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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n 24. 2019

호주에서 미아가 되다

길을 잃다, 암흑속에서

평생 한국에서만 살다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하루아침에 호주로 건너간 나란 사람은, 호주의 밤이 어떨 것인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호주에 처음 도착한 그 날, 저녁 비행기로 한국서 출발해 일본을 경유하고 거기서도 브리즈번 공항까지 한참 날아갔고, 비행기에서 푹 자고 나니 홈스테이 집에 도착했을 땐  아침이었다. 짐을 풀고, 홈스테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멍하니 방에 들어오니 너무나도 느린 인터넷도 답답했고 가야 할 곳도 없어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홈스테이 할머니께 양해를 구해 호주에 먼저 교환학생으로 출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내가 사는 지역을 듣더니, 그리 멀진 않은 것 같다며 버스 타고 나와 보라며 시티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고, 심심했던 차에 그러기로 결정을 했다.


옛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무식했고 용감했다. 뭐가 먼저인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홈스테이 할머니께 집에 돌아오는 버스와 어디서 버스를 타면 되는지를 말로 배우고 난 후,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저 멀리 시티에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행운인지 아니면 내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홈스테이 집이 있던 시골에서 버스를 잘 잡아 타고 갈아타기까지 성공해, 시티까지 나가 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친구와 호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 어떻게 오면 되는지 적힌 버스 종이를 보여주자 친구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본 하늘은 너무나도 예뻤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호주의 아름다운 석양에 감탄 또 감탄하며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버스는 달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새 어둠이 켜켜이 내려앉아 있었고, 바깥을 내다보니 버스는 가로등도 하나 없는 적막 속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스마트폰 지도를 켜서 들여다보았을 테지만, 그때는 스마트폰은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호주에 도착한 첫날이라 휴대폰조차 개통하지 못했을 때였다.


분명 집을 떠날 때, 할머니께 빨간 지붕과 큰 나무, 닭이 화려하게 그려진 간판이 왼편에 보이면 버스 하차 벨을 누르면 된다고 들었는데,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골길에는, 아무리 보려고 창에 바투 붙어 밖을 내다보아도 모든 게 어둠 속에 가라앉아서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디에 내려야 하는 것인가. 여기는 어디이고 내 홈스테이 집은 어디인가.


순간 정신이 번뜩 들고, 이건 큰 일임을 직감해 버스 기사님께 다가가 내 주소를 보여주며 나는 여기 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어디며 나는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기사님은 갑자기 버스를 급정거하면서, 너의 목적지가 이미 지난 것 같으니 그냥 지금 여기서 내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버스 기사님은 지리를 잘 알고 계실 테니, 일단 내려야겠단 생각을 하며 용수철이 튕겨 나듯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버스는 나만 남겨두고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떠나버렸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무 불빛조차 없는 시골길 한복판이었는데, 버스가 떠나고 나니 한술 더 떠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 외국에 나온 거였고, 그날이 나의 첫날이었고, 내가 가진건 홈스테이 집 주소 쪽지 하나밖에 없었다. 깜깜한 길을 미친 듯 내달렸지만 간간히 보이는 거라곤 불 꺼진 집들과 100km/h의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 뿐이었다.


결국 울었다. 가만히 있기조차 두려워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찔찔 울었다. 한참 울다가 결국 지쳐서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앉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로 했다. 집 생각, 엄마 생각, 한국의 친구들 생각이 밀려와 내가 호주에 왜 나왔을까 하는 후회까지 하며 울다 말다 하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겨우 진정한 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저 멀리 - 몇 킬로미터 인지도 감이 안 잡히는 - 곳에서 보이는 불빛과 엄청나게 빨리 지나가는 차들 뿐이었고 그 차들을 세울 용기도 기분도 나지 않았다. 너무 다행인 것은,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이대로 밤을 지새우더라도 얼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래,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더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무에 기대앉아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 날이 밝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호주에 온 첫날부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지, 너무 비극적이고 슬픈 맘과는 달리 시간은 굉장히 더디 갔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 깊은 적막이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선가, 킁킁 킁킁 킁킁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쳐다보니 사각, 사각, 사각거리는 풀소리도 나고, 어디선가 푸- 푸- 내뱉는 거친 숨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무서움이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하기엔, 소리 자극은 너무도 강렬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분명히, 소리는 아주 가깝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호주에는 딩고라는 야생 개가 사람도 잡아먹는다던데. 딩고나 늑대가 아니라는 법도 없잖아'


온갖 무서운 생각이 들어, 여차하면 나무에 기어 올라가야겠다고 다짐하던 차에, 그 생명체는 점점 더 가까이 왔다. 소리는 바로 지척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바로 그 순간, 콧가에 불어온 바람엔 향긋한 샴푸 냄새가 실려 있었다.


