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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l 29. 2019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옆자리 언니에게 혼이 나다


바람 잘 날 없던 브리즈번에서의 1여 년이 금세 지나가고, 어느덧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너무 너무 너무 슬펐다.


이제 막 호주가 좋아지려 했고, 이제 막 영어가 잘 들리고 말도 잘 나왔고, 이제 막 어디서든 길을 잃지 않고 어떤 버스든 척척 탈 수 있고, 이제 막 어딜 가도 맛있는 식당들을 꿰고 있었는데,


돌아가야 한다니..


더 있을 방법을 안 알아본 것도 아니지만, 별다른 명분이 없었다.


어학연수도 했고, 교환학생 본 과정도 했고, 심지어 욕심을 부려 테솔 자격증까지 땄다. 여기 남는다 한들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때 주변엔 꽤 많은 친구들이 뉴질랜드로 출국하거나 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한 후 다시 호주에 남기를 택해서, 사실 마음이 조금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테지만 나는 왠지 그렇게 기약 없이 호주에 남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 비행기라 공항에 새벽부터 가야 했는데 호주 친구들이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우리는 눈물의 이별을 해야 했다. 두 번 다시 못 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해서도 안 됐다. 그러면 그 자리에 쓰러질 것만 같았기에.


어떻게 비행기에 올랐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계속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휴대폰을 꼭 붙잡고 온갖 친구들에게 하나씩 그동안 고마웠다, 미안했다, 보고 싶을 거다,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꼭 다시 만나자는 메세지를 계속 보내고, 그 사이 날아온 답장을 보며 혼자 계속 울고 있던 중에, 비행기가 이륙 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휴대폰 시그널이 뚝 끊겨 버리자 이제 정말 호주랑의 연이 끊긴 것만 같아서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더 슬픔이 차올랐고, 울음이 삐져나왔다. 세상없이 울고 있는데, 옆에서 휴지가 불쑥 건네 지면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누구 죽었어요????? 왜 그렇게 울어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옆 사람을 보니 나보다 두세 살 많아 보이는 듯한, 구릿빛으로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단발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굵은 목소리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누구 죽었냐고요. 너무 서럽게 우네요.


라고 거듭 '누가 죽었냐'라고 물어봤다. 왠지 모를 카리스마에 압도당해서, 그녀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요... 그냥 슬퍼서요.


-아니, 뭐가 그렇게 슬퍼요. 얘기해 봐 봐요.

-제가요. 브리즈번이랑 너무 정이 들어서요. (훌쩍) 친구들이랑 헤어지고 (훌쩍) 언제 다시 올 지도 모르고 (훌쩍) 그냥 (훌쩍).... 그게 너무 슬프네요 (엉엉)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않았다. 슬쩍 쳐다보니, 아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나 참... 인생에 있어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여자가 질질 짜요? 뭐 고등학생인가??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저.. 스물 둘이요 (훌쩍.... 엉엉) 

-아니 스물둘이나 먹고, 내가 더 나이 많으니 언니니까 말 놓을게!!!!!!!! 여하튼 그런 걸로 여자가 질질 짜면 그런 정신력으로 뭘 하려고 그래요????? 나는 또 누가 죽기라도 한 줄 알았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찔찔 울어서 옆 사람에게 민폐를 준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혼이 나야 하는 일이었던가. 그러고 보면 비행기 탑승 후 이륙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질질 울고 있으니 화가 날 만도 한 것 같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훌쩍)

-아니!!! 사람이 힘들면 울 수도 있는 건데 잘못한 일도 아닌데 그걸로 사과할 건 없고!! 죄송은 진짜 어디 가서 미안한 일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아무 데나 하는 거 아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울 일이 있고 아닐 일이 있다는 거야!!! 이런 건 울 일이 아니야!!! 

