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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21. 2016

빛과 그늘을 따라 걷다.

오사카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와 인생의 명과 암.


건축에는 빛과 그늘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빛을 걷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그늘로 빠지고

영원히 그늘 일 것만 같은 나날에도

언젠가는 빛이 든다.      






영어권이 아닌 여행지에서 의사소통을 하려면 보통 여행자들은 영어 발음을 최대한 현지화시킨 후  손짓 발짓 표정을 첨가해야만 한다. 하지만 굳이 저런 수고 없이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의외로 간단하다.


이 아이디어의 근원은 바로 엄마인데 내가 집에 외국인 친구를 데려올 때마다 상대가 영어를 하던 한국말을 하던  “밥 먹었나? 아이고 예쁘다” 등등의 말을 한국 친구 대하듯 편하게 하시는데 신기하게도 내 서양 친구들은 그 뉘앙스만으로 뜻을 알아듣는다. 사람은 모국어로 말을 할 때 가장 자연스러운 제스처가 나오면서 진솔한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빛의 교회가 있는 이바라키 지역은 마을 깊숙한 곳에 있어 작은 동네 버스를 타야만 닿을 수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버스를 골라 타고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나: “아저씨 빛의 교회 가요?”

버스기사 아저씨 : @#&@*$&(@&*교카이?

나 : 네 교회요 교회.     


친철한 할아버지를 따라 가는 길. 어딘가 익숙한 뒷모습이다.  감사합니다



분명 주위에 한국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쩜 저리 막무가내 같은 아가씨가 다 있지 라며  웃었을 테지만 어쨌든 말은 통했다.  심지어 내릴 때 즈음 마을 할아버지로 보이는 한 분이 친절하게도 교회(교카이)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그 뒤로도 일본어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도 감사를 전했고 또 길을 물으며 여행했다.



유치원 하원 하는 딸을 마중나온 엄마. 우리와 비슷한듯 다른 골목풍경


정말 소박하기 그지없는 주택가였다. 빈곤도 아니지만 사치는 더더욱 아닌 풍요로운 소박함으로 꽉 차 있었으며 일본인 특유의 일상적 향기가 짙게 풍겼다. 거리는 너무나도 깨끗했고 질서와 병치의 미덕이 사방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저 빨래가 집 한 중간에 걸려 있다는 것과 건물과 같이 직선상에 있다는것


교회 앞 핫도그 같은 나무도 정확한 크기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고 집에 걸린 빨래마저  자로 잰 듯한  간격으로 나란히 걸려 있었다. 교회가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속세로부터 한 발치 떨어져 있을 것 만 같은  순결함 마저 느껴졌다. 그런 마을의 정취에 대답하듯이 이바라키의 한 주거촌 속에 스며든  빛의 교회는 콘크리트가 주는 육중한 섬세함을 내뿜고 있었다.


건축물 외관. 주변 집들과 자연과 이질감없이 잘 어울린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어디에나 그 자체로 스며든다. 고베에서 보았던 효고 현립미술관은  산과 바다를 품던 콘크리트였는데 말이다.     


이렇게 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트린 것만 같은 성스러운 교회에도 현실적 사연이 존재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의 한 복판에서 건설붐이 일어나 건축비가 치솟을 당시 교회 신자들이 정성껏 모은 돈을 제시하며 그에게 건축 의뢰를 한다. 그는 이 일에서는 이익이 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였지만 결국 떠맡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빛의 교회로 끌어당겼을까?      


그에게는 한 공동체가 마음의 의지의 터전으로 삼는 교회 건축을 하고 싶었던  이 있었다. 건축가에게 단순히 기능만을 추구하는 건물이 아닌 영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 자체를 가치 있게 여겼으며 신성한 공간을 만든다는 자부심마저 있었다.


위대한 건축의 본질은 기능적으로 불필요한 데 있는 셈이다 _Alain De Botton


이처럼 예술가에게 소위 돈 안 되는 일을 떠맡아야 할 때 내면에서 많은 갈등을 겪게 한다. 사업적 수지타산이 우선일까 혹은 프로젝트를 완수했을 때 밀려오는 직업적 만족감과 진정성 , 이후에 찾아올 무형적인 것을 생각해야 할까.  안도 타다오의 경우에는 신인도 아니고 이미 이루어낸 건축적 업적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자를 택했고 턱없이 낮은 예산을 장애물로 생각하기보다는 또 다른 도전으로 여겼다.    



입구에 들어서 노출 콘크리트로 된 간결하고도 긴 벽을 따라 들어갔다. 마치 사각형 박스를 엎어 놓은 듯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질감이었다.


안도의 빛의교회 스케치에도 보이듯 큰 상자 두개가 엎어진 듯한 모양이다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은 무엇일까? 십중팔구 십자가라고 대답할 것이나 빛의 교회 내부에는 십자가라 부를 만한 것이 당장 눈이 띄지 않았다. 닫힌 교회 내부를 샅샅이 탐방하는 동안 저 멀리  나를 놀라게 한 빛 이 보였다.


설교단 마저 높지 않다. 존재 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비워질 것만 같다


간소 하기 짝이 없는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 그 속에 어둑한 공간 정면 벽에 뚫어놓은 십자형 창으로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과 그 속에 들어오는 빛으로만 이루어진 그곳은 인간의 정신에 호소하는 한없이 절제된 엄숙한 공간이었다.


장식을 배제하고 공간이 비워진 대신 우리 내부의 비가시적인 본질과 영혼의 해학 만이 부유하는 곳.    


사치와 규모로 자신의 권위를 뽐내면서 의도적으로 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듯한 화려한 내부장식 이 가득한 교회 도 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

어째서 이런 곳에 있다 보면 자본주의적인 물건들로 한 껏 치장한 내 모습을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걸까.

자연을 존중한 절제가 오히려 애쓴 장식을 안쓰럽고 가엾게 바라보는 듯하고 화려함은 절제 앞에서 처참히 무너진다.


건축물은 어떤 의미에서 몹시 인간을 닮아있었다.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듯.



 감동시키는 것을  닮는 방법은
그 대상을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닮아 가는 것이다.

 건축대학을 나오지도 않은 전직 프로 복서였던 안도 타다오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근대 서양 건축을 눈으로 보고 체험한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독학으로 건축을 깨달은 뒤  건축 세계에 뛰어들어 선구자가 되기까지의 그의 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늘 역경 속에 있었고 역경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를 궁리하며 살아온 그의 건축 지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한계마저 도전으로 삼는 , 제한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그의 숨 막히는 절제 의식과 완강함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비록 그늘을 걷고 있더라도 ..


 나와 같은 이삼십 대 청년들의 일부는 지금도 스스로가 인생의 그늘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노력한 만큼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보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 얼만큼이냐 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염세적인 말로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요 속에도 고독이 있고
고독 속에도 풍요가 있다


성격만 다를 뿐이지 누구든 인생을 이루는 조각의 일부는 늘 불완전하다.  다만 각자 다른 종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 멀기만 한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은 그늘 속에 있지만 그 속에서  잠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느 한편에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덧붙여 화려해 보이는 타인의 삶의 잣대에 나의 삶을 대입하거나 물질적 허영에 의해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했다면 빛의 교회와 같은 절제의 공간을 경험하는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 오사카 도톤보리 에서 화려하게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다!


우습게도 그날 밤 나는

빛의 교회의 절제미와 정 반대의 개념인

유명 관광지인 오사카 난바 지역에서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인파 속에서

도시의 교태에

넋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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