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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n 24. 2019

호주, 비극과 함께 시작

인종차별을 겪다


FXXX ASIAN GO BACK TO YOUR COUNTRY!



망할 동양인, 니네 나라로 돌아가!


해외라고는 단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던 내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호주'라는 나라에 교환학생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호주에 도착한 지 정확히 이틀 후에 들은 소리다.


스물 몇 살의 대학생이던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다. 얼마나 꿈꿔오던 외국 생활이며, 얼마나 기대하던 홈스테이 라이프인가. 나도 호주에서 멋지게 영어로 이야기하면서, 홈스테이 가족들과 하루를 함께 보내며 TV도 보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케익도 구우며, 금요일 저녁엔 맥주를 마시며 파티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쿨-한 사람이 되는거겠지! 정말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그런 그림을 상상하며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 상상과는 달리, 도착한 홈스테이 하우스에는, 굉장히 연로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쀄이쀄이(Fifi - 피피 아님 주의)라는 강아지와 함께 살고 계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지팡이에 힘겹게 몸을 의지하시며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고, 얼마 전까지 한국 학생이 본인들과 3년이란 시간을 지내다 갔다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 주신 홈스테이 노부부와는 다르게, 낡아보이는 듯한 집과 나무와 덤불밖에 없는 주변을 둘러보며 내 머릿속에서 와장창 깨져버린 환상을 수습하느라 한참 눈알을 열심히 굴려야만 했다.


이틀 뒤, 내가 다닐 학교를 방문해 보기로 한 날이었다. 할머니께 학교까지 가는 버스 타는 법을 설명을 열심히 듣고, 예쁜 꽃무늬 셔츠와 하늘하늘한 스커트를 입고 꽃단장을 한 채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한적한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걸어야 했는데, 버스가 올 시간이 많이 남아 느긋한 마음으로 여기도 둘러보고 저기도 둘러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낡은 차 한대가 털털거리면서 내 쪽으로 붙어 섰다. 아무도 없는 길가에 내 바로 옆에 정차한 차라니, 차 안을 들여다보니 창문이 열렸고 차는 음악 소리로 씨끄러웠다.


'Hey! Hey!!'


누군가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Yeah?? Me...???'


저 저요...? 하면서 쭈뼛 쭈뼛 차로 다가갔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내게 길을 물어보거나 뭔가를 물어보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작고 낡은 차 안에는 4명이 타고 있었고, 장을 봐 왔는지 봉지 속에 식료품이며 캔 등이 가득 차 있었다.


'You FuXXing Asian GO BACK TO YOUR COUNTRY!!!!!!!' 


갑자기 그 4명중 누군가 나에게 저렇게 소리를 질렀고 나머지는 낄낄 웃으며 봉지에 든 당근과 감자 등을 꺼내 창문으로 내게 던지기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방어할 틈도, 달아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차는 떠나버렸고, 어안이 벙벙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던 내 주변에 뒹굴던 흙 묻은 당근과 감자만이 이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고, 나는 그냥 울어야만 할 것 같아서 일단 울음을 터트렸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지? 그런데 내가 당한 일을 어떻게 증명하나. 이 한적한 동네에는 씨씨티비는 커녕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누가 내 말을 믿어줄까.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일단 길바닥에 뒹굴고 있던 당근과 감자를 주워왔다. 왜 그것들을 가져왔는지 무슨 정신에 그것들을 챙겨왔는지는 아직도 생각나지 않지만, 증거를 갖고 오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눈물 범벅이 되어 도착한 홈스테이 집에 누가 있었는지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지금 기억이 전혀 나지를 않는다. 집에 도착해 씻고 난 후 전화를 빌려 먼저 호주에 도착해 있던 친한 언니한테 이 이야기를 한 기억은 나는데, 그 내용이 사뭇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것 같다.


내 전화를 받은 언니는 놀라지도 않고 너무 덤덤하게

그런 일 비일비재해.. 너 안 다쳤으면 됐어. 길 가다 맞고 지갑을 뺏겨도 가해자를 못 찾는데... 당근? 감자? 그런거 몇개 날아온 걸로는 신고도 안 받아줄 거야.


라며 절대 혼자 '걸어다니지' 말라며 충고를 했다.


이상한 일은, 내 쇼킹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길길이 날뛰지 않고, 내가 겪은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니까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별일 아닌데 그냥 나 혼자 오버한거구나. 사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종의 정신승리인가.


그러고 나서도 또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를 했는데, 부모님 또한 별일 아니라며, 당근과 감자를 주워왔으니 홈스테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카레라도 해 먹으면 좋지 않겠냐고 했다. 실제로 며칠 뒤 그 당근과 감자로 카레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


훗날 한국에서 부모님과 다시 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도 정말 속상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겨우 도착한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을 때고, 괜히 호들갑을 떨면 멀리 가있는 내가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본인들도 사실 너무 놀랐는데 겪은 너는 얼마나 놀라고 슬펐냐며 공감해 주었다.


그 날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고 충격적이어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인상깊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사실 서른이 훌쩍 넘고 여러 나라를 살며 산전 수전 다 겪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일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저 차 타고 가던 이상한 사람들이, 길 가던 나를 보고 멈춰 서서, 내가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래주며 흙 묻은 감자와 당근을 쾌척해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런 사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낯선 곳에 있었고, '동양인'이란 이유로 당근과 감자를 맞았다. 


그 충격과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오래 가는 이유는, 한국에서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인종차별'을 내가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의 일은 호주에 지내는 시간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인종차별'이란, 내가 살며 단 한번도 겪을 일이 없었던, 인터넷과 사전에서만 보던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이었으며 그런 폭력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올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게 해 준 커다란 이벤트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황 모 정치인이 외국인 노동자에겐 임금을 더 낮게 줘도 된다라는 발언을 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린다. 그런 발언을 듣고 마음이 너무나도 아픈 건, 그 발언이 너무나도 인종차별적이어서 그런게 아닐까. 니네 나라로 돌아가. 왜 여기서 돈 벌어. 이 말이 얼마나 아픈 말일 수 있는지, 얼마나 커다란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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