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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Nov 09. 2015

빨간 우산을 쓰고 걷고 싶은 가을  빗길.

 종로 팔판동에서 가을비를 담다










모든 것이 촉촉  젖어있다.

비바람에는 가을을 끝을 느끼게 하는 서운함 같은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

나는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가을과의 작별인사를 위해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빨간 우산이 있었다면 그것을 쓰고 이 길을 걷고 싶다         




 .          













집  앞의 스타벅스 커피숍은 난민캠프를 연상시킬 만큼 비를 피해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득  찼다기보다는 간신히 몸을 비집고 들어가 있다는 표현이  맞다. 2cm 정도의 간격으로 긴 의자에 부대껴 앉아있는 도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각자가 무개성의 향을 지독하게 풍겼다.

그것들의 집약은 공간을 더욱 무개성하게 만들 뿐  이였다.


여유가 감돌아야 했을  카페라는 공간이 커피 향과 사람들이 풍기는 무취들이 뒤섞여 답답한 공기에 지배당하고 있다니.  나는 세 곳을 더 가보았지만 기절할 만큼 똑같은 풍경에  그만 현기증이  났다. 도보로 걸어 갈 수 있는 일정한 거리 안 에 스타벅스 가 4군데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발걸음이 이미 본능적으로 경복궁으로 향해 있었을  때였다.  소름이 돋는다.  (나는 스타벅스의 광팬 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둔한 인간형에 속하는 나는 공간에 있어서 만큼은  집착 적 이리 만큼  민감하다.

 취향에 맞는 곳을 찾아가는 곳에 드는 시간적 , 금전적 비용에 대해  관대하다.

 오늘 역시 밀도 있는 2시간을 위해 3시간을 지불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변태 같은 예민함이  지금의 직업으로  귀결된 것이나 마찬가지 이기도 하니 숙명인 듯  싶다. 












광화문역에  내렸다. 현대미술관을 지나 우회 후 처음 만나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면 삼청동과는 또 다른 정취를 풍기는 팔판동을 만나게  된다. 그 골목의 카페와 건물들은 요란스럽지 않게 나름의 뚜렷한 색으로 각자의 비범함을  뽐낸다. 비와 가을 정취로 꽉 찬 주말에 차분하게 앉아 독서 하기에  제격일 것만 같다.


그 거리에는 무개성의 사람들이나 무취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없는 곳.






옷가게 SLOW STEADY CLUB _ 미니멀한 외관은 뒤쪽의 가정집 , 빨간 단풍과 부조화의 조화를 이룬다

CAFE around 1/2 _ 익숙한 작가들이 소품 컬렉션이 재밌다. 



Cafe around1/2 _ 노란컬러과 대충 쌓여있는 책은 팔판동 골목을 위한것 같다. 



카페 듀자미 _ 케잌들과 생화는 그저 로멘틱하다 .








공간에 집착하는 첫째 사유는  지적인  자극이다.

고유의 분위기 나 확실한 테마를 가진 공간이라면 갤러리에 가는 것 만큼의 영감을 받기도  한다. 특히 소품이나 책들을 유심히  본다.  주인의 문화적 , 지식적 소양을 엿볼 수  있다. 가끔은 사진이나 여행지에서 사 온 듯한 소품을 통하여 타자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영감의  근원이다.

예부터 작가들의 담론의 시작은  카페였다. 우리는 환경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잘 인테리어 된 곳에 앉아 있기만 해도 새로운 생각들이 샘솟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공기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벽에 걸린 요소들이다.  평면적 포스터  대신에  오리지널 현대미술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의 가치는 논리적인 생각을 하기도 전에 느껴질 것이다.  그 공기를 비로소  완성시켜주는 것은 대화나 독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데시벨의  음악이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커피를 일회용 잔이 아닌 재미난 머그잔에 마시는 것은 일종의  재미다.

 이 정도의 즐거움을 즐길 줄 아는 것은 나의 예민함에 대한 보상 정도라고 해두자.





Cafe 88th 라떼와 미술작품 그리고 조르쥬 페덱의 "사물들"






  나는 Cafe 88th에서 카페라테를  시켰다. 투박하고 매트한 머그컵이 입술에 데었을 때 나쁘지  않았다.  음악은 보사노바를  지향했던 꽤 오래 전의 클래지콰이 가 흘러 나왔으며 가사가 들릴 듯 들리지  않았다. 테이블 간의 거리는 적당하다 못해 멀었으며 손님은 고작  두세 테이블 이 다였다. 나의 맞은편에는 어느 기하학적인 현대미술품 하나와 그 밑의 조각품이 마치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했다. 의자는 인체공학적이지는 않지만  꽤 낭만적이었기에 살짝의 불편함 정도는 잊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깥의 촉촉한 기운이 창문 너머  느껴진다.

 아직까지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커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오늘의 옳은 선택에 발걸음이  가볍다.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며 물에 젖은 낙엽을 자박자박  밟는다.

가을의 마지막을 암시하듯 바닥에 우수수 빗물에 한껏 절여진 빨간 단풍들은 

자신들의 운명과는 상관없이 최후의 생명을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고  있었다.  

또 한번 나는 우산이 빨간색이 아닌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렇게 해서 하루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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