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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l 24. 2019

이사를 결심하다

갈등의 서막


늘 같은 일상이었다.


아침에 씨리얼과 토스트를 먹고 어제 싸 놓은 점심을 들고 학교에 가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숙제와 밀린 공부를 하고, 학교 일이 끝나면 바로 일식집에 저녁 알바를 하려 달려가고, 4시간의 저녁시간 동안 정신없이 일을 한 뒤 집에 돌아와서 쓰러져 자는 나날이 꾸준히 반복되었다.


몸이 바쁘면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법이다. 게다가 호주의 한 학기는 굉장히 짧았다. 눈 깜빡할 사이 10주 정도가 지나갔고, 2주에 걸쳐 각종 시험들을 치르고 나니 어느덧 학기는 끝이었고 더불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기가 너무 아쉬웠는데, 때마침 다미가 TESOL(테솔) 코스를 옆 학교 University of Queensland (UQ)에서 수강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때는 테솔 코스가 대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테솔 자격증이 있으면 한국에서 영어학원에 파트타임으로 취업을 더 좋은 조건으로 할 수도 있었고 과외를 하기에도 좋다고 너도나도 해외에서 테솔 자격증을 따 오던 때였다.


또, 실은, 나는 UQ에 크나큰 환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던 Griffith University (Nathan 캠퍼스)는 정말 산속에 파묻혀 있어 굉장히 고립되어 있고 건물들도 볼품이 없었고 시설들도 많이 낡아있었다.


그리피스 대학교 네이슨 캠퍼스.
사진 오른편 위쪽 (1시 방향)으로 브리즈번 시티가 아득히 신기루처럼 보인다.


정말로 사진과도 같이, 정말 산속에 학교만 덩그러니 있고,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데다가, 산중이다 보니 산에서 내려온 각종 도마뱀과 터키가 하루가 멀다 하고 교정을 누비며 다니던 그런 곳이었다.


Australian Wild Turkey (줄여서 그냥 터키) 그리피스 대학교의 진정한 학생..아니고 학새


사진처럼 실제로 보면 수탉보다 더 큰 저런 녀석들이 (절대 날지는 않음) 간식도 뺏어먹고 땅도 엄청 파대며 쓰레기통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때론 자기들끼리 싸움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는데 저놈들이 파대는 흙 구덩이에 발이라도 빠질 때면 짜증이 엄습해서 너네를 언젠간 잡아먹고야 말 거라며 저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호주의 대학교가 다 산중에 있다고 생각한 건 당연히 오산중의 대 오산이었다.


친구 따라 놀러 가 본 다른 학교 UQ는 시티도 가까웠을뿐더러 강을 끼고 펼쳐진 드넓은 평지 위에 아름다운 캠퍼스 건물이 정말 영화 속에서나 보던, 딱 내가 상상하던 외국 학교의 모습이었다. 


University of Queensland. 몇 년 뒤, 이 학교에 석사과정을 밟으러 다시 오게 될 줄도, 이 아름다운 공간이 고뇌와 스트레스로 잠식되어 버릴 줄도, 그땐 알지 못했다.


여하튼 다미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져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UQ에 테솔을 등록하고, 테솔이 끝나는 날짜에 맞추어 귀국 비행기표까지 예약을 했다. 그런 후에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써니뱅크의 집은 UQ와는 너무 멀어 통학 문제가 생겼다. 학기 중에는 써니뱅크 집 쪽에서 UQ로 가는 버스 노선이 운행을 해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는데, 방학이 되면 그 노선이 운행되지 않아 시티에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만 했고 그러면 통학 시간이 편도 한 시간-한 시간 반까지 걸리게 되었다.


귀국 2달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를 가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통학을 하기에도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루루가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루루는 당시에 Toowong(투웅, 호주 발음=트웡)이라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루루의 집은 UQ와 버스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루루는 언니와 그 집에 살고 있었는데, 둘 다 방학이라 중국에 잠시 가 있게 되어서 혹시 내가 필요하면 공과금 정도만 내고 자기 집에 살아도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투웅은 시티와 매우 가까웠다. 항상 써니뱅크의 집이 시티와 너무 멀어 늘 시골에 사는 느낌이 불만이었기에, 투웅에 이사를 가면 학교도 가깝고 남은 2달여를 브리즈번의 시티 라이프를 만끽하며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아 도저히 이건 거절하기가 힘든 제안이었다.


결국, 공과금만 내기는 미안하니, 지금 내는 쉐어비보다 조금 더 주기로 하고 루루의 집으로 남은 기간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나니, 다미가 마음에 걸렸다. 당장 긴 통학 시간을 같이 걱정하던 처지였는데 나만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다미 혼자 그 먼길을 왕복해야 한다는게 마음이 쓰여서 다미에게 너도 같이 오고 싶으면 UQ에 수업이 있는 동안만 와서 지낼래? 하고 물어보니 다미는 너무 좋아하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는 모든 짐을 싸 루루의 집으로 이사를 했고 다미는 당장 필요한 것만 챙겨서 캠핑 오는 기분으로 함께 루루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누군가와 단 둘이 한 집에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미와 내가 그 집으로 이사한 건 비극의 서막이었다. 우리는, 곧, 제일 친한 친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세상 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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