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You Jul 27. 2019

금이 간 우정

다미가 집을 나가다


Toowong의, 루루가 빌려준 그 집.


그 집은 연립 주택의 2층인가 3층인가에 있었다. 세탁기는 공동으로 쓰는 세탁공간에 있었고, 집은 방 2개에 화장실이 1개인 아담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남향이라 유달리 추웠다. 북반구에 있어 남향이 좋은 방향인 한국과는 달리,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모든 것이 반대다. 북향이 해가 잘 드는 좋은 방향이고, 남향이 우리의 북향처럼 해가 잘 들지 않는다. 그 집은 남향이라 너무나도 추웠는데, 난방 시설도 잘 되어있지 않아 전기장판에만 의존하며 덜덜 떨면서 잠을 자야만 했다.


루루는 이렇게 추운 집에서 겨울을 어떻게 났을까? 아마 그때가 7월 무렵이었던 것 같다. 호주는 7-8월이 제일 추운 겨울인데, 다미랑 나는 덜덜 떨며 한 침대에서 자야만 했고, 특히나 추위를 잘 타던 다미는 밤마다 코가 시려서 마스크까지 끼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그 무렵, 나는 친하게 지내던 호주 친구들이 있어서 매일같이 집에 늦게 들어갔다. 착실한 다미가 매일 집에서 숙제를 하고 복습을 하고 저녁을 지어 먹고 다음날 도시락까지 쌀 동안, 나는 바깥에서 하루종일 맥주 마시고 와인 마시며 집에 막차를 타고서야 겨우 들어가는 나날들이었다.


춥고 해도 잘 들지 않던 그 집에서, 다미는 혼자 있으니 너무 무섭다며 내게 빨리 오라고 언제 오냐며 전화를 했고, 나는 슬슬 그 전화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다미는 요즘 말로 하자면 완전 FM이었다. 언제든 결석해도 되는 대학 강의, 어학원 강의였건만 단 한번도 결석하거나 지각 하는걸 용납하지 않았고, 숙제나 시험이 있으면 본인의 역량이 되는 한 최고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일에 열심이다보니 그 커다란 열정만큼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다미는 주어진 걸 게을리할수 있는 여건이었음에도, 결코 흐트러지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아이였다.


사실 그런 다미가 보기엔 내가 많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나는 숙제도 적당히 타협해서 했고, 가끔 과음을 하고 다음날 테솔 수업을 가지 않고 늦잠을 자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미는 커피를 진하게 타 와서 얼른 일어나 같이 가자고 나를 일으켜세웠고, 철 없었던 나는, 그런 다미가 너무 힘들었다. 그냥 좀 혼자 갔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나를 깨우는 지.... 정말이지 날 그냥 내버려 뒀음 했는데, 너무 괴로웠다.


둘이 같이 살기 시작하니 이런 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다미는 아침에 눈을 뜨면 번쩍 일찍 일어나 온갖 준비를 하고, TV를 보며 아침을 먹으며 여유롭고도 활기차기 아침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었다. 반면 나는 밤 늦게까지 놀고 술을 좋아하며 아침엔 식욕도 없고, 눈도 뜨기 힘들어하고, 컨디션도 굉장히 저조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저녁형 인간이었다. 다미는 그런 내가 답답했고, 내가 정신을 차리고 같이 테솔 수업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일 아침마다 TV를 크게 틀면서 토스트를 구워 주고 커피까지 타 주며 날 깨웠다. 하지만 조용히 있고 싶어한 내게 다미가 선사한 아침은 스트레스가 가득한 괴롭기만 한 시간이었다. 다미에게는 늘 그렇듯 활기 찬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언제 한번은 비몽사몽간에 아침에 등교 준비를 하며 커피를 마시다가, 여느 때처럼 다미가 크게 틀어놓은 TV소리에 신경이 너무 거슬린 내가 TV를 탁 끄면서 제발 TV좀 켜지 말라고 짜증을 버럭 내기도 했다. 그 때 다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우리 둘 사이에 서운함과 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 날, 나는 늦게까지 시티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고, 다미는 여느 때와 달리 언제 집에 오냐고 전화를 하지 않았다. 늦은 시각, 내가 집에 오자 다미는 방이 아닌 거실의 소파에서 마스크를 끼고 자고 있었다. 그러고 다음날, 다미는 짐을 싸서 다시 써니뱅크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미가 떠나고 솔직히 며칠간은 집이 조용해서 좋았다. 사실 써니뱅크에서 언니들과 사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남과 사는건 쉽고 재미기만 한 일은 아닌지라, 철저히 혼자이고 싶던 시간들도 정말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아무랑도 얘기하지 않고 클래식 음악만 조용히 듣다가 학교로 가고 다시 집에 오는 나날들이 반복되었고, 며칠이 지나서야,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너무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도 밤에 혼자 집에 들어갈 때는 깜깜하기만 한 집이 무서웠고, 몇 번이나 노크를 크게 한 후에야 문을 열고 들어가고 했다.


집 주변은 너무나 고요했고, 혼자인 집은 너무나 추웠다. 집에 밤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나를 맞아준다는 게, 이야기 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다미는 이런 집에서 낮 2시부터 혼자 지내면서 나를 기다렸을텐데, 혼자서 얼마나 심심하고, 춥고,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써니뱅크로 돌아가버린 다미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하지만 마음 넓은 다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 같이 살면 베스트 프렌드도 원수가 된대'하면서 내게 예전처럼 대해주었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도 무거웠다.


사실 다미에게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이야기한건 그로부터도 몇년 후였다. 착하기만 한 다미는, '사실 그때 내가 너무 널 볶았지? 남편도 아니면서 언제 오냐고 전화하고~ 춥다고 옆에서 자야한다고 우기곤 했다’면서 자기도 미안한 게 많았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는 더더욱 미안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철없고 오만하던 시절에 나란 사람과 친구 해 주고, 아직까지도 최고의 친구로 남아 있는 다미에겐 그저 고마운 마음 뿐이다. 다미가 착하고 남에게 베풀어 준 그 따뜻한 마음만큼 그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새삼스레 너무 다미에게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를 결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