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노동법을 지키는 회사

— 사용자의 자리에 서서 다시 묻게 된 질문

2018년, 켈리의 편지


빈센트 님께,


제법 봄기운이 돌며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옷차림이 가벼워져서인지, 아니면 팀원을 처음 채용하려고 해서인지 요즘 마음이 조금 설렙니다.


예전에 인사 직무를 수행하면서 제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노동법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회사가 속한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직원들을 계속 채용하며 성장의 페달을 밟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30대 중반의 패기 있는 직장인이었고, 동시에 어린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했습니다. 일이 많다 보니 밤 열 시까지 야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일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며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직원이 과로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며 본사 핫라인에 제보를 한 것입니다.

곧바로 본사의 인사 본부장으로부터 사장님과 인사 임원이 함께하는 전화 회의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 회의에서 본사 인사 부사장이 권고한 즉각적인 조치는, 직원들이 연차를 실제로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설명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시행해야 했습니다.


막상 시행하려니 막막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 휴가를 가지 못하지만, 남은 연차수당으로나마 위안을 삼고 있던 직원들에게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어려웠습니다. 연차를 다 쓰게 하면서도 업무는 그대로 돌아가야 했기에, 일은 일대로 쌓여만 갔습니다. 특히 영업팀은 이중고였습니다. 고객이 밤낮없이 부르는 상황이라 휴일도 반납해야 하는 지경이었으니까요.


어쨌든 프로그램을 만들고, 현재의 사내 제도를 검토하면서 자문 노무사에게 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주 40시간 근로시간을 지키면서 연차도 제대로 소진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일반 기업에서도 만들 수는 없습니까? 노동법을 지키면서 일하는 회사 말입니다.”

그러자 노무사님이 빙그레 웃으며 답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노동법 지키는 회사가 어디 있나요?”


노동법을 준수하는 회사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일까요. 제게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답이었습니다.

빈센트 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노동법을 지키면서도 경영 성과를 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기본을 바탕으로 준비해야 할까요?


혼자가 아닌 함께를 고민하며,
켈리 드림



“강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서로 간의 용해되지 않는 가치관을 용해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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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켈리가 답하다

켈리님께,


그때의 켈리 님은 여러 자리의 마음을 한꺼번에 안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로서의 마음, 인사 담당자로서의 마음, 그리고 이제 막 사용자의 자리 앞에 선 사람의 마음 말입니다. 노동법은 지키고 싶었고,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뜻도 분명했지만, 현실은 그 마음만으로 움직여주지 않았지요.

그래서 오늘은 그 질문에 또 하나의 질문으로 답을 풀어가보려 합니다.


켈리님의 마음은 노동법을 지키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노동법을 지키는 사람이고 싶은 것입니까?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물론 이런 질문은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려 합니다.


처음에는 그 기준이 나를 지켜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밤 열 시까지 이어지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견디면서도, 모두가 그렇게 일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고, 버티는 것이 책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한 직원이 과로로 무너졌을 때, 비로소 보였을 것입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버티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요.

아마 그때 처음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노동법은 책 속의 조항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삶이 함부로 소모되지 않도록 붙들어두는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을.


그런데 막상 운영의 문제 앞에 서면 또 다른 현실이 보입니다.

법은 분명 옳습니다. 하지만 옳다고 해서 현실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연차를 모두 쓰게 하라는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은 그 말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 쉬지 못하는 사람들, 남은 연차수당으로 겨우 위안을 삼는 사람들, 휴일마저 반납한 채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팀의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그때의 켈리 님은 아마 속으로 이렇게 묻고 있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법을 지키면서도 일을 해내는 회사가 정말 가능하긴 한가.


그리고 노무사는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오래 마음에 남았지요. 그건 오래 현실을 본 사람의 웃음이었습니다.
당연해야 할 것이 당연하게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오래 보아온 사람, 그래서 그 질문이 얼마나 절실한지 곧바로 알아본 사람의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저도 그 웃음의 뜻을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기준을 지키겠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보호받아야 하는 쪽에 있을 때와,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쪽에 있을 때와,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섰을 때 그 말의 무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앞에서는 그것이 나를 지켜주기를 바라게 되고,
가운데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현실에 옮길지 막막해지고,
마지막 자리에서는 그 당연한 말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부터 다시 보게 됩니다.


돌아보면, 노동법을 지키면서도 성과를 내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본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첫째, 사람의 헌신이 아니라 구조로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야근과 희생이 아니라, 업무량과 역할, 우선순위와 흐름이 다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둘째, 법을 문제가 생긴 뒤에 대응하는 장치가 아니라, 처음부터 운영의 기준으로 두는 것입니다.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먼저 묻는 태도 말입니다.

셋째, 성장의 속도를 사람과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가져가는 것입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오래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서야, 법도 지키고 조직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시선도 달라집니다.
무엇이 위험을 만들고 있는지, 무엇을 먼저 바꿔야 하는지, 어떤 비용과 결단이 필요한지를 보게 되지요. 회사를 다시 살핀다는 것은 결국 그런 일이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믿고 싶은 마음은 이미지를 지키는 쪽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말은 바를 수 있고 태도도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비용이 들고 불편한 선택 앞에 서면 자꾸 미뤄지고 예외가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법은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말처럼 남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마음은 분명 중요합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됩니다. 그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요. 뜻이 방향을 정해준다면, 제도와 비용과 우선순위는 그 방향을 현실로 붙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한 회사의 문화는 좋은 말이 아니라, 그 뜻을 버티게 하는 구조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켈리 님은 이미 그 여러 자리를 지나왔습니다.

한쪽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묻게 되고,
다른 쪽에서는 제도를 만들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막막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감당해야 하는 비용과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자주 서로를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람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는 기준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 질문 앞에 다시 서는 순간,
켈리 님은 비로소 사용자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의 질문


당신이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좋은 의도에만 머물게 두지 않고, 실제로 지켜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가요?



연재 목차


1화. 사업을 한다는 것 — 내가 책임을 선택한 날
2화. 노동법을 지키는 회사 — 사용자의 자리에 서서 다시 묻게 된 질문 ● 이번 글
3화. 카리스마가 필요해 (3월 26일)
4화. 코칭 리더십 이전에 채용 (4월 2일)
5화. 당면과제와 전략과제, 창의성과 적시성 (4월 9일)
6화. 낀 세대 리더들의 도전과 기회 (4월 16일)
7화. 강력하게 기억시키는 힘, 메타포 (4월 23일)

8화. 허상과 실제를 구분하는 법 (4월 30일)
9화. 경쟁자가 밉습니까? (5월 7일)
10화. 스타트업의 미션, 꿈을 꾸고 팔아라 (5월 14일)

11화. 조직의 ‘가치’가 발휘되려면 (5월 21일)
12화. 꼭 기억할 숫자들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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