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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02. 2017

겨울과 봄 사이 그 어딘가의 제주도.

사적이고 은밀한 여행.







자연을 여행하는 것이 도시의 악을 씻어내는데 필수적인 해독제이다.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때때로 변하는 제주의 푸름농도



   

하얀 겨울의 색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녹기만을 준비하는 시한부 눈들로 덮인 , 겨울과 봄 그 어딘가의 섬 제주에 왔다.  쌓인 눈과 맞닿은 하늘이 이루는 너그러운 직선을 따라 그만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이런 겨울 공기 , 눈부신 태양 , 높은 곳의 구름과 투명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날렵하고 경쾌한 철제 식물들을 바라봄은 세속적인 욕망들로 가득 찬 마음과 도시에서 가득 안고 온 질끈 한 상념들을 무감각해지게 한다.

 

출발하기 하루 전 폭설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되고 배가 묶이는 둥의 사건이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다. 이렇듯 자연은 태연하고 세상은 자주 슬프다.  주기적으로 섬에 끌려 들어오는 것은 이런 자연의 온유를 닮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은밀하게 자연 바라보기



야자수를 담은 커피


     


제주도에 머문 며칠 동안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조용하고 풍족하게 조식을 먹고 원 없이 블랙커피와 페퍼민트 티를 마셨다. 저녁을 먹어 배가 부르면  꼭  차가운 겨울 공기 속 온수 속에서 밤 수영을 하고 흠뻑 젖은 채로 카트를 타고 덜덜 떨면서 호텔로 돌아와 몸이 벌게질 때까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했다.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는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1층 테라스 마당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겨울의 냉기를 만끽했다. 원 없이 냉장고에 가득 찬 레모네이드를 꺼내 마셨다. 자연 안에 이토록 가까이 와있다는 핑계로서 게으름과 호사를 잔뜩 누릴 작정이었다. 이따금 호텔 밖으로 나가 해안가를 산책하거나 동네 개들이나 구경하기도 했다.



고립된 고독이 고요한 기쁨으로



바다를 향해


 

건물이 각자 분리되어 하나의 빌리지를 이루고 있어 사람 구경이 힘들기로 유명한 이 호텔은 사적이고 은밀한 곳에 와 있다는 기쁨을 주었다. 나와 가까이서 부대낄 만한  것은 하늘, 바다, 그리고 낮 선식 물과 돌들 뿐이었다.  조식을 먹을 때나 수영장으로 이동할 때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를 카트를 타고 이용하는데 운전해주는 호텔 직원만이 간간히 마주칠 뿐이었다.



Middle of nowhere




며칠간 이러한 생활의 반복되었다. 호텔에서 발 닿는 곳에 마땅한 식당이 없기에 룸서비스에서 나오는 로컬스러운 식사가 살짝 물리기 시작했다. 문득 서울에서 오분만 걸어가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생각났다.



피자 ,샌드위치 , 햄버거 , 진득한 젤라토 , 별 노력없이 들를수 있는 편리한 백화점 푸드코트 ...

생존의 활력이 활개 치는 지하철

욕망 가득한 상점들

멋진 사람들로 가득찬 혼잡한 인도

위태로운 행복들로 가득 찬 거리 ....



그래 ,나는 미친 도시 안에서 맨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이곳에 온 것이다.

 



     

겨울의 제주도는 삼월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잊혀지기 싫은 듯 배터리 다된 오디오처럼 끝까지 맥 빠진 추위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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