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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Feb 08. 2017

애드워드 호퍼의 그림이고 싶은 뉴욕에서의 순간

아름다운 괴물 같은 도시에서의 고독과 유희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맨해튼의  
50 년 된 역사 깊은 레스토랑에서
거대한 프로즌 핫 초콜릿을
홀로 홀짝이고 있었다.







창백한 허무의 왕자와도 같았던 앤디워홀과60년대의 세렌디피티3


이곳은 워홀의 첫번째 갤러리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 드로잉을 전시하며  솔드 아웃되기도 했다.





맨해튼 한 중심에 위치한 세렌디피티 3 (Serendipity3)은  50년대 , 시대를 풍미했던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단골집이었다.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들어온 곳이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눈에 띄는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삼삼 오오 모여 저녁 만찬을 하고 있는 뉴요커들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들떠있었고 묘하게 격양되어있는 것 같기도 했고 과도하게 즐거워 보였다. “모두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 는 말을 설명해야 한다면 이처럼 완벽한 그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의외의 한 예술가를 떠올리게 된다.

     



     




핫핑크색 벽 위에 눈을 의심할 만큼 무지막지하게 달려있는 조명과 거울은 핑크 색 고유의 적나라함을 더했다. 이것이야 말로 맥시멀리즘의 정수 아닌가. 혼을 쏙 빼놓는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찰나 난 어느새 구석의 작은 1인용 작디작은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마치 공간의 끝에서 모든 것을 관람하라는 듯한 자리였다.




세렌디피티의 시그니쳐 매뉴 . 쵸코프로즌. 휘핑크림은 전혀 달지않고 부드러워 초코맛의 풍미를 더해주었다.



반면에 15불짜리 초코 프로즌은 은 잔인하도록 크고 달콤했다.  대도시 , 밤 , 초콜릿  나는 이 세 가지에 관해서라면 대책 없이 관대하다. 거기에 고독을 피할 수 없다면 손 쓸 새 없이 미끄러지듯 자아도취에 빠져버리는 상태가 된다. 나는 어쩌면 이런 상태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또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의 외로움은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하다.  유희의 시간인 것이다.

     


혼자서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보고 웨이트리스가 한번, 옆자리의 예쁜 여자들이 두 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자처했으나 고맙지만 괜찮다며 미소 지어 보였다.   저들은 이곳에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음식들을 각자 앞에 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무엇을 바랄까? 무슨 관계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야한 색깔과 피로한 조명 , 아름답지만 정신없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나는 안정된 상황에서는 얻기 힘든 각종 생각에 접근하느라 바빴다.  뉴욕이라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나는 마치 나만의 감각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어지럽고 신나는 삶의 템포를 가진 아름다운 괴물 같은 도시인 뉴욕의 고독을 덤덤하게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1882~1967 미국 화가)의 그림 속 장면이 머리를 스친다. 앤디 워홀을 만나러 왔다가 호퍼를 만난 셈이다.






Automat 1927



sunlight in a cafeteria 1958



293호 열차 C 칸  1938


Western motel 1957



내러티브가 결여된 화면 속 공공장소에 홀로 앉아있는 여성들. 도통 감정을 읽기 힘든 묘한 시선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군중 속에 홀로 있는 여성에게 연민 어린 시선을 품게 된다. 배신이나 상처 상실감을 떠올린다. 이 여성들이 걸친 옷과 장식은 괜스레 더 우아해 보이기도 한다. 손에 든 책과 커피잔은 그녀의 지적 수준과 고급 취향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이 모든 여성들의 공통점은 외로움이지만 그 외로움이 혼자인 그녀들을 더 아름답고 고귀하게 만들어 주며 그녀의 인생에 관해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사연 있는 여자" 에게는 왠지 더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매혹적인 사람이 낯선 곳에 홀로 있으면 그곳의  이국적인 정서가 그 사람의 매력을 증폭시킨다. 나도 홀로 낯선 곳에서  어떤 것을 경험할 때  나 자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심화되는 것을 느낀다.  내면적으로 훨씬 깊은 곳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가장 나 다워지므로. 그런 상태의 나를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는 분명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득 품는 것처럼 말이다.




휘트니 뮤지엄에서 만난 호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만난 호퍼. 뉴욕을 누비다 보면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꼭 보게 되는 그의 그림이다.




그의 그림에는 회화를 더 회화처럼 보이게 하는 마티에르도 없고 아름다운 색채도 없다. 톤 다운된 절제된 색은 차분하고 정적이다.  가장 다양한 색채를 가진 화려한 뉴욕의 초상을 담았다기엔 어딘가 역설적이다. 멋지고 자유분방한 남녀가 등장하는 생동력 넘치는 앤디 워홀이 그려낸 맨해튼의 초상과도 너무 다르다.

뉴욕에 대한 호퍼의 통찰력은  모두가 뉴욕의 격렬한 에너지와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 그 이면의 허무와 고독감을 관통한다.




1920년의 뉴욕은 히스테리를 느끼기 직전이었다. 파티들은 성대해졌고 생활의 리듬은 빨라졌으며 파리에서 스타를 모셔오느라 돈을 탕진했다. 쇼는 더욱 화려해졌고 건물은 더욱 높아졌고 풍속은 난잡해지고 술은 더 싸졌다. 하지만 이 모든 특혜가 삶의 기쁨을 정말로 많이 가져다주진 못한듯하다. 젊은이들은 너무 일찍 지쳤다. 그들은 유연성을 잃고 활기를 잃었다.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사람도 일주일 중 나흘은 취해 있었고 민감한 자들일수록 더욱 마셔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아까 그 웨이트리스는 혼자 있는 나에게 일종의 연민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직업적으로 완벽한 수행을 하고 있는지 모를 모호한 태도로  are you okay with everything?  하며 수시로 말을 걸고 신경 써 주었다. 더 깊이 고립되고 싶었던 나는 그의 호의가 살짝 성가셨다. 눈앞에 펼쳐진 화면 속 사람들을 들여다 보고  내면에 집중하는 데에 시간을 쓰기에도 벅찼다.  과도하게 친절했던 그는 결국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젠장! 나의 유희가 산산조각 났다.

나는 거절과 함께 2만 원짜리 음료만을 제공한 것에 비하면 꽤 후한 팁을 올려놓고 오늘의 사색은 여기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팁을 확인하고 Are you sure? 이라며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과, 뉴욕 ,밤 , 에드워드 호퍼



프로즌 초코에 취해 술을 마신 것처럼 알딸딸한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 내가 묵는 호텔에도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것처럼 큰 창문이 있었고 창문으로 도시를 내다보라는  배려가 가득 담긴 소파가 창문에 달려 있었다. 나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좋아하는 음악을 튼 뒤 창문 너머로 대선 열기로 한껏 달구어진 58번가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가지고 온 책에는 호퍼의 그림이 짤막하게 실려있었다.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기묘한 하루다. 왠지 그의 그림 속 여성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사과를  집어 들자 비로소 만들어진 완벽한 뉴욕적 미장센 속에서 나는 감히 유쾌하다고 할 만한 고독을 달콤하게 씹어먹고 있었다.




Hotel window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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