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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11. 2016

아픈 역사 속 찬란함을 따라 걷다.

일본 고베지역의 안도 다다오 건축 순례.


예술은 우리와 다르면서도 우리가 되고 싶은 것을 닮았기 때문에 감동을 준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여행 속 예술의 경험 이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영역이다.




나는 생활 습관에서도 "시원스럽게, 크게, 여유 있게"를 외치는 서양의 사상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미주나 남태평양 여행만 했던 내가 2012년 도쿄에서 가진 첫 (아시아) 출장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만 원이 웃도는 숙소에서 딱 내 키만 한 너비의 방을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샤워기 욕조  변기 그 모든 것이 작아 민망을 넘어 쓰기 미안하기까지 했다. 마치 소인국에 온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큰 키에 속하지만 사람 머리로 꽉 찬 시부야 거리를 거닐 때도 먼 시야에 있는 건물도 금방 보일 정도로 혼자서 키가 우뚝 솟아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심지어 일본어보다 영어가 편한 나는 같은 아시아 계 인 일본 현지인보다 드문드문 보이는 서양인 여행객들에게 동질감을 느낄 정도였다. ( 시부야의 거리 도토루 커피집 창가에 앉아 나의 DNA와 국가적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메모한 흔적이 있다)  


나에게 만큼은 소인국 같은 이 작은 나라에서도 내가 기꺼이 존경을 표하며 수년간 팬을 자처한, 섬세하고 집약적인 섬나라의 미학을 보여주는 문학, 예술인이 몇몇 있다. 그중 한 명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여행을 시작한다.



제주도의 지니어스 로사이 에서 느꼈던 안도 다다오의 건물의 뚫린 창 속에 출렁이던 바다는 그와의 첫 조우였다.           


여행가기전 책을 참고하여 그의 작품이 있는 곳을 탐색하는 시간은 즐겁다.


 최초로 접한 그의 한 건축물로 인하여  그의 발간 서적은 닥치는 대로 사다 모았고  안도에 대한  호기심 은 한국에 있는 그의 건축물을 직접 밟아보게 하는 것도 모자라 바다 건너 도쿄 건축 여행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의 건축물은 미술관이 많아 나로서는 미술까지 잡을 수 있는 완벽한 여행코스가 된 것이다.  이제는 그의 작품을 단순히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전략적으로 접근할 만큼 그의 세계와 건축 사상에 익숙해졌다.



신오사카역에서 고베로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숙소가 있는 신오사카 역에서 짐을 풀고 간사이 지역의 갈 곳은 웬만큼 패스할 수 있는 JR pass를 끊은 후 발디딘지 한 시간도 안된 오사카를 빠져나와 고베로 향했다.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사람들이 없는 지하철을 상상할 수 없는 곳이 도쿄였다면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역의 모든 이동 여정에서는 지상을 달리는 전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일본의 아기자기한 집들을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그냥 기차역 일 뿐인데도.


햇살에 취한  청춘들이 귀엽다


금세 시작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끝이 나는 여행이 아니라 느릿느릿 계속되는 기나긴 과정을 즐긴다. 그림이 초단위로 지나가는 듯한 기차의 창문 풍경 , 나른함에 지쳐 곯아떨어진  젊은 학생들 , 내 맞은편의 젊은 엄마와 네 살 남짓한 아기.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

그저 기차는 달리고 우리 모두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뿐이다.          


몇 번의 기차 환승 끝에 다다른 고베 산노미야 역에서 나오니 피부가 새로운 바람의 산들 거림에 반응한다. 나는 걸음걸이를 재촉하며 새로운 풍경과 나 사이의 거리감을 좁혔다,     



고베 산노미야 는 지진이라는 어감이 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조용하며 특유의 인조미가 있는 도시였다. 지진 후 열성적인 개발 탓인지 필요 이상으로 고급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약간 가파른 곳을 올랐다 내렸다 반복하니 박자를 맞추듯 하늘도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했다.



거리의 이름 없는 건물들도 저마다 사색하듯 고요했다.

흘러가버린 삼십 년 전 에 대한 침묵에서 비롯한 것일까.

마침내 저 멀리 거대한 건축물이 보인다. 나의 직감은 얼른 내가 찾던 그것 이 맞다고 알려주었다.


