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거다
(배경그림 Managing your energy by Paweł Jońca @ behance.com)
연달아 퇴사 메일을 보낸 나에게 팀장은 메신저를 보내 면담을 요청했다.
- 힘들면 1달 휴가를 다녀올 것
- 프로젝트에서 제외해 줄 테니 다른 플젝에 들어갈 것
- 같이 클라이언트에게 혼쭐을 내준다.... 등의 원하지 않는 옵션만 내밀었다.
책임감이 강한 나는 나를 대체할 프로젝트 매니저를 넣지 않고, 내가 없으면 아래 과장들을 올려서 가는 방향으로 간다는 말에 움찔했다. 내가 내 발목을 잡았다.
"이 회사에 잔류하면서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밑의 과장들 고생하는 거 뻔히 보면서..."
이 말이 구실이 되었다.
어쨌든 클라이언트와 한판 붙기는 했고, 그 역시 보기 좋게 KO 패를 당했다.
결국 나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틀 내내 생각을 거듭한 결과, 내가 패배를 당한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안의 다른 자아, 즉 '사회적 자아' 임을 알았다. 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책임감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책임감을 부릴 만큼 나에게 소중한 일이든 아니든 간에 일이 주어지면 끝까지 했다. 그 신념 하나로 지금까지 사회생활해 온 것 같다. 그 책임감에 난 또 다른 내 안의 자아인 '자유 일탈 자아'를 내밀지 못했다.
프로젝트는 12월에 끝이 난다. 앞으로 6개월이나 더 고생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1월부터 퇴사를 겨냥해 온 나에게는 정말 긴 시간이다. 그 사이 내 자유 일탈 자아는 어떻게 될까. 표출되지 못해서 기형적이고 히스테릭하게 발현되지는 않을까?
이틀 동안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안의 '파괴 본능'을 인정했다. '자유 일탈 자아'의 에너지원이 되는 본능인데, 사회 구조나 시스템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본능이다. 그 내적 세계가 뚜렷이 어떤 구조를 띄지 못한다 해도 상관이 없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내게 일종의 숨 쉴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3년 간 그 행위를 하지 못했다.
나에게 퇴사는 일종의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런데 나의 사회화를 도와준 '책임감'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팀장에게 너무 많이 말했나?'
'한 번에 강하게 말했어야 하는데, 너무 징징거린 건가??'
'팀장 전략에 말렸어...'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나는 앞뒤 안재고 '나가겠습니다' 할 만한 사람이 못되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느꼈다. 6개월만 더 참으면 당당히 퇴사를 할 수 있다.
생존 본능을 따라 회사가 아닌 곳에서 삶을 꾸려보려고 어찌어찌 노력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그냥 아무 일도 안 할 것 같다. 작년부터 생각해 놓은 에세이를 쓸까 했지만 그 조차도 미루고 싶다. 그냥 아무 일도 안 할 것이다.
6개월간은 아주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안에 여러 자아가 있는 게 참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