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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03. 2016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일본 , 나오시마 섬 에서의 비현실적인 시간들


섬이라는 단어에는 로맨틱한 기대와
은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그것이 실제로는 고달픈 여행이 될지라도 말이다(feat.휘몰아치는바람)





나의 숙소는 오사카 도심 속 특히 비즈니스맨이 상당히 많이 오가는 교통의 요지인 신오사카역의 새로 지어진 호텔이었다. 그 근방에서의 오사카 투어는 재미는 있지만 줄거리도 뻔하고 결말도 예상했던 대로인 종류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기분과 같았다. 그런 나는 신칸센을 이용해 오사카를 벗어난 지역으로의 여행 일정을 짰고 궁극적 목적지였던 카가와현 나오시마 섬까지는 무려 네 시간 동안 두 번의 기차를 갈아타고 페리까지 이용해야만 했다. 이동 중 장시간의 지하철은 지루했고 신칸센은 너무 빨라 무섭기까지 했다. 다양한 교통수단의 환승 이동으로 피곤함을 느꼈지만 여행은 본디 피곤한 것이 아녔던가.



일본여행의 묘미는 기차와 도시락이다. 도토루 커피는 어디에나 있는데 진하고 써서 흡족  스러운 맛이다




어쩐지 냉소적인  지하철과 기차에서 벗어나 바다 위를 유유히 훑고 지나가는 페리 위에 몸을 싣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닿아본 적 없던 땅에 대한 열망이 부풀어 얼른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 발로 그곳을 밟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윽고 바다 남새가 코 끝에 가까워졌고 하늘이 점점 더 파랗게 보였다. 작은 항구에는 섬과 본토 사이를 오가는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공기는 맑았으며 섬 특유의 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내음도 색깔도 놀랄 만큼 뚜렷했다.



하늘에서 떨어졌나?



자주 보던 빨간 쿠사마 야오이의 호박이  장난스럽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늘 보던 것은  판화작품인데  세상에, 이렇게 큰 호박은 처음이다.  


비로소 내가 비일상적인 공간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여행이란 이렇게 보통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를  확인하고 서야 실감이 난다.          



낮은 집들 . 건물은 높아봤자 삼층이다.
우리나라의 시골집 같기도 하고
담배가게. Tobacco. 버스정류장 앞
구석구석 골목탐방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일상적 풍경.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집.



어느 시골 외 딴 마을마다 비슷한 구석이 있듯이 이 섬에도 100년이 훌쩍 넘은 비슷한 나무 집들이 나란히 줄 서 있었고 그들은 앞다투어 자신들이 지내온 오랜 세월과 그 시절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곳의 시간은 저 홀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듯했다.

길거리는 한적 했고 이따금  페리에서 보았던 외국인 관광객들을 잠깐씩 마주칠 뿐 이였다.               

소소한 섬골목의 정취에 젖은 것도 잠시, 본격적으로 줄지어선 그 집 둘 중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집들을 보물 찾기처럼 찾아내야 했다. 그 어느 집에도 "여기서 전시 중이에요 "라는 기척을 내는 곳 없이 꽁꽁 숨어 있었기에 지도를 보고 걷다가 닿게 되는 곳으로 먼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여섯개의 아트하우스 중 하나, 안도 다다오가 개조하고 제작한 미나미데라(Minamidera) . .


어떠한 경위로 이곳을 들어가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내부에서의 경험이 이전의 사소한 기억들을  덮어버린 곳이 있다.


그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중년 남자 안내자의 말에 따라 천천히 벽을 짚고 겨우 의자에 앉았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미세한 빛 , 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떠도 감고 있는 느낌 , 아니 눈을 감아도 이보다는 캄캄할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칠흑 같았다.


 “Please be patient for 5 minutes"

(죄송합니다만 오분만 어둠 속에서 참아주십시오)


 폐쇄 공포증 이 있는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견디기 힘들 법 한 상황이었지만 사실이 신경을 타고 머리로 보고되기도 전에 몸이 너무 피곤했기에 쉬는 셈 치고 잠자코 기다릴 수  있었다.

 1분

 2분

3분이 지나니 어렴풋이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지만 이것마저 허상인지 진실인지 판단이 힘들 만큼 새카만 어둠에 눈이 면역돼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어둠 속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끼면서도 예상치 못한 자극적인 상황에 가슴이 두근댔다.


