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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Dec 02. 2016

시카고 , 모노크롬화 같은 도시  

가을의 시카고를 걷다가 빌딩 숲에서 길을 잃다.


나오시마 섬이 선 전체가 미술관이라면
시카고는 도시 전체가 건축 박물관 같기도했다.

비 내리는 하늘도 있고 단풍나무까지 볼 수 있는 그런 박물관.







깜깜한 밤이나 이른 아침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나만 독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요한 정적 때문이다



아침 6시 어젯밤 이 멋진 호텔의 로비에는 어젯밤의 꺼지지 않은 열기가 곳곳에 존재했다. 왠지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호텔 로비에 있는 Cafe Intrigal에서 플랫화이트와 에그 베네딕트를 해치웠다.






 낯선 도시에서의 가을을 기대하며  걸친 바바리코트와 베이지색 스커트가 마음에 든다. 스웨이드 구두 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  거리의 이른 아침에는  잠 덜깬 눈을 한 채커피를 쥐고 빠른 걸음을 걷는 사람들 , 산책하는 개들 , 그리고 가을의 색채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는 일상적  모습이다.



뉴욕의 건축이 예술적 요소가 강한
회화적 형태 라면  
시카고의 건축은 직선과 점이
단순 반복되어있는 모노크롬화였다.



북쪽 다운타운에 위치한 호텔에서 밀레니엄 파크 까지는 시카고 강을 건너 이십 분 이상이 소요된다. 호텔에서 나서자마자 건축박물관 입장이 시작되었다.   한 곳에서 머뭇거리다가는 놓칠 것 같아 안달이 날 만큼 사방천지가 하늘 위로 우뚝 솟은 건축물들의 연속이었다. 거대한 내륙 호수가 교차하는 대로변에 빽빽하게 들어선 끝이 없는 파노라마 같은 이도시의 마천루는 나를 뚫어지게 내려다본다. 거대한 자본으로 만들어진 , 한치의 오차도 거부하는 촘촘한 직선의 나열은 차갑고 냉담하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사람을 볼 때 와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윈디시티라는 명성에 맞게 바람이 적절히 불었다.  속마음은 절대 이 거대한 도시에 주눅 들지 않으리라 더욱 허리를 똑바로 펴고 눈을 크게 뜨고 가능하면 큰 보폭으로 거리를 걷는다.





조용익 work-76-416




미술관에서 큰 대작 앞에  서 있을 때면  괜스레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단색화 작품을 보았을 때 , 그 무수한 점과 선의 오차 없는 나열들을 보았을 때의 전율과 비슷한 것을 느낀 적이 있는데 왜 이 거리를 걸으면서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단색화 (Dansaekwha : Korean Monocrome painting)의 표면처럼  미니멀하고 단순하며 몹시 반복적이었다. 물론 모노크롬 화가들의 정신적 초월을 향한 반복적 행위와 같은 내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시각적인 의미에서의 반복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시카고 파 건축가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단색화 작품들도 이 도시와 몹시 닮아 있다. 물론 예술적 동기는 정반대와 가깝다. 끊임없는 수행과 정신성에서 나오는 반복을 통해 진가를  드러내는 단색화와 달리 이곳의 건축물은 상업적이고 몹시 직설적이다. 시카고는  화재 이후 빨리 재건 사업에 빛나는 성공을 거두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


“ Less is more”를 주장한  미스 반 데 로에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번의 건축 철학이 온 도시에 퍼져 있는 듯했다.


이우환1976년  선으로부터 캔버스 위에 광물 안료와 유채 161.9 x 130.2cm



위의 이우환 의 반복된 선과  도시의 직선은 어딘가 닮아 있다.



은색 강철 정글 속에서 대비되는 단풍이 더욱 붉어 보인다.


날씨 좋은날 다른 각도에서 찍은.


시카고 강을 건너면 남쪽.




