같은 자기 안위도 아닌, 원인이 되는 것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결국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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