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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Feb 22. 2017

시카고 미대 학생들은 어떤 작품을 할까?

"Grad Open Studio Night "에 다녀와서.



     

     

     

시카고 미술대학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대학원생들의 스튜디오를 구경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나잇(Grad Open Studio Night)”에 초대받았다. 예술 명문대인 그곳 의 학생들의 따끈따끈한 작품세계를 상업 갤러리까지 발표되기 전 정리되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인 상태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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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동기이자 이곳에서 얼마 전 석사 졸업을 한 R양은 나와 나란히 외골수 기질로 툭하면 수업시간에 학교 어딘가에서 딴짓을 하고 있거나 단체생활에 빠지는 둥 학교의 공공의 적이 되는 짓을 일삼기로 유명했다. 중요한 미술사 시험 당일날까지도 나란히 지각하면서 강의실로 들어가던 그날의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강의실 입구에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는 그녀와 달리 나는 태평하게 걸어가며 “그래 먼저 들어가!” 라며 손 흔들던 그 장면을 회자하며 여전히 깔깔 웃을 만큼 비슷한 듯 다른 성격을 가진 우리였다. 미대였지만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한 구상회화(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미술) 가 특화된  학교 분위기 속에서도 R은 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일부 교수나 학교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녀의 그런 재기 넘치는 모습이 좋아  대학 졸업 전부터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던 내가 기획 참여하고 있던 전시에 그녀의 작품을 초대하여 전시하기도  했다. 우리 둘은 정말이지 모교와 어울리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토플 공부를 하다가 어느새 그녀는 시카고대학원을 졸업까지 했고 나는 독립 갤러리스트가 되었다.


미국행 비행기 타기 하루 전날  “ 나 시카고 간다 ” 고  통보하는 나더러 도통 보통이 아니라며 감탄했지만 나는 그 메시지를 며칠 뒤에 확인하는 그녀를 보고서  더 대단하다며 더욱 감탄했다.




하필 이날은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축하하는 시민들로 교통이 통제 되고 퍼레이드를 할 만큼 역사적인 날이였다. 그 속의  이방인인 나.




그녀와 만난 그날은 공교롭게도 108년 만의 시카고 컵스 우승의 열기가 마천루를 뒤덮었다. C 모양의 파란 물결은 도시를 꽉 채웠고 이방인이었던 나는 그 광기 어린 들뜸이 부글거리던 도시의 템포를 따라가려 노력했다. 그 북새통 속에서  우리는 몬로 (Monro) 역 근처 번화가의 한 중간 스타벅스에서 4년 만에 재회했다.



너를 여기서 보다니!



반가운 포옹 후  대학시절 했던 것 과  똑같은 속도와 톤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4년 만에  낯선 도시에서 만난 우리는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묘한 연결됨을 느낀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두 아시아 여자를 둘러싼 이방인의 공기가 , 아니면 쏟아지는 한국말이 신기한 건지 흥미롭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았다.  R는 급히 “Hey I m sorry!! we just met” 이라며 LTE급 양해를 구하고 재빠르게 다시 우리의 화제로 돌린다.  



"빨리 여기를 떠나자 학교 구경시켜줄게!"


     

시카고 미대는 도보로 가능한 도심 곳곳에 여섯 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손에 맥주를 들고 예술의 담론을.
예술가의 작업실은 이렇다. 물감 자국 , 흐트러진 각종 물감과 물건들 마저 멋스러워 보이는
파티와도 같다.


작품수장고와 널부러진 캔버스를 보니 나의 학부시절이 생각난다.
여느 대학 처럼 각종 포스트.
자신의 얼굴이 프린트 된 천 조각에 즉석 명함을 만들어준다.



시카고 미술대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나만의 근거 없는 이미지의 연상으로 학교의 주류 작업들이  도널드 저드와 같이  미니멀하고 모던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스튜디오를 탐방할수록 나의 추측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이유는  



아주 공학적이거나



키치하거나

 

모호하거나




시적이였기 때문이다.




     

     

     

     






주로 상업 예술을 다루고  페인팅이나   조각의 카테고리 안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나에게  가공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이들의 작품세계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대략 이들에게는 예술이라는 범주가  보다 확장된 의미처럼 보였고 그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방출하는 듯했다.   


스튜디오마다 다른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그 생생한 장면에 넋을 잃기도 했다. 벗은 몸을 은색으로 칠하고 시를 낭독하고 있던 한 작가는  그녀 자체가 오브제였고  그 바로 옆에는 두 여성이 권투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미술에 관해서는 폭넓고 관대한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이 들의 각자 개성에서 강력히 뿜어져  나오는 예술 에너지는 어떤 미술관에서 보았던 블록버스터 전시보다도 단단히 나를 압도하는 것이 있었다. 어째서 전날 시카고 미술관에서 보았던 셀 수 없는 대가들의 작품 보다도 내 혼을 쏙 빼놓는 것일까.

   



열심히 나를 , 작가를 소개해 주는 그녀

     


아마추어 작가를 넘어선 현업 프로작가들도 많았다. 어쩐지  완성도와 밀도가 확연히 뛰어난 수준의 작가를 발견할 때마다 의아했는데 이미 작가로서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오른 사람도 교수진과의 심도 있는 크리틱을 얻거나 본인의 작품세계의 발전을 위하여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보통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가는 한국의 일반적 석사학위의 목적을 생각하면 어쩌면 배움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의식이 우리와 다르다 생각된다.

     

한 가지 더 놀랐던 점은 이 학교에 입학할 때 성 정체성 매뉴얼이 담긴 책을 나누어 주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적 다양성에 관하여 설명되어있다고 한다. 서로의 다름과 취향을 존중을 무작정 요구하기 전에 습득시켜 다양성이 공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학교의 인권의식과 감성에 감동을 받을 지경이었다.어쩌면 그런 환경이야 말로 예술가의 잠재된 어떤 것을 최상치로 끌어내 주는 것이 아닐까.  진정 예술학교가 예비 예술가에게 제공해야 하는 필수 요소이지 않은가?





     

 






어느새 밤이 어두워져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밀려드는 작품들에 취해있었고  R은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또 인사를 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린 듯했다.  

달리는 택시의 창문 너머 보이는 시카고의 야경을 보면서 학부 시절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왠지 학교에 좀처럼 스며들지 못했던 ,너무 뚜렷했던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늘 주위를 따라다녔던 추측의 이야기들과 집단에 완전히 스며든 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들 속에서 우린 정말이지 이방인이였다. 학교 라는 작은 공동체를 지배하던 집단주의에서 늘 튕겨져 나올수 밖에 없는 성격의 우리는 그시절 보다 좀 더 짙은 자신의 색을 지닌 채로  북미 대륙에서 또 한 번 이방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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