스테인리스 ,화강암, 노출콘크리트가 조합된 건축물


효고현립미술관은 고베 대지진 후 참혹한 폐허가 된 자리에 지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인데 몇 년 안에 실현된 이 프로젝트는 역사상 유래 없는 도시재생이라 평가받고 있다.    


미술관은 고베항을 바라보고 있었고 산을 등지고  있다. 산과 바다를 품고 있는 위치만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를 다하였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우아하고 고운 감성이 있는 한편 자연에 의지하면서도 웅대하고 대담하게 세계에 맞서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간선도로 위에서 느꼈던 항구도시의 바람으로 단단히 얼었던 손이 사르르 녹았다. 그날따라 전시내용은 공간의 공기보다 더 따듯했지만 웬일인지 건축에 압도되는 바람에 그 안의 작품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드는 작품 몇점은 있었다.
일본 지역작가들의 판화작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추상화. 강렬한 색감과 거칠것 없는 터치감에 끌리다
콘크리트로 에워싼 간결한 공간에 일본적 미학이 숨어있다
소라 껍데기처럼 빙빙 돌아간 나선형 모양의 홀.


계단 끝까지 오르고 올라 아래를 내려보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완벽에 가까운 콘크리트 곡선이 보인다.


인간의 시간은 이런 아름다운 곡선보다는 메마른 직선에 가깝다. 태어나자마자 누구나 죽음을 향해 직선의 선상을 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레이스를 우리는 지금도 달려 나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직선보다는
곡선에 수많은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열광한다.


나 마저 곡선에는 아름다움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서 직선은 메마르다고 한다. 아름답고 여성스럽다 칭하는 형체에 곡선이 많다. 그러한 연유로 단단하고 차가운 질감의 콘크리트가 굽어 있는 역설적인 광경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콘크리트 질감을 만지고 또 형체의 냄새를 기억하는 동안 그 감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고도 없이 바다가 불쑥 찾아왔다. 안도의 다른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이나 연못을 가져온 인위적인 자연에 익숙 해져 있다가 실제의 바다가 보일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바닷가에는  옅은 저녁노을마저 내리쬐고 있었다.


바다에 건축물 그리고 햇살의 겹쳐진 순간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환상과도 같은 찰나였다. 아직까지 그 환상은 지금까지 내게 호소해올 만큼 짙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시계 밖의 시간과도 같았던 미술관에서 나오니 그새 흘러버린 몇 시간을 증명하듯 도시의 색이 더욱 뚜렷 해졌다. 하여튼 해가 지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모든 것을 더 진하게 만들어버린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데 톤이 바뀌어 버린 도시 풍경을 보자 머릿속에 자리 잡은 각종 상념들이 몽롱해졌다.


 과거 현재 미래가 입체적으로 교차하듯이 왕래하고 있다.



키타노 지역 건축 순례


미술관에서 다리를 건너 언덕길을 지나 몇 번의 횡단보도를 통과하면 갑자기 이국적인 광경이 펼쳐지는데 바로 키타노 거리이다. 이 거리는  메이지 시대 들어왔던 외국인들이 서양식 주택을 짓고 모여 살던  ,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개조된 건축물 들이  즐비한 거리이다.


저녁노을 무렵의 키타노 거리.


안도 타다오의 초기 작품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한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건설 붐에 휩쓸려 무미건조한 아파트와 빌딩의 난립으로 유서 깊은 거리가 망가지자 도시정비작업이 실시되었다.  난폭한 재개발 대신 차분하고 세련된 패션빌딩, 갤러리 부띠끄가 들어서게 되었다.

.     

건축 하나하나는 작지만
   모이면 힘을 가진 문화가 된다.

안도는 10년 동안 8건의 건축에 관여하였고 건축주와 주민들의 열정에 모든 주변 환경과의 자연스러운 조화와 정취를 감안하며 만들어져 현대적 감성과 유서 깊은 건물이 동거하는 거리로  재탄생했다.


