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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15. 2016

초록으로 물든 싱가포르 예술산책

클락키 , 길먼 바락스( Gillman Barracks) 예술지구




어느 기억할 만한 아침



싱가폴의 촉촉한 아침을 즐기는 사람들


쇼핑몰이나 맛집에 가고 마사지를 받는 등의 휴식이 여행을 정의하는 거라면 내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런 것 들 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클락키 역에서 도보 15분 정도 떨어진 강가 옆에 위치한 조용한 오성급. “그랜드 콥튼 워터 프런트 호텔 (Grand Copthorne Waterfront Hotel)

나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는 영감과 자극이었고 그 영감들은 이국적인 건축물 이라던지  우연히 들어선 골목길에서 만난 것 , 혹은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로컬 작가들의 작품에서 대게 마주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나는 여행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낯선 풍경을 기대하며 눈을 평소보다 더 크게 뜨고 새로운 것을 갈구하며 다소 힘든 모험을 자처하기도 한다.


과감하게 유명 랜드마크호텔을 뿌리치고 예약한 곳은 강 길 을 따라 즐비한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카페 근처 앉아서 공원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모닝커피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 이였다.


자연과 건물의 대조가 재밌었던
한적한 강가 크루즈 매표소

하늘로 높이 솟은 건축물과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서로 가로질러 북적이는 자동차와 사람 들로 가득 찬 벅찬 도시를 피해 클락키 (Clarke Quay) 강길 끝에 조용히 그리고 아주 묵직하게 , 야속한 도시를 모른 척 숨통을 틔워주던 곳. 둔탁하고 느릿느릿 흘러가던 싱가포르 리버 끝자락에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안아주었던 호텔. 이번 여행에서 손꼽을만한 최고의 선택 이였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와 쭉 뻗은 아파트와 친구가 된 담쟁이가 재밌다.


온통 초록세상이다. 걸음이 가볍다.


아침 7:00 호텔에서 나와 강길을 따라 산책했다. 아침이지만 새벽의 차분한 공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습도에 살짝 놀랐다. 싱가포르 날씨는 비가 오거나 덥거나 둘 중 하나란다 (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와 달리 건기와 우기 단 둘로 나누어지는 날씨다 ). 이날은 햇볕 없는 먹구름 낀 날씨였지만 그 나름의 글루미 한 기운이 싫지 않았다.


산책중인 아기와 강아지들.

날뛰는 강아지들과 오히려 그들에게 산책당하는 듯 한 주인, 엄마와 산책 나온 아이 , 심각한 표정으로 조깅하는 근육질 아저씨 등등 현대적인 빌딩과 조화를 이루는 울창한 숲이 공존하는 싱가포르 강가에서의 풍경은 빛나는 도시에 대한 반역 임에 틀림없다.


산책을 마치고  아침 수영을 즐겼다. 아마도 후에 먹게 될 조식이 꿀맛이겠지
. 아무리 엄청난  곳이라도 사람들로 들끓으면 그 대단함이 반감되기 마련
그들은 느리지만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클락키 강이 흐르는 속도처럼
 강과 자연과 함께 하는 식사는 괜스레 마음을 달뜨게 했다.


내가 호텔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 나는 싱가포르 이전에 이미 수많은 도시들을 방문한 경험으로 웬만큼 Fancy 한 세련된 건물 화려한 것들로는 여간 감동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날 오전 호텔에서 경험한 싱가포르의 아침은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습기 가득 찬 그곳의 공기와 자연이 자연스럽게 버무려진 순간의 결정체였다. 아침시간 특유의 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느껴지는 활기의 샘솟음 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새벽과 비슷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전형적인 올빼미 형 인간인 내게 ” 아침 ”이라는 새로운 기운과 깨달음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았고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꼭 서울의 아침도 이렇게 맞이 해보리라고 다짐했다.(진짜?)