-네... 이제 안 울게요 (훌쩍)



너무 당황하니까 나오던 울음도 쑥 들어갔다. 이 사람은 누군데 지금 나를 훈계하고 정신력 타령을 하는 거지? 은근히 화도 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무슨 상관이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하고 싶었는데 열 시간을 타고 가야 하는 비행기에서 바로 옆자리 앉은 사람이랑 언짢은 기분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창가고 그녀는 통로였는데 창가 자리에 감금된 마당에 괜히 그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하자, 그녀는 오늘 아침 날씨가 궂었는데 공항에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들이 데려다줬다고 이야기하자, 그 언니는 자기는 한인 택시를 예약했는데 아침에 오지도 않고 잠수를 타는 바람에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며, 너는 호주 생활 잘해서 친구도 많이 사귄 것 같은데 뭐가 서러워서 우냐고 또 한바탕 훈계를 시작했다.


자기의 호주 라이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5개월간 브리즈번에 있었다는 언닌 그 동안 한국인에게 사기도 두세 번 당하고, 호주서 사귄 한국 남자 친구가 바람이 나 애인도 잃고, 농장을 찾아 멀리 갔지만 일자리마저 구하지 못했다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끝도 없이 했다. 그 언니는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일은 꼬이고 온갖 우여곡절에 갖은 고생을 했는지, 그걸 다 듣고 나니 그 언니 입장에선 내가 우는 게 바보 같아 보일 만도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언니....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그러니까 너는 정말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잖아 울 일이 아니라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옆자리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그 언니는 자꾸 본인을 '예체능'인 이라고 규정했고, 문득 그 워딩이 궁금해져 나는 언니에게 어떤 전공을 하시냐고 물어봤다. 언니는 대답하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그러면 보통 말을 돌리지만, 그땐, 이미 언니한테 실컷 혼나고(?) 내 신상 정보는 다 털린 마당에 언니만 이야기를 안 하는 것도 불공평한 것 같아서 집요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언니, 그런데 예체능 하신다고 하는데 어떤 거 하신 거예요?

-예체능이라니까.

-정확히 예능이에요 체능이에요? 두 개는 굉장히 다르잖아요!!

-체능이야.

-와! 어쩐지! 근육이 많으신 게 너무 부러웠어요 ㅠㅠ 체능 어떤 분야예요?

-말해도 넌 몰라. 비인기야.

-왜요~ 말해도 모르는 게 어딨어요 알려주세요!!!!


-투포환이라고....들어 봤나?

-(????)


그 언니는 투포환 선수였던 것이다. 


투포환: 공을 멀리 던져 얼마나 멀리 보내느냐를 경쟁하는 경기


언니의 말을 빌리자면,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힘이 좋고 뭐든지 힘차게 잘 던져대던 언니를 보고 평소 체육에 아주 관심이 많던 아버지가 여러 종목을 시켰는데, 언니는 투포환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언니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부모님들은 체육을 시키셨고, 언니는 쭈욱 투포환을 했고, 결국 부모님의 바람대로 체대를 갔지만 부모님의 뜻대로만 살아온 인생에 회의를 느껴 학교를 휴학한 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왔다. 하지만 언니는 운동만 해 와서 험한 세상을 몰랐다. 사기도 당하고 배신도 당하고...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배우고, 예정된 1년을 채우지도 않은 채 한국으로 부랴부랴 귀국하는 길이라고 셀프 디스를 포함한 인생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더니,


운동은 오직 나와의 싸움이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여기는 거짓말도 배신도 없고 노력과 피땀은 항상 내게 보답을 줬는데 사회라는 건 그렇지 않더라. 나 같은 사람은 운동이 맞는 것 같다. 부모님이 왜 내게 운동을 시켰는지 이제야 알겠다. 


고 이야기하더니..... 곧 코를 쿨쿨 골며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투포환 선수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브리즈번을 떠나게 되어 슬프기만 했던 마음이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언니처럼, 나도 이제는 한국에서의 내 삶을 살아가야지. 우는 건 바보 같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했으면 됐다. 언젠간 다시 올 날이 있을 거야.


비행기는 어느덧 괌을 지나 한국으로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즐거웠고, 신기했고, 새로웠고, 슬펐고, 행복했던, 그 1년의 시간이 저 멀리, 아득히 스러져가고 있었다.


안녕, 브리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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