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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Jan 31. 2021

갤러리스트의 삶, 치열한

             

            

전시 하나가 끝나면 그다음 전시까지 일주일에서 10일 사이의 기간이 남는다. 잠시 전시가 없는 때마다 여유롭게 하루 종일 책 원고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게 웬걸? 다듬어지지 않은 채 겨우 분량만 채운 글만 출판사 편집자님께 가까스로 넘기다가 벌써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시 중일 때는 갤러리에 출근하여 손님을 응대하고 작품 판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없고 전시가 끝나도 또 그다음 전시를 위한 자료 연구와 전시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게다가 유튜브 촬영은 늘 못다 한 숙제처럼 따라다니며 업로드를 일주일 이상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구독자와 팬들이 신경 쓰이며  미안한 마음에 새로 댓글이 달린 알림이 뜨면 못 본 척 닫기를 누른다. (나중에 댓글 달아야지 하며)                

강연이나 세미나가 생기면? 그땐 책 원고는 저 뒤로 밀리고 만다. 그나마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날엔  잠 이아니라 실신을 하게 된다. 실신이나 기절 같은 잠은 12시간 이상으로 이어지고 자고 일어나면 자책하게 된다.  아이고 책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원래도 정신없이 살던 나는 갤러리를 서울에 확장한 뒤 더욱 아비규환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멋진 모습보다는 나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갤러리스트를 꿈꾸는 독자가 있다면 갤러리스트 일이 지식인의 막노동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보다 덩치가 큰 100호짜리 작품 정도는 거뜬히 들 줄 알아야 하고 공구를 다루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힘을 쓰는 일이 많다. 게다가 디자인 감각과 포토샵 일러스트 사용은 물론이고 외국어 소통과 세일즈 마케팅 능력까지 있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팔방미인이 아닌가?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현재를 살아가는 예술인들에게 또 다른 필수요소가 되었기에 랜선 트렌드 감각도 장착되어야 한다. 미술사적 지식은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하고 미술시장의 흐름도 살펴야 한다. 투자와 결정을 할 때는 앞뒤 안 가리고 밀고 나가는 승부사를 둘 줄 아는 사업가 마인드도 있어야 한다.  작가가 작품 이어나갈 수 있도록 센스 있는 말은 물론이고  작품 판매로 실질적인 위로와 힘을 줘야 하고 때로는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조언도 던져야 하며 컬렉터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인간관계의 만렙이 되어야 한다. 물론 갤러리에 찾아오는 어린이 관객까지 따뜻하게 맞이하는 서비스 마인드까지.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기절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물론 기업처럼 운영되는 대형 화랑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나는 오늘도 회사였다면 몇 개의 부서가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소화해내고 있다.  결국 내 인생에서 이 미술일을 계속하는 한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쓸 수 있는 시기는 오지 않을 것임을 것을 깨달았다. 전시와 일을 만드는 것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젠 10년 만에 어렸을 적 친구를 만나며 20년 전의 예술고등학교 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넌 똑똑했었어, 놀 거 다 놀고 공부도 잘했고 그림도 꽤 잘 그렸잖아 ”


노는 것에만 특출 나있던 친구와는 놀 때만 함께하고 공부하거나 레슨 받아야 할 땐 그 친구들이 농땡이를 쳐도 혼자 그룹에서 빠져 독한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난 놀아버리고 일할 때도 멈춤 없이 한다. 문제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논다는 것이지만. 아주 생산적이거나 유희적이거나 아님 끝장나게 자던지 셋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삶, 내겐 보통의 시간이 없다. 이렇게 살았는데 애초에 책을 쓰면서 여유를 부린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책도 전투적으로 썼어야만 했다. 쫓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어느 순간 나의 일상 리듬이 되어버렸으니.               