이게 무슨 냄새이지? 이건 분명 샴푸 냄새야, 하던 찰나에 축축한 뭔가가 팔에 닿았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향긋한 냄새에 정신을 챙기고 다시 가만히 보니, 그건 커다란 개였다. 개는 나를 코로 툭툭 치며 혀를 내밀곤 꼬리를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딩고나 늑대가 아님에 온 몸에 긴장이 풀렸고, 다시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개는 곁에서 열심히 킁킁대며 꼬리를 흔들더니 곧 어디론가 떠났고, 나는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식은땀에 옷이 전부 젖어 있었다.


순간, 개의 샴푸 냄새가 떠오르며, 저 개를 따라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풀숲을 사각사각 걷는 강아지 소리와 열심히 흔드는 꼬리를 쳐다보며 꼬리를 잡아 보기도 하며 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개는 외딴곳에 있는 어느 집으로 쓱 들어갔다. 집 담장 뒤로 사라진 개의 흔적은 더는 찾을 수 없었지만, 왠지 개가 나를 여기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 내어 그 집 문을 두드렸다. 집 뒤쪽으로는 불빛도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참 뒤, 50대 정도로 보이는 인상 좋은 호주 아저씨가 나와서 무슨 일이냐며 문을 열었다.


눈코 뜰 새도 없이 나는 그 아저씨를 붙잡으며 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잃었다고 여기로 가야 한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아저씨는 약간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집에 들어오라며 문을 활짝 열어주더니, 책상에서 커다란 지도책을 꺼내 내 주소를 찾기 시작했다. 지도 몇 장을 넘기고서야 홈스테이 집을 찾더니, 어쩌다 이 곳으로 와있냐며, 내 홈스테이 집은 차로 가도 15분은 걸리는 거리기 때문에 걸어갈 수는 없다며 본인이 태워주겠다고 나섰다.


순간, 그 선의는 너무나도 감사드렸지만,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본 남자의 차를 타고 이 깜깜한 길을 15분이나 달려야 한다는 것이, 그 차에 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고 두려웠다.


예전에, 10대 때 하마터면 성폭행을 당할 뻔한 나쁜 경험이 있어서, 더욱 그런 일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어떤 게 더 최악의 선택인가, 어떤 선택이 더 위험한가. 혼자 밖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나을까, 그냥 길만 가르쳐 달라고 해서 혼자 걸어갈까, 아니면 이 사람 차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 혼자 온갖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 아저씨가 갑자기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바로 앞의 방으로 가 노크를 했다.


방에서 약간 나이 들어 보이는 듯한 아주머니가 자다 깨서 놀란 눈으로 나왔고, 아저씨는 아주머니의 양 볼에 키스를 하면서, 여기 이 젊은 레이디가 길을 잃어서 우리 강아지를 따라와 집 문을 두드렸는데 지금은 교통수단이 없어 내가 태워주고 오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려는 곳은 어디 지역이고 여기서 왕복 30분이 걸리는 거리라며, 자기가 도와주고 집에 오면 몇 시 즘이 될 거라고 아주머니께 상세히 이야기를 전해주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는 약간 놀라면서 어쩜 그런 일이 있냐며 얼른 태워주고 돌아오라고 아저씨를 꼭 안아줬고 나에게도 집에 조심히 도착하길 바란다며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그 장면을 본 후, 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부인에게 다정하게 키스를 하고 돌아올 시간까지 알려주는 아저씨가 태워주는 차를 타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다는 결정을 하고는 아저씨가 태워주는 차로 집에 돌아갔다.


홈스테이 집에 도착해 내리기 전 아저씨께 감사한 마음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 정말 너무너무 고맙고, 너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며 오늘이 내가 처음 호주 도착한 첫날인데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주어 정말 고맙다고 횡설 수설 이야기를 하며 혹시 괜찮으시면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시고 오늘 일에 대해 꼭 사례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그 아저씨께서 내게 한 말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이름은 존이고, 사례는 정말 필요 없어. 그렇기 때문에 폰 번호도 알려 주지 않을 거야.


나는 네가 호주에서 최고로 행복하게 좋은 시간만 보내고 갔으면 좋겠어. 그게 나에 대한 보상이야. 호주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 굿 럭, 켈리.





존 아저씨.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 아직까지도 정말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처음 보는 길 잃은 사람에게 베풀어 주셨던 따뜻한 온정 절대 잊지 않고, 저도 주변에 항상 그런 베풂을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늘 다짐합니다.



그 후로 존 아저씨를 찾고 싶어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도 없고 내가 버스를 잘못 내린 그 동네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일은 호주에 사는 기간 내내 내 마음 한편에 남아, 호주에서의 힘든 나날들을 두고두고 따뜻하게 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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