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의 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인스펙션 온다고 또 편지 왔어.. 우리 또 대청소해야 해...
-벌써 3개월 지났어요??
월세로 살고 있는 힘없고 돈 없는 유학생이라지만 집이 깨끗한지 그렇지 않은지 부동산에서 3개월마다 감시하러 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호주는 부동산에서 세를 준 집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 어디 부서진 곳은 없는지 합법적으로 3개월마다 한 번씩 들어와 집을 샅샅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절차를 인스펙션이라고 불렀다. 간혹 운이 좋아 게으른 부동산을 만나 1년 내내 인스펙션이 없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동산은 최소 1년에 2번, 정말 부지런한 부동산은 꼬박꼬박 3개월마다 인스펙션을 했는데, 우리 집을 관리하는 부동산은 굉-장히 부지런한 부동산이었다.
우리 다섯 명이 살고 있는 집은 원래는 존 아저씨라는 호주 아저씨가 월세로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본인은 살지 않고 학생을 받아서 재(?) 월세를 주는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집주인은 따로 있었다.
집주인은 중국계 아니면 홍콩계로 보이는 심술궂은 집주인 스타일 아주머니였는데, 부동산이 인스펙션을 할 때마다 함께 따라와서 어찌나 지적질을 해 대는지 우리에겐 최고의 골칫거리이자 공공의 적이었다.
이 인스펙션은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고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 몇 주 뒤 재 인스펙션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귀찮은 일만 연장될 뿐이라서, 우리는 인스펙션을 예고하는 편지가 날아오면 그때부터 정말 크게 대청소를 시작했다. 다시 재 인스펙션을 한다는 편지를 받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부동산 발신이 찍힌 편지를 또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한방에 이 모든 일을 끝내야만 했다.
가스레인지 후드, 오븐 속, 창틀과 창문, 창문 유리, 욕조의 물때, 샤워부스의 물때, 수도꼭지 치약칠까지.... 정말 사소한 걸로도 트집을 잡는 집주인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목숨 걸고 청소를 했고 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는 사람 없이 맡은 바를 완료했다.
그 무렵 집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언니들은 행여나 청소 후 인스펙션 날 전까지 또 때가 낄까 봐 주방 가스레인지 주변과 화장실 거울에 온통 랩을 붙여두기까지 했다.
대망의 인스펙션 날이 되었다. 그날을 대비해 하루를 비워 둔 선희 언니만 남고 모두들 학교며 직장에를 다녀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표정이 어두운 언니를 보고 놀라 물으니, 맥 빠진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 왜! 우리 인스펙션 또 한대?? 통과 못했어?
-아니... 그게....
-오늘 안 왔어.... 한 주 미룬대...
그때의 짜증을 어찌 글로 다 담을 수 있을까.
그 랩은 그대로 일주일간 더 붙어 있었고 우리는 일주일 간 아등바등거리며 비정상적인 깨끗함을 유지해야만 했다. 산다는 건 참 먼지와 물때가 많이 끼는 일임을 왜 미처 몰랐을까.
일주일 후엔 왕언니가 시간을 비워 부동산을 맞이했다. 다행히 우려와는 달리 심술보 집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깨끗한 집 상태에 만족하며 돌아갔는데 딱 하나를 지적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2층 거실 창문에 있는 거미줄이었는데, 정말 황당했던 것이, 이 거미줄은 엄연히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 있던 거였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면 지붕이 삐죽 나와있는 부분이 보였는데, 창문 위쪽과 그 지붕 처마에 거미줄이 있다고 ‘너무 비위생적’이라며 그걸 제거하라고 한 뒤 떠났다고 한다. 얼마나 지적할 게 없었으면 집 외벽에 붙은 거미줄을 지적했을까.....
짜증이 나서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2층 창문 위로 손을 뻗어서 거미줄을 휘휘 휘젓고는 밖으로 휘잉 던져버렸다.
그러곤 그날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던 모든 랩을 떼어내고 신나게 오븐에 삼겹살을 구우며 인스펙션 통과를 기뻐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편지함에서 의문의 편지를 발견했다. 발신인이 부동산으로 되어 있는 편지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쪼르르 거실로 편지를 갖고 올라가 이게 뭘까요 하고 물었다. 그 편지를 받아 드는 언니의 손이 떨렸다.
분명히, 인스펙션은 통과라고 했는데, 이 편지는 무슨 편지란 말인가??
-언니, 통과했다고도 편지를 보내나요?
-아니 절대 아니야....
-일단, 뜯어보자...
편지의 내용은 조금 당황스럽고도 이상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