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다. 예술 고등학교를 입학해서 미술을 배운 그 순간부터 그때그때 주어진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달렸다.  예술을 다루는 큐레이터라 하면 무언가 고급진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물론 그런 업무만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다. 갤러리가 가족사업이라면 조금 쉬운 방법으로 이 직업을 택할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 대기업에서 운영되는 큰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 , 재벌만을 상대하는 사람  또는 태어났을 때부터 집안이 컬렉터 집안인 사람이나  넉넉하지 못한 운영자금으로도 퀄리티 있는 전시를 만들어내며 똑소리 나게 작가를 소개하는 갤러리스트 등 여러 유형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전혀 모르는 영역의 멋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예술품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동종업계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모든 갤러리스트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갤러리스트는 애초에 모두가 같은 형태로 일하지 않으며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색깔의 안목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더 콰이엇의 랩 가사와 같이 , Drake의 노래 “Started it from bottom” 와 같은 삶에 가깝다. 처음 갤러리 대표 직함을 달았을 때 가진 것이라곤 젊음과 열정뿐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치열함과 고독함을 즐길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삼청동 갤러리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홀로 고독했던 7년의 시간이 걸렸다. 인생은 때론 불공평해 보이지만 나 또한 누군가의 불공평함의 잣대가 될 수도 있다. 애초에 미술계에서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비교하는 순간 나 자신 조차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내가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이다. 전시의 반응이 없으면 그것대로 고심이 많겠지만  전시회를 완판 하고도 그다음엔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은 더 한 고통이다.                

                              

“ 좋은 전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가님 작품으로 힐링했던 날 ”               

           

갤러리를 방문해준 사람들이 SNS에 올린 인증숏이다. 요즘 같은 땐 이렇게 작품을 보러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뿌듯하다. 물론 감상을 넘어 구매까지 하는 컬렉터가 방문하면 문 앞까지 버선발로 뛰어나갈 수 있다. 작가들에게 작품 판매대금을 정산해주고 난 뒤 문자 보낼 때는 한 달 중 가장 보람차고 신나는 날이다. 나의 공간에 걸린 작가의 작업실에서 뛰쳐나온 예술품들은 이렇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내게 갤러리는 그림이 걸렸다가 내려지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수많은 계산과 숫자들이 오고 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갤러리의 공간 속에 떠다니는 나의 무수한 고민들을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을 만큼 친절하고 즐겁게 일을 대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요즘 딱 한 달만 쉬어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행동은 그 생각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전시를 전투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나를 보고 동료 갤러리스트는 대체 언제 쉬냐고 물었다. 전시 하나를 기획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를 짐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진심으로 하는 걱정이었다. 작품 판매로서만 수익을 창출하여 갤러리를 운영하는 대표와 한두 명의 직원으로 운영되는 중소형 화랑은 일 년에 4번 정도의 전시가 적당선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 이 기세라면 1년에 4번은커녕 두 달에 4개의 전시라도 만들 기세다.                              


하지만 작가를 비롯해 러브컨템포러리아트를 중심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일종의 책임감으로서 나를 믿고 전속을 맺어준 작가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이어지는 생계, 그림을 구매해준 컬렉터에게 나의 안목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보여주고 싶은 내 열정의 지속, 부푼 마음을 안고 일을 시작했을 인턴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과 늘 내편이 돼주는 <켈리온 레드 바이브> 팬들이 있는 한 단 일주일이라도 쉬어서는 내가 답답해서 참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새해에도 내일상은 변함없겠으나 바쁘게 일하고 깊은 잠에 빠지고를 반복하느라 책 쓰는 일에 더 열중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크다.                       


에필로그를 쓰는 오늘은 토요일 아침, 눈이 아주 많이 내린다. 또 갤러리 수도가 동파될까 걱정된다. 요 근래 계속해서 안 좋아지는 코로나 상황과 고약한 날씨 때문에 꽤나 고생 중이다.     


이제 곧 점심을 먹고 갤러리에 출근하여 새로운 작품을 반입해야 한다. 그전에 구멍 난 벽을 퍼티로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집에서 보이는 눈 내린 인왕산 풍경을 바라보며 더 멋들어진 글로 마무리하고 싶지만 여기서 그만두고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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