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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Dec 11. 2023

엄마, 엄마가 아빠를 그냥 냅둬.

사랑하는 딸, 주말인데 엄마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어서 미안해.

어제는 아빠랑 다투는 모습 보여서 미안해. 어른들도 가끔 의견이 안 맞으면 다투곤 하는데 그걸 우리 금쪽이들에게 들켜버렸네. 아빠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잘 안된다. 엄마 어쩜 좋을까?

자기 전 어린 꼬맹이에게 사과하며 했던 이야기를 아이가 듣고 대답을 했다.

"엄마, 엄마가 아빠를 그냥 냅둬."

순간 너무 놀래서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

그래.. 어린 너도 정답을 아는구나.

엄마보다 현명하다.

우리 아이들이 나의 고단함을 알고 있었다.


항상 가족이 먼저고, 가족이 우선시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있던 나는 자꾸 밖으로 돌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남편을 끌고 와서 나와 아이들이 있는 곳에 앉혀놓았다. 그야말로 평범한 '가족'처럼. 그렇게 끌고 와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끌려온 남편은 기분이 좋았겠는가?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잘 건네지도 않고 눈만 감고 옆에 누워있기 일쑤였고, 억지로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고 똥 씹은 얼굴로 따라다니기만 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남편에게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고 그이가 우리와 함께 했으면 하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왔다. 하지만 그 끝은 늘 비극이었다.

퍼붓듯 쏘아댄 나의 불만이 시작되면 남편의 폭언에 남는 건 낮아진 자존감뿐.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낸다. 


이번 주말에도 상사 비위 맞추느라 같이 골프를 가기로 했는데, 거기까진 백번 양보해서 오케이 했다. 

그 전날 외박 한다는 걸 허락하지 않았더니 사춘기 중2 모드로 변신, 또다시 같은 패턴으로 시위를 하기 시작하며 무게 잡고 집으로 들어왔다.


유럽여행이 끝이길 바랬다.

이젠 골프다. 골프얘기를 한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만 좀 해 제발 나 좀 제발 살려달라고!!!!!!"

그 후 이혼 소송준비까지 할 정도로 격하게 다퉜고 겨우 말만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상사 따라 출장 갔다가 외박하고 그다음 날 골프 치러 간다는 얘기에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남편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어둡고 침침한 시간을 거쳐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낸다. 


남편은 유럽여행을 가지 말라는 내게 이제부터 생활비 똑같이 내라는 둥 금전적 협박과 인신공격으로 나를 모함했고, 이혼을 해서라도 다녀오겠다고 했다.


골프까지 치러 다니면 이제 주말까지 독박에 또 상사랑 골프여행 간다고 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혼자 벌써 동남아 찍고 그 버려지고 외롭고 힘든 그 기분을 또 감당해야만 하는 내가 자신 없었기에 비명으로 대신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흐른 뒤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골프 치러 다니고, 남편이랑 관계가 조금씩 회복하니 또 나는 남편 골프바지와 신발 그리고 모자까지 선물하고 있었다. 외박은 안되지만 첫 라운딩 잘 치고 오라며 선물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나는 아이들과 친정으로 왔다.


친정으로 온 이유는 막상 그 사람 얼굴을 보면 화가 날까 봐 나 자신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남편에게는 일상인데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다. 그것을 매번 내가 기분 좋게 보내주길 그 사람은 기대하고 갈망하고 있다. 허나 그의 욕구는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가정 안에서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더군다나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아예 없다. 마치 함께 하는 사람들도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가 의문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생각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혼자 등하원 다 시키고 부랴부랴 직장 가서 일하고 돌아와서 밀린 집안일에 하루가 정말 막노동도 이런 막노동이 없는데 저 사람은 뭐지? 생활비만 주면 끝인가??

끊임없는 억울함과 피해의식 속에서 나는 점점 버거워져 아이들을 놓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별 거지 같은 일을 다 벌려봐도 소용없는 걸 봤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아빠가 아니라 행복한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남편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그 말도 못 한 분노는 엄한 아이들에게도 전달된다. 나의 눈빛, 말투, 표정 아이들은 다 안다...

남편을 향해 분노하고 있을 때 아이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바둥거리는 모습을 아이들은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


엄마! 아빠를 그냥 냅둬 라는 말이 이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어쩌면 내가 다정한 아빠이자 남편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내게 말한다.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해 줄게요.

엄마 안아주고 싶어요.

엄마인 내가 어른인 내가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는데 왜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나 너무 많은 잘못을 뉘우친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통제 속에 남편을 우리 곁에 두지 않겠다.

멀리멀리 저 멀리 가버려라

나는 소중한 이 시간 우리 아이들 얼굴 한 번 더 보고 살 테니.


그리고 맹세한다.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핑계로 남편을 통제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비중이 내가 더 많다고 억울해하지 않겠다.

그 시간을 우리의 소중한 추억으로 소중하게 아끼며 지내겠다.

지금 이곳에 선포한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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