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케이크 세트 같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놀기.
우린 누구나 어디로든 여행 갈 수 있는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극이나 정글 탐험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처럼 선진화된 도시를 여행할 때 , 일정 부분은 서울과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꼭 숙지하고 있다. 때로는 서울에서 지낼 때의 습관이 여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평소에도 주말보단 평일 낮에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는 것을 즐긴다. 요즈음 서울에도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 미술 관람객들로 인기 있는 미술관은 문정성시를 이루는데 미술품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 머리통 모양 구경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작품보다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찬 미술관은 세일하는 백화점에 들어서 옷 때문에 날리는 먼지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다.
옷 쇼핑과 미술작품 감상과 다른 점은
대상(Object)과 나 사이에
공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나의 일상적 습관은 자연스럽게 조용한 날을 찾아서 미술관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화요일 비 오는 날 흐린 날씨 오후의 시카고 미술관은 한적 했다. 아마도 거대한 건축물 때문에 웬만해선 좀처럼 붐비기 힘들 것이다.
시카고 미술관은 뉴욕의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 보스턴 미술관과 함께 미국의 삼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웅장한 스케일과 고대 유물부터 현대미술까지 3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속이 뚫리는 미술관에 들어서자 왠지 하루 종일 머물 수도 있을 것 같은 패기로 가득 찬다. 하지만 나는 다 둘러보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이런 대형 미술관에서의 과도한 관람 계획이나 욕심은 금물이다.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음식 , 일할수 있는 뇌 용량이 한정되어있듯 마음속의 감동 배터리가 다 차 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아무리 대작을 보아도 면역이 되기 때문이다. 브라우니와 커피 한잔이 생각나면서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거기서 그림 보기를 당 장 그만두어야 한다.
라커에 짐을 맡기고 미술관 맵을 보고 관심 있는 섹션 몇 개를 고른다. 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인 2층 인상주의 , 컨템퍼러리 아트 , 미국 모던아트 그리고 3층의 모던 아트를 메인 무대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앤디 워홀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저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 노부부는 60년대의 워홀과 동시대를 살았다. 대단한 시간의 교차가 느껴진다. 나는 60년대를 살았던 앤디 워홀을 작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사색에 빠진다. 그가 21세기를 살았으면 과연 어땠을까? 그가 이 시대를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를 던질까.
미술관은 조각 케이크이다.
몇 년간 미술관을 집착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미술관 면역증이 생겼다. 웬만한 작품에는 감동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인상파는 지루하고 현대미술은 흥분된다. 극사실화는 단지 잘 그린 그림 같지만 가끔 손가락 표현이 어쩐지 어색하다. 나는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 대신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공간 자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미술관은 정말이지 시간적인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는 신비한 장소이다. 근대부터 중세 , 현대미술까지 내가 살아보고 겪어보지 못했던 시절로 회기 할 수 있다. 나는 아주 잠시나마 그들이 살았던 시대 속에서 시간을 여행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술관 안에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끔 비현실적인 기분이 든다.
미술관은 역사의 시간 조각을 여러 개 가져다 놓는다. 조각들이 모여서 미술관이 되고 나는 취향에 따라 조각 케이크를 집어 든다.
혼자서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세심한 것들에 대해 반응할 기회가 많다. 큐레이터가 수많은 고심 끝에 탄생시켰을 공간 분할과 작품 배열 , 그 기운이 한 공간에 뒤섞여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의 주인공이 되어 본다.
미술관 보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 벽 페인트는 어떤 색으로 했는지 또 벽과 걸린 그림의 상호관계는 어떤지 또한 관객들의 옷차림과 분위기 , 또 어떤 방식으로 미술품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서서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살펴보고 누군가 에게 다가갔다.
"이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
같이 사진 좀 찍어줄래요?"
말을 건 그들은 한 칸마다 지키고 서있는 보안요원이었다. 직업적 수행 의미 특성상,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 받는 그들은 미술품에 손이라도 댔다가는 수갑 들고 쫒아올 기세로 날카로운 눈길을 쏟아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자 경직된 표정은 미소로 바뀌고 흔쾌히 내 폰을 들고 구도를 잡아준다. 나는 같은 수법으로 5관 이상의 곳에 보안요원에게 부탁하여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었다. 나는 마치 미술관의 악동 같았다. 그 누구도 홀로 나처럼 공간 곳곳을 그렇게 활개치고 다니지 않았다. 모두 조용하게 그림을 감상하거나 간단한 스케치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B컷! 아이폰 카메라의 시점에 따른 비율 차이를 보여준 우리의 보안요원들 . 비컷이지만 밉지않다!
하지만 이게 내가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발랄하게 소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에게 말을 걸어보고 단색화 구간에서 살짝 경직이 되기도 했지만 몬드리안의 구도에 감탄하고 피카소 앞에서는 사진을 찍었다. 모네의 더미를 보고 학부시절의 미술사 시험문제를 떠올렸고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을 보고 애써 대단하다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또한 엘스월스 캘리로부터 간결한 색과 형태가 풍기는 미학을 얻는다.
다른 세계와 시기에서 날아온 미술품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순간을 담아두고 싶다. 나는 교차하는 여러 시대 속에서 걸어 다니는 역사의 증인이 되고 여러 가지 조각 케이크를 두고 고르는 신나는 고민을 하듯 마음에 드는 섹션을 골라 그 시간을 탐험한다. 갖가지 예술품들의 기운을 먹고 나를 구성하는 모든 기관의 색이 더 풍부해짐을 느낀다.
아직 보고 싶은 것이 많지만 점점 발이 아파오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커피도 간절해졌기에 미련 없이 빠져나온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또 만날 작품들을 뒤로하고선 쿨하게! 마치 연인과 작별인사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