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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애송이 Aug 22. 2024

일로 만난 친구끼리 재미있는 일 이야기

너-무 다른 조직에 있어서 더 재밌다는 사실


전전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가 친구가 된 J를 만났다. 내가 이번 이직을 할 때 레퍼런스 체크를 해준 고마움도 있고, 매번 업무나 직장 문제로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친구이기도 한데 오랜만에 근황을 좀 털어볼까 하고 만났다. 


우리는 종종 각자의 직장에서 업무와 관련해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조언을 구할 때 빠르고 간단한 연락을 주고받곤 한다. '너 전에 이거 어떻게 했었지?' '나 지금 이런데 이거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을 서로에게 하면서 서로의 도움을 받곤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능력을 믿고 인정하기 때문. 내가 J의 실력을 온전히 믿기 때문에 내 문제를 완전히 풀어놓고 묻는다. 반대로 J도 내가 해온 일들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신뢰를 가지고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날 저녁을 먹으면서 번째 화제로 떠오른 것은 이번에 새로 이직한 직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금 현재 직장 만족도가 어떠냐는 질문에 선뜻 '좋다'는 반응을 하지는 못했다. 확신은 4~50 정도라고.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무래도 업종 자체가 보수적인 느낌이 강하다 보니 조직의 성격도 그러하다는 것과 그러한 조직의 성격 상 내가 가고자 하는 조직문화 담당자로서의 방향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서로가 속해있는 조직의 문화나 성격에 대해서 제법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꽤 재밌었다. 





외국계 특유의 개인 존중과 주도적인 일하기 

         

J가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후 처음 만났을 때 J에게 들은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기획안을 업무 담당자 어느 정도 그려낸 후 동료들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안 작성부터 여러 동료들이 참여하고, 미팅을 하면서 바로바로 기획안이 작성이 된다는 점은 무섭기까지 했다. 게다가 외국계 기업답게 회의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진행이 되고, 설사 그 미팅에 영어를 못하는 담당자가 있더라도 현장에서 바로바로 통번역이 가능하다는 점도 소름이 돋았다. 무엇 하나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J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마치 한 세기는 더 지난 뒤의 일 같이 느껴졌을 정도. 


그렇게 J의 재직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듣게 되는 이야기들도 쌓여갔는데 내가 들어본 바에 따르면 우선 J의 회사는 구성원 '개인'을 굉장히 존중한다. '우리'보다 '나' 또는 '너'가 기본 단위라서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쯤 느껴 봄 직한 역차별이나 다수에 의한 강요가 덜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경력직으로 이직을 한 우리가 적어도 N 년 동안 꾸준히 배우고 반복했던 생각이나 행동들에 그게 왜 당연하냐는 물음을 던진다. 어떤 목표를 위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이미 그 목표는 자연스러울 수 없고,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누군가는 그것을 강제나 강요로 느낄 것이라는. 물론 그 목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조직문화 담당자인 내 입장에서 한 조직의 문화라는 것은 누군가 억지로 만드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받으면 아차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았다. 


또 J의 회사는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일하되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원더우먼이 되라고 하지는 않는다. 일의 1부터 10까지 모두 스스로 하는 것보다 3에서 6 정도는 전문가에게 맡겨 질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다만 전문가에게 어떤 부분을 맡긴다고 해도 그 일을 시작부터 진행, 마무리까지 관리하는 일은 직접 해야 하고, 어떤 기준과 방향으로 업무를 끌고 갈 것인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인 거다. 





안정감을 주는 내 몫의 일, 하지만 필요할 때까지 변화하지 않는    

         

J와 특히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대하는 방식 차이였는데, J는 리더와의 소통을 통해 일의 방향성을 찾아보라고 말했지만 그 이야길 듣는 내게 맴도는 단정적인 생각 하나는 오히려 리더가 내게 방향성을 찾는 건 너의 몫이니 데이터에서 그것을 찾아오라고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이건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라고 할 수 없다. 그저 다른 성격의 조직에 속해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모두 다를 수밖에. 


다만 내가 속한 조직의 장점이라면 서로에게 맡겨진 일이 명확해서 상황만 조금씩 달라질 뿐 업무는 반복되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 안정감이 곧 만족으로 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러한 조직에는 장기 근속자가 많은 편이지만 조직 자체가 워낙 변화를 두려워하고,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필요할 때까지 최대한 미뤄두는 것이 가장 크고 뚜렷한 단점이라고 본다. 


시대의 변화가 바람처럼 맴돌 때 그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아도, 어느새 형체를 하나둘씩 갖출 때는 변화에 순응해야 하건만 부득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꼬질꼬질해진 걸 손에 쥐고 놓지 않는다. 그러다 준비도 없이 모두가 하는 걸 따라 하려고 하니 마음은 급하고, 결과물은 허접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반복하곤 한다. 물론 지금 내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짧은 기간 동안 그걸 느끼고 만 입장에서는 입맛이 씁쓸하다. 


 




결국 J와 나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너무 다른 조직에 고개를 저으며 '정말 어렵다'는 말로 이 모든 차이를 매조졌다. J는 부침이 있긴 했지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현재 업무에 꽤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J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강철멘털이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한없이 어렵고 짜증 나고 힘든데 J는 그런 내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재밌겠는 표현을 했다. 그러면 나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치솟았던 감정이 가라앉곤 했다. 또 어떨 때는 치밀한 것 같지만 사실은 실현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과장된 계획을 늘어놓는 J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여부를 떠나서 나도 덩달아 뭔가를 하고 싶은 자극을 받는다.


비록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지만 편하게 만나고 연락하며 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점이 아-주 좋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너무도 다른 조직에 몸 담고 있어서 서로에게 주는 영향이 제각각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아무튼 앞으로도 잘 지내기를. 

계속해서 서로에게 묻고, 답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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