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빈센트 님께,
여의도에 벚꽃축제가 한창입니다. 갑자기 꽃샘추위가 와서 시민들이 겨울 점퍼를 입고 벚꽃을 보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TV를 보시던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지요.
“날이 추우니 다행히 벚꽃이 금방 지지 않겠다.”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따뜻하면 금방 지고, 조금 서늘해야 더 오래 버틴다니. 왜 우리는 온화하고 편안한 환경에 있을 때보다, 어렵고 긴장되는 환경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걸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돈으로 영어학원을 다니던 때보다, 회사에서 영어 발표를 해야 하고 영어 문서를 주고받아야 했을 때 영어가 훨씬 더 늘었습니다.
문득 만해 한용운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 昨冬雪如花
이 봄에는 꽃이 눈과 같구나 今春花如雪
눈과 꽃이 참 아님을 알면서 雪花共非眞
내 마음은 왜 이리 찢어지는지 如何心欲裂
눈과 꽃은 서로 닮아 보이지만 끝내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차가운 것이 따뜻한 것처럼 보이고, 따뜻한 것이 도리어 차갑고 덧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화자는 그것이 참이 아님을 알면서도 마음이 찢어진다고 했지요.
요즘 저는 그 시를 리더십 앞에서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소통하는 리더가 되라, 서번트 리더십을 가져라, 민주적인 문화를 만들어라.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직원들을 존중하는 수평적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운영해보니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습니다.
어느 날 회의 중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한 자리에서 한 직원이 제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내용보다 그 순간의 온도가 오래 남았어요.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수평적인 문화라면 이런 말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 장면은 자꾸 마음에 남았습니다.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과, 리더를 가볍게 대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닌데 저는 그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제가 지향한 리더십은 존중이었을까요, 아니면 무름이었을까요.
직원들과 가까이 가고자 했던 태도는 건강한 수평이었을까요, 아니면 기준을 흐리게 만드는 눈 같은 꽃이었을까요.
눈이 꽃처럼 보이고, 꽃이 눈처럼 보이는 것처럼
카리스마와 권위, 존중과 무름도 서로 닮아 보이지만 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지금 마음이 찢어지는 이유도, 그 다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카리스마를 키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고마운 조언쯤으로 여기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세우고 직원들과 대립하는 순간들이 생기면서 그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대립 그 자체보다 그 순간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혹시 이 모든 고민이 제가 카리스마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일까요?
목표를 향해 몰아치고, 엄격하게 대하면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되는 것인지요.
카리스마는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키울 수 있습니까?
매력 있는 리더가 되고 싶은,
켈리 드림
“카리스마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다른 사람이 존중하도록 하게 하는 힘.” — 빈센트
켈리님께,
꽃샘추위 속의 벚꽃이 더 오래 버티는 이유를 어머니는 단번에 알아보셨지요.
따뜻하기만 하면 꽃은 금방 흐드러지고 흩어집니다. 오히려 꽃을 끝까지 붙들어주는 것은 그 계절의 서늘한 기운입니다.
아마 그때 켈리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바깥에서 빌려오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내 안의 것을 붙들어주는 기준의 서늘함 말입니다.
회의실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봐요.
공개된 자리에서 날 선 말을 들었던 그 순간.
그 말이 단순한 비판으로 들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여러 사람 앞에서, 대표인 켈리님에게 던져진 말이었으니까요. 얼굴이 화끈거렸던 건 카리스마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깊은 곳이 건드려졌던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켈리님은 영향력 도메인이 강한 사람이에요.
인정과 반응 속에서 힘을 얻고, 관계의 온도를 빠르게 감지하는 사람. 그런데 거기에 예민함까지 더해지면, 긍정적인 반응을 향해 민감하게 움직이는 만큼 부정적인 것도 더 크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공개된 자리에서의 날 선 말 한마디가 단순한 피드백이 아니라 수모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거기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까지 아프게 들어온 건, 그 직원의 말이 거칠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켈리님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마음속으로는 전략적이고 냉철한 리더여야 한다고 믿었지요. 그 믿음이 오히려 켈리님 안의 자연스러운 감각을 자꾸 밀어냈어요. 인정에 움직이는 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약하다고 다그치거나 무시한 것이지요.
그래서 수용할 수 없었던 건 그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 앞에서 흔들리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기준도 단단하게 세울 수 없으니까요. 기준은 바깥에서 오지 않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사업의 굴곡 속에서 계속되는 실패와 무반응을 견뎌내면서, 켈리님은 아마 이 질문 앞에 오래 머물게 될 거예요.
외부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근거로 서 있을 수 있는가. 내가 진짜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거듭하면서, 켈리님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수용하게 됩니다. 인정에 움직이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것을. 예민함이 결함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감각이라는 것을. 그것을 부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날 선 말이 켈리님의 존재 전체를 흔들지 않게 됩니다.
수모가 수용으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그리고 바로 그 수용이 기준을 만듭니다.
권위는 강함에서 오지 않아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한 뒤,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과 불편까지 감당하려는 태도에서 조금씩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서 시작해요. 켈리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키는 모습을 사람들이 반복해서 보게 될 때 비로소 권위가 생겨요.
권위주의는 두려움으로 사람을 조용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권위는 달라요. 말을 듣되 무례를 허용하지 않고, 가까이하되 기준을 무너뜨리지 않는 힘이에요. 켈리님이 원했던 것도 결국 이것이었을 거예요.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권위 있는 리더. 사람을 누르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 리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바깥에서 오지 않습니다.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내 안의 것을 부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결국 찾게 됩니다.
그 길은 켈리님 안에 처음부터 있었으니까요.
갈등의 순간에 당신은 스스로의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당신이 지키는 기준은, 관계가 흔들릴 때도 여전히 보이나요?
참고 | 갤럽의 4가지 도메인
갤럽은 사람의 강점을 34가지 테마로 설명하고, 이를 다시 4개의 도메인으로 묶어 이해합니다.
이 구분은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관계 맺고 영향력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도에 가깝습니다.
실행력(Executing): 일을 실제 행동과 결과로 옮기는 힘
영향력(Influencing):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
관계 형성(Relationship Building): 신뢰를 쌓고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 정보를 해석하고 가능성을 읽어내는 힘
본문에서 말하는 ‘영향력 도메인’은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라기보다, 존재감과 반응, 표현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더 가깝습니다.
1화. 사업을 한다는 것 — 내가 책임을 선택한 날
2화. 노동법을 지키는 회사 — 사용자의 자리에 서서 다시 묻게 된 질문
3화. 카리스마가 필요해 —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 이번 글
4화. 코칭 리더십 이전에 채용 (4월 2일)
5화. 당면과제와 전략과제, 창의성과 적시성 (4월 9일)
6화. 낀 세대 리더들의 도전과 기회 (4월 16일)
7화. 강력하게 기억시키는 힘, 메타포 (4월 23일)
8화. 허상과 실제를 구분하는 법 (4월 30일)
9화. 경쟁자가 밉습니까? (5월 7일)
10화. 스타트업의 미션, 꿈을 꾸고 팔아라 (5월 14일)
11화. 조직의 ‘가치’가 발휘되려면 (5월 21일)
12화. 꼭 기억할 숫자들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