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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Oct 08. 2019

아주머니 VS 아들내미

게임 때문에.....


내가 그때 희영언니랑 살고 있던 집은, 한국인 집주인 아주머니와 그의 아들이 살고 있었다. 아들은 혼혈이었고, 한국말을 거의 못했지만 알아듣는 능력은 원어민 못지않아서, 아주머니는 아들에게 한국말로 매일 이야기(라고 쓰고 잔소리라고 읽는다)를 하면 아들은 영어로 대답하는 재미난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1층은 희영 언니와 내 방이 있고 큰 욕실과 작은 다용도실이 있었다. 언니랑 나만 둘이 욕실을 쓰면 되었고, 언니도 나도 깔끔하게 사용하는 편이라 그게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욕실에 서로 가져다 둔 화장품을 같이 써보기도 하며, 서로 방에 놀러 가 침대에 누워서 그날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그때만큼은 한국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인데, 2층에는 3개의 방과 부엌, 그리고 거실이 있었다. 거실의 통 유리창 너머로는 커다란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펼쳐지고 햇살이 들어와 늘 밝고 풍경이 좋았다. 


아주머니는 언제고 올라와서 티비도 보고 차도 마시라고 했지만, 불편했다.


1층의 방은 내 공간이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다른 사람의 가정집을 침범하는 느낌이랄까.


아주머니의 아들은 QUT(퀸즐랜드 공과 대학)에 다니는 1학년 학생이었는데, 요즘 단어로 이야기하면 게임 덕후였다. 하루 종일 헤드셋을 끼고 게임만 했는데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극혐해서 둘은 매일같이 싸우기 일쑤였다.


밤에 게임 좀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는 아주머니와 그 목소리를 BGM으로 깔고는 대꾸도 않고 태연히 게임을 하는 아들의 모습은 일일드라마마냥 펼쳐졌는데, 보다 못한 아주머니가 아들 방의 컴퓨터를 거실 식탁에 설치해 버리자 둘의 싸움은 거실에서 진행되어 희영언니와 나는 본의 아니게 그 생중계를 더 생생하게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제발 나가서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라고 게임 좀 끄라며 잔소리를 해댔고, 아들은 약 30여 분간을 쌩까다가 겨우 yeah, I will 하고 한마디 대답하고, 그 대답에 열 받은 아주머니의 목소리 데시벨이 약 3배로 높아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게임을 해야만 하는 이와, 그 모습이 답답한 이의 합의점은.... 저 멀리 평행선 상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시작된 아주머니의 잔소리에 그날따라 아들은 당차게 짜증을 내었고, 위에서 무언가 퍽퍽 날아다니고 던져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럴 거면 '이 집에서 썩 나가 버리'라는 아주머니의 굉장히 화가 난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끝나지 않는 갈등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주머니는 어제 소란이 있어서 미안하다며 당분간은 조용할 거라며 사과를 하셨고 나는 괜찮다며 슬쩍 말을 돌렸다. 그 누구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까 싶었다.


아주머니는 서둘러 출근을 하셨고, 점심 즈음 2층에 올라가자 아들은 또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아들과는, 아무리 인사를 해도 절대 대꾸도 않고 아는 척도 않는 녀석이라 나도 굳이 인사도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날 저녁은 아들이 게임을 포기했는지 어쨌는지 집이 조용했다.


다음날 낮에도 아들은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날 저녁도 조용했다.


이렇게 며칠이 흘렀다.


희영 언니가 일 때문에 늦어지던 저녁, 밥을 먹으러 2층에 스윽 올라가니 아주머니가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너도 한잔 할래?

-아, 저는 저녁 먹으려구요 괜찮아요.

-요즘은 좀 조용했지?

-하하..네.. 뭐 그렇죠.


와인을 몇 잔 마신 아주머니는 약간 술기운이 올랐는지 나를 붙들곤 푸념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용인즉슨, 게임만 해대던 아들이 너무 꼴 보기 싫어서 며칠 전 소란이 있었던 밤에 아들을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곤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며칠 째 보이지 않아 어디든 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만 자기가 너무 했나 싶고 후회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내쫓으셨다던 아들....


매일 같이 집에서 게임하는걸 내가 봤는데..... 아들이 며칠 째 보이지 않는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가만히 아주머니의 횡설수설을 듣고 종합해 보니, 아주머니는 아들을 쫓아냈고 그래서 애가 나간 줄 알고 있었지만, 이놈의 아들은 어디선가 잠만 자고 아주머니가 회사로 출근하면 본인은 집으로 복귀해 아주머니가 퇴근하기 직전까지 게임을 즐기다가 퇴근 시간에 맞추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어디 있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너무 했나 싶은 짠한 마음에 훌쩍이고 있었고, 거기다 대고 차마 매일 낮에 너네 아들이 와서 게임하며 밥까지 잘 챙겨 먹더란 말을 할 순 없어서 나는 속으로만 웃고 있었다. 


그러고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낮에 올라가 보니 아들은 거실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매일 인사를 건네도 아는 척도 않던 좀 괘씸한 녀석이지만 말을 걸어 보았다.


-저기. 너네 엄마가 그러던데 너 쫓아 보냈다던데...?

-Oh.. please don't tell her I am here. (엄마한테 나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마...)

-근데 엄마가 걱정하셔 이제 집에 들어와도 될 것 같아

-Really... I see (그래? 알았어..)


그날 밤인가 다음날 밤인가 아들은 집에 들어왔고, 며칠 잠잠하나 싶더니, 다시 모든 갈등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었다.


급기야는 어느 주말 점심때 나는 2층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아주머니와 아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주머니가 나보고 방에서는 절대 음식을 섭취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아들에게 책과 팜플렛 같은걸 마구 집어던지며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치기 시작했고, 아들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얼른 달아나 버렸다.


아주머니도 아들도 둘 다 불쌍했지만, 정말이지 나도 그 집을 나가고 싶었다.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고, 그렇게 매일 스트레스를 받던 아주머니가 나랑 희영언니에게도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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