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퇴사 1일 차

by Kelly Kenye Kwon

(사진출처 : https://www.behance.net/gallery/102468207/tear-away?tracking_source=search_projects_recommended%7Cleaving%20the%20company)


그렇게 폭풍 같은 감정상태를 겪고 나서 퇴사를 감행했다. 팀장과 면담, 팀원과 면담, 고객사와 con call을 통해 내 퇴사는 차근히 진행되었다.

보고서 일정 도중에 나올 수 없어 퇴사가 결정된 후 한 달 보름을 다녀야 했다. 나 없이 팀원과 직접 얘기하는 상무님의 PM passing communication은 예상되던 바였고, 팀원들이 은연중에 나를 왕따 시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냥 조용히 물 흐르듯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무식'할 정도로 성실해서 멀게만 느껴졌던 퇴사일이 되었다.

코로나로 송별회는 어려웠고 (그간의 분위기를 보면 정말 잘 된 일이었다), 회사 근처 송리단길에 있는 이탈리안 브런치 식당에서 점심 식사로 대신했다. 연간 프로젝트를 운영하다 9월에 그만두는 PM은 할 말이 없는 법이다. 조용히 식사만 하고 조용히 있다가 짐을 싸서 나왔다.


9월 11일. 지난주 금요일 저녁이었다. 집에 저녁거리도 없고 속이 왠지 메슥한 것 같아 평소 잘 먹지도 않는 마라탕을 먹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라 맛있게 먹었지만 밤새 배탈이 나서 새벽에 깨고 말았다.

주말 내내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 퇴사 축하로 집에 왔고, 다음 날에는 큰언니와 형부는 반찬을 싸와 백수 동생의 냉장고를 채워준 뒤 새 출발을 축하한다며 맥주와 치킨을 먹고 갔다. 모두가 수고했다고 했다. 나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이지만 월요일 출근이 없다고 생각하니 훨씬 평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백수가 되더라도 지인들이 준다는 알바 일을 해가며,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에세이를 쓸 생각이었다. 사실 회사 생활이 참기 힘들었던 건 글을 쓸 심리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컸다. 경력과 연봉을 모두 포기하고 확보한 시간이니 원하는 만큼 글을 쓰면서 누리면 될 것인데,,,

마음이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사실 이 애매모호한 감정은 주말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근원을 알 수 없어 과거 있었던 일기장을 내내 읽어 내려갔다. 원하는 상태를 만들었는데 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가... 우울하고 알 수 없는 비문으로 가득 찬 일기장을 읽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문장 한 줄을 끝까지 쓸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생각으로 가득 찼던 지난날을 종결하고, 원하는 상황을 이룬 시점에서 난 어떤 감정을 취해야 할지 노선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며칠간은 더 우울해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글을 쓴다고 바로 돈을 버는 게 아닌데, 이렇게 현실감 없이 있어도 되는 걸까'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다니! 좋긴 좋은데 이렇게 좋기만 해도 되는 걸까'


그 길고 길었던 (나와 혹은 타인과의) 투쟁으로 원하는 상황을 이루고도 마음껏 좋아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역시 그 패배감 때문이었다.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나왔다는 자책감.


한 때 자기 검열이 없는 사람들을 멸시한 적이 있었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자기 검열이 작동하여 지금의 나를 프로젝트 도중에 나온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멘탈과 체력이 너덜거렸던 상황은 전혀 참고가 되지 않은 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를 불행하고 못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했고 그러다 보니 약해진 멘탈에 누군가의 한 마디에 더 민감하게 굴었다. 이미 상담으로 다 파악한 부분이고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동하고 말았다.


퇴사는 좋다. 출퇴근은 말 그대로 '쳇바퀴'처럼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회사 내 많고 다양한 부조리는 무뎌지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일정대로 지키는 편인 나는 백수여도 생활이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시간표대로 지낼 수 있어서 더 좋다.

이런 좋은 점을 잊지 못해 퇴사를 해 놓고 좋아하지도 못했다.


I am... I am...

'I am 만트라'라는 것을 상담에서 알려줬다. I am, I am을 불경 외우듯이 끊어지지 않게 반복하는 건데 그 뒤에 어떤 형용사나 명사가 떠올라도 생각을 멈추고 그냥 I am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 무엇도 아닌 나.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3주 전에 그 말을 듣고도 아직도 이렇게 스스로를 규정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I am ... working at the company OR I am... freelancer... 무엇이 오는 게 중요하겠는가. 나는 그냥 나이다.


임경선이 말하는 '나는 나야. 그러니 어쩔래...?' 식의 자존이 아님은 확실하다. 지금 마음으로는 어떤 회사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동시에 내가 회사에 있거나 프리랜서를 하는 게 무엇이 중요할까 싶다. 내가 바라오 던 길을 찾고, 그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게 더 ‘삶을 사는 것’에 가까운 거 아닐까.


바라 온 던 길은 희미하게나마 찾은 것 같으니, 이제 성실하게 걸어갈 차례이다.


- 매거진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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