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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Nov 24. 2016

여행자의 영역

일상이었다면 절대 하지않을 피곤한 일들을 감당하겠다는 의지.







평행한 상하이 공항의 활주로에서 유나이티드 항공기 보잉 747이 새까매진 도시 위를  이륙했다.

이 비행기는 지금부터 열세 시간 하늘을 떠 있을 것이고 퍼시픽 , 하와이 , 피지 섬 위를 날아 미대륙 시카고에 도착할 것이다.


          

거대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점이 되는 순간.

 


저 밑에는 미처 매듭짓지 못한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있고  미래에 대한 근심과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받게 되는 무언의 요구가 있다. 자 이제 그 모두가 점만큼이나 아주 작아졌다. 비행기가 그 모든 것들 위로 솟구치는 순간 묘한 심리적 쾌감이 들었다.


           

Can I get a window seat? Dont wan't nobody next to me .




이 대형 항공기의 좌석은 반도 차지 않아 홀로 세 사람의 좌석을 모두 쓸 수 있었고 상하이 출발이라 한국사람은 나뿐인 모양이었다. 잘됐다.  나는 마침내 한국말을 쓸 기회를 박탈당했고 비로소 여행자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제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되어있다.  일상 속에서 얻기 어려운 생각과 기억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내부를 응시하는 시간인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에서 피어난다는 말을 믿고 자극을 필요로 하거나 불쾌한 것들을 떨쳐야 할때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 닿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사치는 물론이고 관대함 마저 필요하다. 예컨대  우리는 비행기 안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반나절 이상을 견디면서 소화되지 않는 기내식 식사를 섭취하기 위해 일상을 벗어난 범위의 돈의 액수를 지불한다. 이렇게 힘든 시간 끝에도 오아시스란 없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온갖 종류의 성가신 절차로 가득 찬 , 미의식 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항에서 보안을 이유로 내 사적인 영역을 침범받기도 한다. 또 그 딱딱한 표지판과 숫자들은 어떤가? 공항은 진정 자비란 없어 보인다. 이런 쾌쾌한 공항에서 나오면 볼거리를 찾아 움직여야만 하는 본격적인 피곤함이 시작되는데 이런 불편함 종합세트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에는 왠지모를 불합리함이 포함되어 있다. 난 어째서 이렇게 귀찮은 짓을 사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없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사건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돈과 시간을 배팅하는 내 모습을 보며 카지노 안을 어슬렁 거리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일상이었다면 절대 흔쾌히 하지 않을
그 모든 피곤한 일들을 감당하겠다는 자세야 말로
여행자의 영역 안에서만 가능한 일.

여행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은 표지판.


15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시카고에 도착하자 또다시 밤이 반복되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지하철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비행기 안에서 떨쳐 내지 못한 공기를 애써 도시속에 밀어 넣었다. 누가 봐도 긴 여행을 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짐을 지고서 시카고의 시내 한 중간에 서 길을 찾아 헤멨다. 내가 나를 봤더라도 무어라도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


Ohio Street이라는 이국적인 표지판을 한번 보고 ,

내게 “Are you a traveler? ” 라며 말을 건너는 청년이 지나가자 , 그리고 더 이상 인터넷이 되지 않는 핸드폰을 보고선 나는 낯선 곳에 와있다 는 것을 실감한다.




호텔에 짐을 두고서 떠나가는 밤이 아쉬워 다시 나온 다운타운 거리에는 한국에서 한 시간 줄 서서 먹는다던 쉑쉑 버거가 보인다. 아이러니 하게 한산한 그곳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 가장 상단의 메뉴를 주문하고 사인용 테이블에 앉는다.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소요된 시간을 합쳐 24시간가량의 시간을 투자하여 고작 이 햄버거를 먹으러 온 것 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들리는 영어, 예상외로 따뜻했던 시카고의 밤 날씨 , 사람들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낮선이들로 가득한 곳에 문득 혼자라는 사실은 매 순간 은밀한 매혹을 더한다.


햄버거 가게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 정도 허기가 채워지자 갑자기 가능하다면 빨리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내 육체는 상상 이상으로 지쳐 있었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마저 머리는 지금 당장 볼거리들을 찾아 나서라고 잠시도 가만 놔두질 않는다. 이렇게 피곤한 것이 여행인 것을 나는 왜 늘 하면서도 안달인 것인지.



FreeHand Chicago Hotel.


시카고 다운타운 한중간에 위치한 프리핸드 호텔의 로비는 몹시 트렌디하며 생기가 있었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이들은  바에서 잔을 들었고 옆 카페에는 시카고 컵 결승전이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다시 한번 이 호텔을 선택한 이유를 눈으로 확인한 뒤 객실로 돌아가 기절에 가까운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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