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앉아 바둑도 두고 장기도 두고, 부채질을 하며 늦더위를 몰아내고 있는 탑골공원과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광장시장을 지나 조금 더 서쪽으로 내려오다 만난 서울의 한 골목.
그 골목을 보는 순간 내가 살았던 중국의 골목이 겹쳤다.
나는 서울의 익선동보다 먼저 만났었던 중국 상하이의 티엔즈팡, 쑤저우의 핑장루를 연상케 하는 그 곳.
상하이의 티엔즈팡
쑤저우의 핑장루
서울의 익선동
티엔즈팡과 핑장루, 익선동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첫째로, 도시 한복판에 있다가 쌩뚱맞게 나타난다.
나는 탑골공원 쪽으로 해서 익선동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길 하나를 건너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았다. 노인들이 한가롭게 부채질을 하고 있던 곳을 지나 길을 건너자마자 갑자기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이쁘게 차려입고 와서는 사진을 찍고 도란도란 돌아다닌다. 한옥 정취 가득한 골목에, 딱 그 골목에만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있는데, 알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만나기 힘든 위치에 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살펴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딸내미와 부모님이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딱 봐도 딸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부모님은, 당황한 기색이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온몸으로 '모르는 곳'에 처음 온 티를 내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갈 곳이 없는 시선은 딸내미의 발걸음만 쫓는다. 그들에게 익선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을까. 그들의 딸에게 익선동은 또 어떤 공간일까.
상해의 티엔즈팡도 커다란 빌딩과 쇼핑몰이 있는 곳에서 길만 건너면 마법처럼 나타난다. 실제로 그 골목의 2층-3층의 집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핑장루도 마찬가지로, 쑤저우의 수많은 운하를 걷다 보면 갑자기 나타나는데, 그 골목은 엄청난 사람들과 전동 바이크로 단 한순간도 조용할 일이 없다.
둘째로, 옛 모습을 간직한 외관에 국적 불명의 샵들이 가득한 익선동처럼, 핑장루와 티엔즈팡에도 더 이상 전통은 찾아볼 수 없다. 결코 나쁜 의미는 아니다. 전통이라는 건 현대에 살아 숨 쉴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익선동에 옛 주막과 찻집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요즘 20대가 막걸리나 차를 마시러 일부러 그 먼길을 올까? 골목을 찾아올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옛 정취를 흠뻑 머금은 한옥의 외관을 한 익선동이 신선한 한 풍경 자락이 되고, 그곳에서 익숙한 음료인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게 그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해의 티엔즈팡에는 정체 모를 기념품과 장난감부터 형형색색의 음료까지 없는 게 없다. 파스타부터 중식까지 팔지 않는 메뉴도 없다. 고양이 카페도, 찻집도, 요상한 모양의 부채까지. 쑤저우의 핑장루도 마찬가지다. 취두부의 냄새부터 젤라또까지 없는 게 없는 그 거리.
익선동은 오히려 핑장루와 티엔즈팡에 비하면 늦게 등장한 한국 전통 스타일의 골목 상권이 아닌가 싶다.
온갖 생각을 하며 익선동을 돌아보고 있는데, 개성 있는 가게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그 골목을 떠나려던 그 순간, 한옥 모양의 건물 안에 입점해 있는 갤럭시 노트 10의 플래그쉽 스토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갑자기 사라져 간 서울의 많은 골목들이 생각났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망리단길...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모습들의 대기업 가게들을 피해 아기자기한 개성 가득한 가게가 많은 골목을 찾고, 그렇게 인기가 많아진 골목의 상점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가고, 결국 대기업이 그 골목을 장악하게 되고, 다시 다른 골목길이 생기는 어느샌가 고착화된 그 일련의 젠트리피케이션 과정들.
그렇게, 갤럭시 노트 10 스토어를 품고 있는 익선동은 다른 골목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진 않을까? 골목 상권과 대기업의 자본은 서로 쫓고 쫓기는 게임을 계속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진 않을까? 중국 상하이보다, 중국 쑤저우보다, 호주의 멜버른보다 서울을 더 모르는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