"Come here and feel the light"

(다들 이리로 와서 빛을 느껴보세요)


 존재 유무 판단조차 어렵던 미미한 하얀빛은 점점 확실해지기 시작했고 남자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조심스레 일어서게 한 뒤 그 빛을 따라 걸어오게 했다. (본의 아니게 굉장히 성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그 빛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니 미미했던 빛이 점점 짙어지는 듯 했다. 그의 일본식 발음의 영어 안내에 따라 빛 속으로 손을 휘저어 보았고 그곳은 영락없는 그저 텅 빈 無 의 공간 일 뿐이였다.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와서야 사실을 알았다. 미리 알고 들어갔다면 이 정도로 충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여행 내내 쉴 새 없이 눈과 귀에 많은 것을 담아 넘쳐대던 나에게 이 작품은 큰 자극이 되었다. 지금까지 지나치게 채우고만 있다가 칠흑 같은 어둠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내 눈과 마음의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고 나온 것이다. 매우 신선한 컨디션으로 다음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새것과 낡은 것 , 빛과 어둠의 대조가 돋보였다. 나무집의 내부가 콘크리트라는 것이 반전인 안도뮤지엄.



다음 행선지인 바네사 하우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나와 퇴근하는 아트하우스의 직원.

.


가가와현의 나오시마  섬은 30년 전만 해도 금속제련 공장 때문에 피폐해진 버려진 섬이었다. 베네사 그룹의 회장은 그런 나오시마 섬에 6000억 원을 투자해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미술관 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통가옥을  작가들에게 의뢰해 현대미술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죽어가던 섬이 예술의 힘으로 되살아 나자 섬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사람들은 마을을 더 이쁘게 꾸몄다고 하니 길거리의 모든 광경 하나하나가  모조리 그림엽서 감이었다. 왠지 이해 가는 자부심.



귀여운 섬마을 꼬마들 , 너희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는지 아니?
비련여자.jpg
내가 겪어 본  해 질 무렵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는 이는 마음을 포근하게 쓰다듬어 주는 잔잔한 곳의 해 질 녘이고 다른 하나는 몰아치는 바람과 격정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냈다가 화려한 빛을 발사 한 뒤 사라지는 해인데 이 섬의 해 질 녘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인지 아름다움과 그 사나움을 동시에 지닌 마력이 대단했다.  나는 하필 바람에 휘날리는 스카프와  트렌치코트를 입고 가는 바람에 찍는  사진마다 비련의 여주인공 컷 이 나올 정도였다.



풍경을 손상시키지 않은 건축가의 의도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  니키드 생팔 의 작품


고즈넉한 해변에 위치한 베네사 하우스는 바다 옆에서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은 미술관 건축물의 일부처럼 녹아들어 있었다. 버스는 나를 호텔 프런트에 내려주었고 이 미술관은 호텔과 함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콘크리트 벽을 지나 선물가게를 지나자 출구가 나왔다.
바네사 하우스 와 절경을 이루는 바다와 하늘.

눈앞에 아득히 펼쳐진 해변과 붓으로 스윽 그린 것 같은 하늘에 뚝 떨어진 같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예술 탐방은 미술관을 나와서부터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했다.


Surrealistic
하지만 곧 떨어질 듯한 해는  
영원한 작별을 고하듯이
찬란하고 화려했다.


2차 표현주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하늘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어둠이 깔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색채 가득한 팔레트를 검은색 물감으로 한 번에 덮어 버리듯  순식간에 깜깜해지기 시작했고 육지로 나가는 페리는 한정되어 있었다. 모든 미술관을 둘러 보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도 섬의 매력일까?


 페리 시간을 확인한 뒤 허기와 추위를 달래기 위해 무작정 어느 골목에 들어섰다.



거친 음악이 나올 것같은 어느 바.
나오시마의 오래된 "목욕탕 폴리". 얼핏 보면 타일 가게 같지만
 "More is  More" 정신을살린 벽 과 겨울철 옷차림의 그들


 홀로 봄옷을 입고 있었던 나는 " 추운 걸로 따지면 내가 1등일걸"이라는  가엾은 허세를 부리며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걷고 걸어 미술관 탐방을 했던 터라 허기질 대로 허기져 있었다.


입구가 매력적이었던 (배고픔에 눈에 뵈는 것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들어온 곳 ) 한 식당에서 페리에서도 골목에서도 마주친 여행객들을 또 만나게  되어 가벼운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우리 모두 같은 시간의 마지막 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묘한 동질감의 공기가 도는 , 정체성이 불분명하지만 장식의 부조화가 조화로운 아늑한 장소에서 구운 닭가슴살이 두덩이나 올려진 풍성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뉴욕에는 MOMA가  영국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지만 도시 전체가 미술관은 아니다. 미술관에 나와 회색 도시에 발을 딛는 순간 환상은 깨지고 곧바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다. 하지만 나오시마 섬에서는 미술관 출구로 나와 아무리 앞으로 걸어가 보아도 예술의 끝이 좀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이처럼 섬 전체가 미술관인 이곳은 나의 심미적 갈망을 한방에 씻어주는 곳으로 예술여행의 정점을 느낄수 있는 곳 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모퉁이를 돌지 않으면 무슨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고요한 섬에서의 시간은 내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하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단순히 공간을 지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사방에 존재하는 작가와 건축가의 생명력 가득한 피조물 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격렬한 욕망과 의지로 가득 차는것


 모퉁이를 돌지 않고서는 결코 모를 행복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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