이름모를 교회 앞에서


주민들의 거리 살리기 의식으로 만들어진 거리를 걷다 보니 일본인들의 웅숭깊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편 한국의 무지막지한 재개발로 없어진 수많은 골목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원룸이 들어서 사라져 버린 유년기 시절 살았던 , 유독 개가 많았던 작은 골목은 내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건축은 표현예술의 하나이며 큰 자금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사회적인 생산행위이다 “ -AndoTadao-


안도의 상업건축 데뷔작 "로즈가든"


지도가 없었다면 로즈가든을 보고도 어느 세련된 상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팬이라면 그 누구도 지나쳐선 안될 곳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대명사인 그의 첫 번째 상업 건물의 처녀작이 벽돌로 지어졌다니.


그는 거리의 고유의 이미지와 주변과의 조화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고집을 과감히 버리고 콘크리트가 아닌 벽돌을 쌓았다. 그가 실현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건축적 재료의 완성을 항한 욕심 이 아니라 벽 넘어 존재하는 영적인 공간 이였을 것이다. 이러한 건물과 접할 때 창조자의 의식과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의 발자취를 탐하여 따라 걷는 일은
그의 세계에 진정으로 푹 빠져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키타노 거리를 걷는 동안 하늘색은 몇 번이고 바뀌었다.

본격적인 저녁이 시작되고  하늘이 남색이 되었을 때야 그의 다른 건축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조급한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리런즈 게이트(1986년)

가장 안도스러운 , 대규모 상업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리 런즈 게이트는 이 거리에서 내가 첫 번째로 발견한 안 도타 타오의 작품이었다.  (다른 사진들에 비해 가장 밝다) 지금부터 점점 짙어지는 하늘의 색에 따라 반응하는 건축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왼쪽은  이층 벽면에  촘촘히 이어지는 정사각형 삼열 창문의 나열이 인상적인 키타노 투(1986).


오른쪽은  " 누가 보아도 벽돌로 만들어진 주거 펜션이지만 지금은 상업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키타노 아이비 코트(1980). 붉은 벽돌과 대조적인 풀과 나무를 담고 있는 화분이 저토록 든든한 콘크리트라니. 일정한 규칙 속에서도 자신만의 크기를 가지고 개성을 뽐내는 아기자기한 창문은 또 어떤가.


스타벅스 커피 고베 키타노이진칸 점.  날씨가 따듯했더라면 틀림없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멋과 낭만에 취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쌀쌀한 거리를 걷다 따듯한 라테가 간절해 들어간 스타벅스는 늘 보던 실용을 추구하던 그 디자인이 아니었다. 로고만 없었다면 스타벅스인지 일반 주거 집인지 분간이 안 갔을 터.


1995년 고베 지진으로 파손되어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복원시켜 목조로 된 실내 , 벽난로와 고풍스러운 창과 녹색 디자인으로 파손 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고베의 건축물과 길거리에는 아픈 과거에 대한 극복과 현재에 대한 존중에 관한 속삭임들이 가득하다.


1995년 1.17일 새벽 5시 46분에 우리의 시계는 멈추었다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처연해졌다. 작고 풍부한 문화토양 아래 섬세함을 간직히다가도 유사시에 강인한 정신력과 힘을 발휘하는 일본인의 정신을 체감한다. 나는 그 역사적 산물로 뒤엉킨 거리의 중심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월애버뉴(1986년)  이 일대에 있는 작품중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통유리의 과감한 개방감을 주목하라.
린스갤러리(1981년) 두개의 건물을 나란히 연결시킨 모양


시각적으로 보면 키타노 지역은 민 족색을 확연히 드러낸 마을은 아니었다.  처음에 외국인 들어 만놓은 주거지역에서 여러 변화와 아픔을 거듭하며 그것이 하나의 이국적인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지 공허와 내핍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미학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목의 끝 어느즘 에서 이런 생각에 다 달았을 때  코너를 한번 돌자 불현듯 빨간 등이 달린 라멘집이 보인다.

문득 일본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난 것은 꼭 배가 고파서만은 아니다.  알록달록한 네온사인들과 열차 색이  그들의 정체성을 더 상기시켜 주었다.


길었던 오늘의 건축 순례를 마무리하며 가장 붐비는 라멘집에 들렀는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맛있는 김치 맛을 맛보았다. 이거야 말로 역 문화 컬처 아닌가?  


이 안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집 문 앞.


오늘 밤에는 빨간 등과 색색 열차. 그리고 남색 하늘이 뒤섞여  번뜩이는 지진 꿈을 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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