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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애송이 Aug 26. 2024

회사가 나를 뽑은 이유, 내가 그 회사를 간 이유

나는 채용을 마지막까지 고민한 지원자였다




2023년 평가 면담을 할 때 매니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 이력을 알기에 나를 채용하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고.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라 낯설 것은 없었지만 당시 나 역시 고민을 했기 때문에 할 말을 좀 골랐다.


회사가 나를 뽑은 이유

그들이 나의 채용여부를 고민했던 이유는 회사에서 나에게 요청할 업무가 내가 지금껏 해왔던 업무보다 폭이 좁고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빨리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고. 사실 그 부분이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라 회사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 그리 의아하진 않았다.


당시 회사가 공고를 냈을 때 기재한 경력연차는 3년 이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략적이고 분석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기획력이 있으며,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뛰어난 사람이면 더욱 좋다는 조건과 함께. 그때 나는 8년이 꽉 찬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회사가 요구 또는 있었으면 했던 조건에 대부분 부합했기 때문에 (아마)헤드헌터도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했던 것 같았다. 물론 내 전임자의 퇴사일이 다가올 때까지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본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나를 뽑았던 매니저가 HR 출신이고, 내가 조직문화에 관심이 깊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그 회사에 간 이유


그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사실 나는 30대 초반을 함께 보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해서 열흘쯤 다닌 시점이었다. 입사한 첫날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전달되었고, 나 또한 오랜만에 한 이직이라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처리하고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때.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출퇴근 거리였는데,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중 1시간 10분을 서서 가거나 걷고, 나머지 20분 정도는 앉아서 가는데 이게 말도 못 하게 지쳤다. 무엇보다 못 견디겠는 건 지하철을 타면 쭉- 회사까지 가는 거였다. 이게 왜 싫은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똑같은 출근길도 이동수단을 달리해 다니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아무튼 이 회사는 결국 출퇴근 거리가 결정적 이유가 되었고, 마침 현 직장에서 오퍼가 들어와 빠르게 정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멀고 먼, 심지어 내리지 못하는 지하철에 영영 갇힌 꿈까지 꾸게 했던 직장을 짧고 굵게 그만두고 갔던 현 회사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대표 제품이 굉장히 유명한 소비재 기업이었다. 당시 회사가 이전 후 자리를 잡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사내 거의 모든 업무 담당자가 매뉴얼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일이 주였던 시기였다. 작은 일부터 큰 행사까지 일의 대소를 구분하지 않고 필요한 곳에서 업무를 진행하며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덕분인지 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회사가 마지막까지 채용을 고민한 사람이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내며 시간을 보냈고 앞서 말했듯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서'라는 이유로 이직을 했었다. 그러니까 퇴사 or 이직 사유는 생각보다 거창한 게 없다는 게 결론. 하지만 면접을 보면 꼭 묻는 게 퇴사 or 이직 사유인데,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종합해 보면 솔직한 답변 말고 전략적 답변을 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 맥락이라면 정말 있는 그대로의 퇴사사유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몇 없을 것이다. 나조차도 맨 앞에 서있던 사유(출퇴근 거리가 멀어서)가 아닌 긴-줄의 끄트머리에 서있는 사유(경력 관련)를 댔으니까.


아무튼 어떤 상황으로 내가 채용이 되었건, 어떤 이유로 내가 그만두건 그리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어차피 결정이 섰으면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내가 결정하면 되는 일이니까. 마지막까지 나의 채용 여부를 고민했다고 해서 내가 모자란 것이 아니듯 내가 출퇴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그만뒀다고 해서 시간 낭비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실패로 인해서 유의미한 교훈을 얻었으니 충분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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