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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Oct 07. 2019

인간관계의 허브

그거슨..... 본인 피셜


-여~ 켈리 켈리~~


신나게 손을 흔들어대는 구불머리 회장.


그냥 그런 날이 다들 있지 않은가? 혼자서 터벅터벅 집에 걸어가고 싶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설령 아는 얼굴을 만났다 해도 그냥 슬쩍 스쳐 지나가고 싶은 날. 유달리 마음이 피곤해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날.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안 그래도 교수님도 몰라보고 헛소리를 해서 마음이 이미 어지러운데, 조용히 시티에 가서 버블티나 한잔 하고 집에 가고 싶었는데, 신나게 인사를 하면서 내게 다가오는 수다쟁이 구불머리 회장이라니...


심지어, 나는 버스에 늦게 타 자리가 없어서 중간쯤 서서 자리를 잡았는데, 버스에 일찍 타서 이미 뒤편에 자리까지 잡고 앉아 계시던 양반이, 자리마저 포기하고 신나게 옆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어? 김박사님. 안녕하세요. 

-수업 끝났나 봐? 어디 가?

-네. 그냥 시티 가서 쇼핑도 하고 차도 마시려고요.

-그래? 누구 만나는데?

-혼자 가요.

-오~ 고독을 즐기는 스톼일~? 나는 오늘 시티에서 저녁 모임이 어쩌구 저쩌구~


자리까지 내팽개치곤 옆에 와서 뭐라 뭐라 수다를 시작하는 구불머리 회장이었다. 


네, 네, 대충 맞장구치며 말을 하곤 있었지만 교수님과 있었던 일 때문에 유달리 계속 신경이 쓰여서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나름 쓸쓸한 브리즈번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이미 아는 얼굴도 많았지만 시간이 훌쩍 흘러선 그때의 친구들은 다들 각자의 삶에 바빴고, 나도 새 학기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신나서 수다를 이어가는 구불머리 회장을 보니 문득 부러움이 생겼고, 외로움도 슬쩍 밀려왔다.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얼마나 친구들이 많길래 매번 사람들과 다니면서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걸까?


-근데 박사님은 아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나? 나는 거의 브리즈번의 허브라 볼 수 있지!!

-허브요?

-그래그래. 그 6단계 이론이라고 들어봤어?

-6단계 이론이요?

-왜 인간은 6단계를 거치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이론 있잖아

-네. 들어본 적 있어요. 6명을 거치면 지구 상 모두에게 연결된다 뭐 그런 소리 아닌가요?

-맞아. ㅋㅋㅋ 내 생각에 나를 거치면 브리즈번 한국 사람은 다 연결될걸? 아마 3단계도 안 걸릴거여. 그래서 이 교통의 허브가 시티에 있는 퀸 스트릿 역인 것처럼 내가 브리즈번 한인 네트워크의 허브다 이 말이지. 켈리는 이제 나를 아니까 어마어마한 허브를 갖게 된 거여.

-아...; 네.....;;;


뭐지?

기승전 자기자랑타임인가?


박사 하는 양반들은 다 이런가? 교통 연구를 한다더니 허브니 뭐니 본인이 브리즈번의 허브라느니... 대략 난감이었다. 그래도 듣고 있자니 부럽긴 했다. 딱히 아는 사람이 많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타국 생활 정말 심심하진 않겠다 싶었다.


김박사의 허브론이 끝나갈 무렵 내가 내릴 역도 다가왔다.


-저 여기쯤 내리려구요.

-아니 왜 여기서 내려?

-아. 제가 가려는 버블티 샵이 이 근처라..

-그냥 퀸 스트릿 가서 내려. 어차피 거기가 거기잖어

-아;; 아니에요. 저는 여기가 가까워요

-그래 봤자 몇백미터 차이 안 날걸~~


교통 박사 공대생 아니랄까 봐 몇백 미터는 개뿔. 나는 단 1미터를 가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길 내가 좋아하는 길로 가고 싶단 말이다. 퀸 스트릿 역은 지하로 연결되어있어서 싫어해서 나는 그전에 내리고 싶었던 건데.


-그럼 박사님이 여기서 내려서 겨우 그 몇백 미터 걸어가심 되잖아요.


하고 되받자


-아??? 그러네?? 그러지 그럼.


하면서 버스에서 냉큼 내리는 구불 회장.


내리자마자 나랑 반대방향으로 향하면서 '나는 그럼 늦어서 이만 간다~' 하곤 손을 휘휘 내젓더니 펑실펑실한 머리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리자마자 같이 갈 거도 아니고 그냥 바이~ 하고 갈 거면 굳이 여기 내린 이유는 또 뭐람???


참 여러모로 희한한 양반이었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희한한 양반의 뒷모습을 보니 가관이었다. 바람이 불자 파마머리는 이리저리 휘날려 자기들끼리 엉키고 있었으며, 통이 큰 청바지와 헐렁한 낡은 흰 티셔츠는 포대마냥 몸에 겨우 붙어선 이리 펄럭 저리  펄럭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머리가 좀 큰 편인데, 파마머리까지 뽀글대니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도 눈에 확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그 희한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뒷모습을 오래 쳐다봤다.


세상 사람 사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구나.. 나는 서둘러 버블티 가게로 향해 달콤한 버블티를 쭈우욱 들이키며 시티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댔다.


2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곳곳에 묻어있던 내 추억. 내 친구들. 내 기억들. 그리고 이 브리즈번의 냄새. 그토록 그리워해서 결국 다시 왔지만, 나는 여전히 브리즈번에서 브리즈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그리워하던 건,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2년 전의 추억이었구나. 


문득 쓸쓸해졌고, 빗방울이 옅게 뿌리기 시작했다.



브리즈번의 퀸 스트릿 몰


집에 가야 하나..

집에 가도 아무도 없는데.


아. 아무도 없는 건 아니지.


심술쟁이 집주인 아줌마와 미스테리한 그의 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눈치 보여 부엌을 맘대로 쓸 수 있길 하나 세탁기를 돌릴 수 있길 하나..  희영 언니도 바빠서 늦게 올 게 분명한데.. 가고 싶지 않은 집 밖에 갈 곳이 없는 맘이 이리저리 슬펐다.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elly0123&logNo=22118873844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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