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와 호랑이 연고
'매그 놀리아'라는 영화를 봤다. 3시간 동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광이 아니기에
밥 먹고 와서 보고 통화하다가 보고 그랬다.
마지막에 개구리 비가 내리는 씬은 징그럽기도 하지만 개구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고 건물에 , 창문에 부딪히는 묵직한 소리가 뭔가 시원한 느낌이어서 나의 잔인함에
놀라며 계속 돌려 보았다.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형식으로 여러 사람들의 스토리를 마구 섞어 보여주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심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가 오래전에 '호랑이 연고'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통증 완화제가 아니고 고통 촉진제 같다는 것 , 빠르게 최고의 고통을 경험한 후에
이 아픔이 꺾여 점점 잊히게 하는, 물론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전혀 없지만
처음에 바르면 더 아파지는 경험을 한다.
'내가 왜 이걸 바르면서 더 아파하고 있지..?'
바르고 또 바르다 보면 며칠 갈 것 같던 고통은 어느샌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본 후 호랑이 연고가 모두에 가슴에 필요하다 느꼈다.
죄책감과 증오로 범벅이 된 인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는 연극 같은 영화는
내가 들어갈 만큼의 공간을 잘 마련해 주어 3시간이란 시간을 값지게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인간은 나약해서 서로 의지 할 수밖에 없고 상처를 쉽게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용서하는 것 마저 우리의 몫이다. 세상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예술들이 등장하고 심리적인 연구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죽기 전에 염치없이 용서를 구하려 드는 사람
죽기 직전에야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사람
불결한 일로 끝없이 증오를 하는 사람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면 떠날까 봐 두려움에 떠는 사람
짝사랑으로 자신의 세상에 갇혀 고통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 고통을 겪는 당사자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아마 없겠지.
이 같은 고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테니.
'세상만사는 어떤 섭리와 목적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
단지 우연성의 연속일 뿐이다. '
우리의 고통은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리지만
어떻게든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스스로 싹을 잘라버리는 길이
또 다른 고통이 밀려왔을 때 다른 고통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즉, 고통이 조금씩 남겨져 쌓이게 되면 어느새 감당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통은 절대 준비되었을 때만 찾아오지 않으니까.
듣기만 해도 아픈 고통에게 호랑이 연고를 발라 본다.
영화 속 '에이미 만'의 노래 Wise up에서
깨닫지 않으면 고통은 멈추지 않을 거예요.
So just giv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