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지만

by 래소

“저는 실비보험이 없습니다”라고 환자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생리 때마다 배가 아픈 40대 여성이 자궁 관련하여 보험을 하나 들까 한다며 제게 질문을 해서였습니다. 본인의 복통이 자궁근종 때문인 것 같은데, 혹시나 큰 수술을 하게 될까 봐 지레 겁을 드시고, 보험을 먼저 들어놓고 6개월 후에 병원에 가 볼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실비보험이라는 단어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설명을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실손형 개인의료보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비용을 제외한 비급여를 포함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실제 병원비를 보장해 주는 사보험의 하나로, 의료실비보험이라고 도한다.

제가 실비보험이 없는 것은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가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제가 병원 문을 열고 있는 시간은 다른 병원도 문을 여는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바쁜 직장인들도 병원 갈 시간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플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이 바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의료보험이 되는 범주 안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낙후된 의료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보험공단에서 보험 적용을 해 주는 정도의 치료라면, 획기적으로 병이 나아지지 않을지는 몰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불편이 없도록 치료 범위를 설정했을 거라는 보험공단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희귀병 환우들의 약이 보험 적용이 안 되어 개인 부담이 어마어마하다는 소식이 들려서 저의 믿음이 흔들리기는 합니다. (제 믿음을 지켜 주기 바랍니다. 보험공단 관계자 여러분!) 치과 스케일링을 1년에 두 번 하면 당연히 치과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저는 1년에 한 번만 합니다. 보험 적용이 1년에 한 번만 되거든요. 보험 적용이 안 되었던 시절 몇 년씩 스케일링을 안 받은 적도 있는 것에 비하면 제 치아를 위해서 국가가 힘을 써 준 겁니다. 제 치아 관리가 허술하다고 말씀하실 분이 분명 있으시겠지만, 예를 들어 보험이 되는 범주 안에서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저마저 실비보험을 들어 사보험 시장이 늘어나면 ‘요즘 실비보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며 대부분의 진료를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로 하는 병원이 많이 생길까 봐 너무 앞서 걱정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이미 사보험 시장이 많이 커져서 병원에서 진료 보기 전에 실비보험 있는지부터 물어보는 곳도 있다고 하니 저 하나로 사보험 시장이 줄어들지는 않을 듯합니다.

우공이산일 거라는 믿음으로 앞으로도 실비보험을 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에게까지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건강에 위험신호가 왔을 때 도와주어야 하는 한의사가 건강 위험을 대비하고자 하는 보험을 들겠다는 사람에게 그 준비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좀 역설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적극 권장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묻지 않으시면 실비보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료실비보험 청구를 했다가 기대보다 많은 금액을 받지 못한 분들과는 실비보험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한의사로서라기보다는 아는 사람과의 수다로서요. 그래서 갱신을 하지 않은 환자분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여자 환자분에게는 왜 실비가 필요한지 짐작이 가시나요? 자궁근종을 스스로 의심하게 된 건 친언니의 수술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친언니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근종이 많이 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술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배를 열어서 하는 개복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고 작은 구멍을 통해 기계로 하는 복강경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개복수술은 배를 절개하고 하는 것이니 당연히 흉터가 큽니다. 상처가 아무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요. 복강경수술은 고가의 수술답게 구멍이 1개에서 3개가 생깁니다. 3개일 때는 그중 하나는 배꼽으로 하는 거라 배에 흉터는 작은 구멍 2개가 됩니다.

한의사들은 배꼽에 구멍 뚫어서 하는 복강경을 꺼리는 편입니다. 배꼽은 신궐이라는 혈자리로 《침구혈명해》에 ‘선천에 있어서는 연결해 주는 꼭지이고, 후천에서는 기가 모여 있는 곳인데 이 사이에는 원기가 항상 존재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기가 항상 존재하는 곳에 구멍을 뚫어서 원기가 손상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여자, 남자를 떠나 자신의 몸에 큰 수술 자국이 남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언니분은 개복수술을 선택합니다.

“내 나이에 흉터가 무슨 대수라고, 난 그냥 할란다.”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환자는 ‘언니가 돈이 아까워 저러나. 나라도 내주고 복강경 하라고 할까’ 하며 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어찌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보험부터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병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고 보험을 드는데, 그 환자분은 6개월 사이에 자신의 자궁근종이 커지면 보험 혜택을 못 받다며 더 큰 두려움으로 6개월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존에 환자들에게 비급여로 시술되던 치료법을 급여화를 추진하여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를 줄여 주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어느 것을 먼저 급여화할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병원 치료를 받기 전부터 금액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현상은 줄어드는 사회이기를 바라 봅니다.


<작은책>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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