클라키 강 따라 걷기



클라키 강은 고요한 아침과 달리 밤에는 완전히 다른곳으로 탈바꿈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소소한 재미 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한도 초과된 뇌에 한번 의 시원한 바람처럼 걱정거리를 뚫어 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뜻밖의 상황에 대한 기대를 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다. 크리스마스 에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인형을 머리맡에 놓고 갈까 기대하며 잠 못 들었던  나의 어렸을 적처럼 말이다.

그 몇 그람의 설렘 은 어른이 된 지금의 내게도  일종의 풀지 않은 선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설렘 은 더운 날씨를 싫어하는 내가 호텔에서 싱가포르 리버를 지나 클락키역 까지 걸으며 온 사방에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기운을  만들어 냈다.


눅눅한 날씨가 사진에서도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단체 관광처럼 외국에도 어르신 효도 관광이 있나. ?


평화로운 싱가포르 리버 거리는 아침에 느꼈던 감동을 이어주었다. 하지만 슬슬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아침의 고요한 느낌은 사라지고 거리는 점점 저마다의 색을 되찾았다. 강이나 바다가 있는 곳에는 특유의 잔잔한 활기가 있기 마련이다.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파는 1불짜리 망고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아서 반을 남겼지만  싱가폴에서 꽤나 유명 스트리트 푸드.


클라키역. 독특한 건물과 색들이 아름답다.

이 거리를 기능적으로 정의하자면 “싱가포르를 관통하는 리버를 중심으로 펍과 클럽 레스토랑이 늘어선 지역”이다. 하지만 길을 거니는 도중 내 눈에 보였던 건 알록달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예쁜 건물들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MRT클락키 역 에 다 달았다.


열심히 걸었다면 15분 만에 도착할 거리가 1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동안 나만의 해석력으로 싱가포르 리버의 정취를 느끼며 다른 시각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마주쳤던 의외의 씬은 내게 선물 과도 같았다. 1시간 동안의 산책은 단지 이동 수단 이상의 가치 있는 그 무언가 였다.


우리는 시간과 편리함에 쫓겨 많은 가치 있는 것 들을 놓치고 살고 있다. 서울에서도 집이나 회사 앞에 지하철 역이 있고 한 곳에서 한 곳까지 가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동거리 마저 아까워 은색 메탈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 폰을 쳐다보며 뭐라도 읽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적인 실용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이지 여행자의 입장 은 아니다.




길 먼 바락스 예술단지





갤러리로 변신한 막사. 그속에 뭐가 있나 더 궁금하게 만드는  상남자스러운 와일드함.


나의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은 무지막지하게 더운 날씨 탓에 더욱 험난했다. 차만 쌩쌩 달리는 황량한 도로 옆 좁은 사잇길로 무작정 걸었을 때 가끔씩 마주친 나무 숲길은 목마른 내게 주어진 한 모금의 탄산수 같았다.



싱가폴의 예술구역 길먼바락스.


현지인의 도움으로 무심코 지나쳤던 곳을 다시 되돌아 오는 길 불현듯 작은 언덕을 발견했고 그 위에 나무 몇 그루를 벗 삼아 아주 도도하게 앉아있던 “길먼 바락스(Gillman Barracks)” 사인을 발견했다. 휑뎅그레 할 만큼 넓게 펼쳐진 곳에서 마치 그 언덕 위의 사인은 “자 이제부터 미로를 탐험해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둠 후의 예술. 아마도 막사가 갤러리로 바뀌기 전 과 후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


중국에 따산즈 798이 , 뉴욕에 미트패킹 스트리트가 있다면 싱가포르 에는 길먼 바락스가 있다.

최근 3월에 열렸던 “Art stage Singapore “ 7월에 호텔에서 열리는 ”Art Apart Fair Singapore"등 다양한 국가를 아우르는 국제 아트페어들이 싱가포르에서 대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곳 이 태평양의 하트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는 덧이 먼 이야기가 아니다.