미국 중서부의 중심도시 시카고는 그중에서도 가장 미국적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보여준다. 미국의 경제 발전 사이클에 따라 몇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던 이곳은  1871년 대형화재로 인해 도시 전체가 무너지는 참사를 겪게 되는데 도시 재건 사업을 추진하던 이 시기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루이스 설리번과 같은 훌륭한 건축가들이 탄생하게 된다. 당시 시카고와 뉴욕은 미국 대표 도시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였는데 유럽 문화에 영향을 받아 장식적인 뉴욕의 고층빌딩과는 달리 시카고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프레임과 유리의 간결한 구조로 표현하는 등 지나치케 솔직한 상업 건축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거대한 덩어리들


기다란 직선의 건축 박물관을 지나자 비로소 저 멀리 둥근 형태가 보인다 . 밀레니엄 파크에 닿은 것 같다. 걷기만 했는데도 오늘 하루의 에너지중 절반 이상은 써버린 것 같았다.

가을이 만개한 밀레니엄파크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 _ Cloud Gate 클라우드 게이트


직선으로 가득한 도심 한가운데 마법처럼 쿵 떨어져 있는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스테인리스 덩어리 클라우드 게이트 에는 거대한 시카고의 마천루가 오롯이 담겨 있다.


아니쉬 카푸어 국제갤러리 전시 전경. 사진 촬영 Keith Park [국제갤러리 제공]



나는 올해 서울 삼청동 국제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신작을 보고 현기증이 났었다. 티끌 한점 조차 허용하지 않는 듯 보이는 완벽한 표면은 비인간 적이면서 폭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치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듯 , 쳐다보고 있으면 공간감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이곳 시카고에서 카푸어의 작품은 흰 벽의 갤러리가 아닌 도시 한가운데서 하늘과 고층 빌딩들 , 단풍나무 ,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의 색깔과 형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있어야 할 곳에 제자리를 찾은 듯 한 카푸어의 스테인리스 작품은 흰 벽이 아닌 외부로 나왔어야 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시카고의 도시를 그대로 담아내는 자비로운 곡선과 표면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듯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에 있어서 불편한 것이라고는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뿐이었다. 나는 온갖 카메라 장비를 동원하여 장엄한 클라우드 게이트를 배경으로 한  내 사진을 찍느라 삼각대를 놓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갑자기 내게 노란색 미러 선글라스를 쓴 강직해 보이는 남미계의 청년이 다가와  니 사진 좀 찍어줄까? 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스스럼없이 카메라를 건넸다. 그는 저 멀리 구도를 잡고 앉은 자세까지 취해 가며 여러 번 셔터를 눌러주었다. 보통 모르는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면 수평 수직이 엉망진창이 되거나 배경은 상관없이 얼굴만 덩그러니 나와있는 사진이 나올 확률이 90프로 이상이나 나는 10프로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는 밀레니엄 파크 근처의 비즈니스맨인데 잠깐 바람 쐴 겸 나온 참이라고 했다. 그가 찍어준 수십 장의 사진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여행 중 이렇듯 먼저 다가와 사진기사를 자처하는 사람이나 부탁했을 때 정성껏 찍어주는 사람이 참 많았다. 이쪽 분야에 모든 운을 다 써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 두려울 정도였다.



자연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강철로 빛나는 이 도시 곳곳에도 가을 얼룩이  퍼져 있다. 딱딱한 건물에 달콤하게 자리 잡은 , 왠지 더 색이 짙어 보이는 단풍에 몇 번이나 정신을 놓았는지 모른다. 어느새 구름이 시카고의 건물 꼭대기부터 점점 밑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안개는 도시의 하늘부터 건물까지
하얗게 지우개질 하기 시작했다.






잘못 들어선 주택가에서 만난 강아지들.


급기야 비가 내렸다. 숙소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돌아가는 길 , 나는 올 때 마주쳤던 건물들을 다시 지나쳐 돌아가는 길에 나를 끊임없이 응시하던 도시와의 기싸움에 굴복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것인데도 웬일인지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건물들 각자의 독자성이 사라지고 모두가 인정사정없는 직선 강철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인가? 나의 내부에서는 보다 더 강렬한 색채들을 보기만을 간절하게 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빨리 이 고철덩어리 정글에서 벗어나 브리토를 먹고 색깔이 많은  미술관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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