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greedy
지금 여기는 Boracay Diniwini beach, Spider house 이다.
말 그대로 절벽에 매달리 듯 있는 이 리조트의 가장 큰 장점은 잔잔하고 낮은 바다가 바로 방갈로 해변 아래로 뻗어진다는 점이다. 7년 만에 오니 확실히 사람이 많아졌다. 아마 성수기 일 수도 있고, 여기도 붐비는 곳을 피하고 싶은 마음들이 작용한 것이리라.
내가 돌아온 지금 여기서 난 Greedy, 즉 욕망과 욕심에 대해 쓰려고 한다.
내가 그 동안 삶에 대한 투지라고 자부했던 그것들은 어쩌면 비루한 욕망일 수 있다.
내 안의 잠재된 모든 껍데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면서 드러나는 내 속살들.
난 피부 박피를 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아봐야 했었다.
모든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겨보니. 하나 둘씩 보인다. 내 안의 허상과 욕심들.
세상은 하나 둘씩 그렇게 껍데기로 이뤄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진짜 진짜라는 게 있을까. 진실, 정의만큼 또 허상적인 게 있을까.
언제나 우리는 허상 속에서, 그리고 진실이라고 자부하는 그 자위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내 행위의 끝이 어디인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 흘러간다.
하지만 난 우리가 하는 그 모든 행위 안에 거짓, 자위, 속임수, 그리고 기만이 섞여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매사에 가진 내 입장과 태도가 얼마나 허위적이고 (그게 남이 아닌 내 자신에 대한 이득이라 하더라도) 헛된 것인지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뭘 더 하겠냐고? 그냥 그렇다는 알고 싶었다. 아이러니 하게, 더 깊은 진실을 알고 싶어서라면 우스울까. 헌데. 그냥 우리 안의 욕심과 기만을 좀 꿰뚫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위선과 허위를 들춰내고, 리얼을 찾는 현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는 찰나에 대한 진심을 기억하고 싶었다.
찰나에 집중할 수 있을 때, 인생에 진실될 수 있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 ‘리얼’을 외쳐대는 이 시대에, ‘리얼’을 찾아보려 하는 건 찰나에 대한 집중이 점점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갈 때에도, 맛있는 집을 갈 때에도, 여행을 갈 때에도 우리는 본능을 잃어가고 정보에 기댄다. 그것도 찰나적 정보.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은 본능적 감각이다.
순간에 끌려 맛집을 들어가고, 느낌이 좋아서 여행지를 선택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들 것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사람으로 연결되는 것. 내 느낌이 끌려서 하는 뭔가의 선택은 가장 솔직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지금은 가장 대책 없고, 무책임한 결정처럼 치부된다.
예전에는 정보에 의한 의사결정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의사 결정이 나뉘어져 있었다. 헌데, 지금은 대부분의 것이 information 기반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난 욕심을 쓰고 싶었다. 내 안의 욕심들. 세상의 욕심들, 그리고 타이틀과 껍데기에 대한 허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로 부려지는 내 안의 위선들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대면할 수 있는 위선의 순간들.
전공을 결정할 때
직업을 선택할 때
배우자를 결정할 때
친구를 대할 때
부모를 대할 때
동료를 대할 때
이직을 할 때
사랑을 마주할 때
이별에 처할 때
시민적 도덕성 앞에서
사회적 지위가 쌓여갈 때
내가 가진 허위의 종류들.
가정환경과 무관하게 학벌에 대한 욕심이 과했던 나는 그것 만이 나를 내세워 줄 유일한 길이었다. Hungry 정신이 꽤 늦게까지 이어진 우리 집안 분위기 탓일 수도 있다. 난 78년 생이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 강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위로 많은 언니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버지로부터 그저그런 자식으로 밀려났고, 그나마 공부의 싹이 보였던 나에게 아버지는 극간 충족되지 못한 가다듬지 못한 무례한 욕구를 풀려 했었다.
난 그런 분위기의 희생자였다. 자기애가 강했지만, 대부분의 자기애가 강한 이들이 그렇듯 인정욕구도 많았다. 비뚤어진 기대를 하는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은 나에게 비뚤어진 가치관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타이틀에 대한 열망이다.
난 좋은 학교 소위, sky라 일컬어지는 조금 넓혀 이화여대까지 포함해 상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그곳들에 대한 로망이 가득했다. 그곳을 나오며, 자연스레 아버지 앞에서도 당당해 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사실 그들의 논리대로 그곳을 나오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땅덩이 좁고 사람 많은 이 곳에서 기댈 것은 단 하나. 그 인간의 능력 뿐이었고, 사대주의 강한 한국 사회에서의 능력이란 학업 능력, 즉 학벌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뚜렷한 목표 의식 없고, 적당한 머리로 갈 수 있는 지금의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물론 한국에서 높이 쳐주는 sky는 아니었고, 여기서부터 나의 열등의식은 시작되었다. 항상 갈등 구조였다.
강한 자기애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래도 간판은 필요하다는 이 딜레마.
난 그 덕분에 자기일을 하는 부류에서는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을 마련한 사람으로, 학벌 좋고 좋은 곳에 취직한 부류에서는 자유롭고 사회적 잣대에 기대지 않은 주관있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둘 다 원하던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두 시선을 모두 적당히 즐기며 지내왔다. 그렇게 한 20년을 지내왔다. 그리고, 지금 38세. 경력 9년차에 이른 리서처. 자비를 털어 간신히 책 한 권 낸 미숙한 작가. 이게 내가 위치한 자리이다.
두 영역을 놓치기 싫어서 경력은 퐁당퐁당 공백이 생긴다. 리서치 경력으로 봐도 그렇고, 작가 경력으로 봐도 그렇다. 여기저기도 가지 못하는 내 경력으로 지금 난 혼돈에 쌓여있다. 한 우물을 깊이 파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적합하지 못한 게 또 아쉬운 거다. 난 모두를 만족시켜야 만족했던 것이다.
이렇게 욕심을 부려 쌓여간 내 인생은 갈팡질팡이 되었다. 그럴수록 난 누구에게 들이밀 수 있는 확실한 것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것은 점점 내 본능과 멀어진 현실적인 게 되어갔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점점 자아가 강해지는 나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그게 나에게 뭘 남겼느냐. 이게 내가 바라는 것인가 등등의 질문이 나이가 든 만큼 더 농익어서 날카롭게 마음을 두드렸다.
결국 난 나를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난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지금 내가 위치한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엇이 날 밀었는지. 모든 게 남의 탓일 순 없지만, 어디까지가 내 바램이었고, 내 욕심이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적어도 이 모든 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었어’라고 미화시키는 단순무식 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은 에세이를 결심하게 되었다. 욕심에 대하여.
내 결정이었다고 오해하고 있는 욕심에 대하여, 타이틀에 대한 동경, 그 이후의 헛헛한 달콤함에 대해 반추하고 싶었다.
순전히 내 얘기를 하고 싶다. ‘본능, 진실, 간판, 욕심……’처럼 개인적인 이슈는 없을 테니, 남들의 사례를 들먹이고 싶진 않다. 내가 저질러 온 너무나 많은 착각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고 싶었다.
나이 마흔이 다가오면 이정도의 인생의 반추는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 초안을 잡으려고 왔는데, 일기가 되고 있다. 어떻게 풀어나갈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