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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Feb 18. 2017

세상에서 가장 허심탄회한 싱가포르의 미술관

미술관의 자세.

싱가폴의 금요일 저녁. 이런 풍경을 조금만 지나면 미술관이 나온다.




두 명 지나가기도 벅찬,  놀라울 만큼  좁은 인도를 통과해 금요일 저녁의 도시 풍경을 스쳐 지나가던 중이었다. 여느 도시의 금요일 저녁처럼 이곳 싱가포르의 금요일도 몹시 들떠 있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TV 채널을 바꾼 것처럼 거리의 세련됨과는 무관해 보이는 클래식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싱가포르 현대미술관 (Singapore Art Museum) SAM 이였다.  



.미술관은 과거의 기억을 존중하는 동시에 앞으로 변해갈 미래의 시간을 바라본다




이곳은 1855년 La Salle Brothers 로부터 운영되던  싱가포르 최초의 가톨릭 학교였다. 학교가 설립되고 135년 이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는데 어쩐지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났다.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물 앞에 미래에서 날아온 듯한 푸른색 현대의 조각 작품이 장난스럽게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금요일 여섯시 이후.  무료관람에 야간오픈을 한다.




도착했을 때 즈음 때마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입구에서 외관에 감탄하는 동안 하늘은 순식간에 건축물과 함께 변화했다. 천연색으로 물든 해 질 녘의 하늘은 낭만적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순식간에 떨어지는 해를 손으로 받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모든 도시마다 각자의 하늘색 이 있다. 그 색채의 향연은 금방 어둠에 뒤덮여 늘 아쉬워도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medium AT LARGE"




클래식한 외관과 반대로 내부는 현대식으로 간결하게 리모델링되어 반전 감동을 주는 건축여행에서 자주 보던  클리셰는 없었다.  미술관의 내부는 100년 의 세월 동안 가톨릭의 종교적인 기운이 한껏 스며들었을 내부의 벽과 아치형 문 , 화려한 무늬의 카펫 , 모든 것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대신 전통적인 공간에 반한 전시는 실험적 이였다. 첫 번째 아치형 문을 열고 들어간  “Medium AT LARGE"  展은 페인팅, 조각, 혼합매체 , 소리 , 영상 , 퍼포먼스, 설치 , 사진 , 언어 등 모든 장르를 어우르는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이 작품을 탐험하며 과정과 방식 그리고 재료에 대한 탐험을 조망하는 전시였다.


작품의 재료로서 사람의 머리 , 비누, 꿀과 같은 일상적 오브제를 재료로 쓴 작품부터 비물질적인 소리 , 텍스트를 언어로 이야기하는 작품까지 그 범위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포괄 적이었다. 아시아 미술의 허브답게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등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했는데 각자 다른 국가에서 온 작가들로부터의 완벽히 다른 방식의 현대미술의 전시기획은 계획적으로 보이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Chua Chye Teck _April 2008 .

일본의 화려한 벚꽃을 유약하지만 막강하게 단순화시켰다. 포토샵 색상 스포이드로 색을 집어 온 것처럼.


Mit Jai Inn _ Untitled 2014 Mixed Media Installation

캔버스가 리듬감 있게 말린 조각의 형태로 존재한다.

작가는 예술 작품에 존재하는 재료의 카테고리에 반항하여 고급 미술과 공예품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걸까.


Mella Jaarsma _Shaggy hair culers 2008

여성의 상징인 머리카락은 성적 고정관념에 대한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



Jane lee _Status Mixed Media 2009


전통적인 캔버스로 부토 완전히 탈피하여 거친 물감 자국들이 그 자체로 액자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재료의 분류에 대해 차가운 냉소를 던지는 듯하다.






미술전시를 전투적으로 보다 보면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있다. 평소 평온하던 뇌에 갑자기 다양한 종류의 신선한 충격을 주면 과부하가 되어 정신적으로도 지치는 것이 당연하다.  오전부터 바빴던 여행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탈수 직전이었던 나는 널찍한 공간에서 영상작품을 보면서 대형 쿠션에 몸을 털썩 눕혀 잠깐의 꿀잠으로 여독을 풀었다.



싱가포르 현대미술관은 미술관 특유의 경직된 공기 대신 자유롭게 모든 것을 관객에게 맡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동네 옆집 아저씨 같았던 전시장 안내원이 캐주얼한 카라 티와 청바지를 입고 작품 앞에서 사진 찍어주기를 자처했고 관광객인 것을 알고는 다가와 이것저것 설명해주려 하기도 하였다.      




전시스텝의 캐주얼한 옷 을보라.  개념미술 작품의 일부였던 꿀빨대를 웃는얼굴로 나누어준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 대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스텝들이 행여나 관람객이 그림 앞에 다가갈까 사진 찍을까 노심초사하며 살벌한 감시를 하기 때문이다. 걸려 있는 작품의 가격에 따라 관계자의 긴장도 덩달아 상승한다. 나 또한 전시를 할 때 자주 느꼈던 긴장감 이기에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면 눈으로만 공간을 담기에는 너무 아쉬울 것이다. 작품을 관찰하고 음미하게 위해서는 따뜻한  온도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여행자의 상황에서 관람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친근하게 다가오는 미술관의 분위기가 너무 고마웠다.




 이 미술관 참 허심탄회하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내내 맴돌던  유연한 분위기는 작품의 기운을 더욱 풍요롭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관객들의 행동을 제지하기 전에 충분히 안전하게 전시를 잘 구상하여 파손이나 사고의 위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놓고 관람자에게는 더 자유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듯했다.


내가 기획자의 입장일 때도 행여나 작품이 떨어질까 누군가 만지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안전한 조치와 관객들의 문화 의식까지 맞아떨어진다면 기획자와 관객 모두에게 참 좋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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