간단하면서도 강한 전시디자인 레이아웃이다. "I know you got soul" 이라니


싱가포르의 예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영국 군대의 막사를 사용했던 건물을 갤러리로 변신시켜 하나의 예술 지구를 만든 곳이 바로 여기다. 싱가포르의 경제 개발청은 이곳에 800만 싱가포르달러 (한화 87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6만 703 제곱미터의 거대한 부지에 14개의 건물이 있고 한 건물마다 3~4곳의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미국의 산다람 타고르, 독일의 마이클 젠슨, 일본의 오타 파인 아트 등 10여 개 국에서 온 15개의 갤러리들이 막사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할 곳을 찾는데 눈에 들어오던 메종 "MASONS은 넓은 녹지 안 청량감 있고 싱그러운 곳 이였다. 날씨만 협조해 주었다면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 즐기고 싶었지만 습도에 익숙한 현지인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나처럼 실내에서 TWG차와 에스프레소 한잔을 하며 여독을 씻어냈을 것이다.




길먼 바락스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조용한 습지 속에서 숲과 자연 속에 공존하는 와일드한 막사 속 현대미술이 주는 경계적 감각을 자유로이 오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적한 곳에서 나무와 꽃 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받는 전형적인 도시인 간인 나에게 그와 상반된 감각인 현대미술품들의 발견은 낯선 곳에서 만끽하는 진정한 낭만이였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 올린 매끈하고 차가운 갤러리의 외관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낮은  흰색 막사 본연에 녹아있는 소소한 예술의 느낌은 참 낯설면서도 친밀했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곳곳의 예술가들이 남긴 흔적. 늘 지나치면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부분을 관찰하게 된다.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Sundaram Tagore Gallery)의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던 그녀.


 매력적인 갤러리스트와 잠깐 대화를 나눈 결과 오늘이 공휴일이라 이곳을 제외한 모든 곳들이 휴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흰색 건물들 너머로 새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깨어있는 적막감을 안겨주더라니


사각형 창을 통해 뚫고 들어온 햇빛이 아스라하니 반갑다. 바깥의 푸르름은 또 다른 명작 (master piece)이며  내부의 풍경과 외부 대조는 또 하나의 잔상으로 남아있다.


부러울 만큼 널찍한 갤러리전경
선다람 타고르 갤러리(Sundaram Tagore Gallery)는 1999년도에 뉴욕 첼시 27가에 개관한 인도계 갤러리이다. 19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의 손자인 선다람 타고르(Sundaram Tagore)가 갤러리 디렉터이다



현재는 한국 작가인 김준 , 강호숙 작가의 "Through the Minds's eye' (3.20~5.31 까지) 전이 전시 중이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강호숙 작가의 대담한 색채와 에너지가 넘치는 추상적 풍경과 김준 작가의 디지털 랜더 화 된 포슬린과 타투가 새겨진 인체로 보이는 섬세한 기억과 화려하고 호화롭게 묘사된 광경 (tableau) 은   적막 속  만난 반가운 인연이었다.


이 멋진 작품들과 공간감 그리고 창문들의 조화.

.

Miya Ando라는 일본 작가의 미니멀한 작품과 창의 조화는 마치 그것이 작품의 일부 인 것처럼 느껴졌다. 공간과 작품이 일체가 되는 , 마치 알맞은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끼워 맞출 때 느껴지는 쾌감과도 같은 것.



나는 이곳의 디렉터의 공간 해석력에 만점을 주고 싶다.

작가가 작품을 창조한다면   전시는 디렉터의 손끝 하나로 작품들을 알맞게 버무려 이렇게 가치 있는 공간을 창조된다. 같은 입장에 서서 보면 이 전시를 구상하며 닥쳤을 일련의 고민들이 느껴진다. 작품은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만 좋은 공간과 디렉터를 만나면 내뿜는 에너지가 배가 된다.   



유일하게 오픈했던 갤러리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나오는 길.


발걸음을 돌려 다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갤러리 앞 넓은 주차장에 고급 차 한 대를 주차 키시고 두 금발 노 부부가 차에서 내려 유유히 내가 갔던 갤러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런 휴일에도 이 먼 곳까지 찾아오는 것을 보아 그림을 수집할 거라고 으레 짐작해본다.




그 부부의 뒷모습은 왠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그것 은 현재의 내 모습과 몇십 년 뒤 미래

 내가 그리던 모습의 일시적인 중첩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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