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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Nov 13. 2019

오해가 낳은 오해

페이스북이 잘못 했네

새 학기가 시작하고 여러 주가 지나자 내겐 베스트 프렌드들이 생겼다.


칠레에서 온 코니, 파키스탄에서 온 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포디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매일 같이 점심도 먹고 군것질도 하고 공부도 같이 하게 되었다. 과제도, 에세이도 함께 머리를 맞대면 부담이 반으로 줄었고, 친구들 덕에 학교 생활은 날로 날로 즐거워지고 있었다.


밤마다 과제를 하면서 페이스북을 켜 놓으면 친구들도 접속해 있었고,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면서 함께 에세이를 쓰고 발표 자료도 만들고 수다도 떨면서 새벽 1-2시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희한하게, 그 시간에도 구불머리 김 회장은 본인도 페이스북에 접속을 해 있으면서 내게 이렇게 늦게까지 안 자고 뭐 하냐고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숙제 중이라고 대답을 보내니 석사가 무슨 숙제를 이렇게 열심히 하냐며 대충대충 하라는 이상한 조언과 함께 저번에 만났을 때 얘기한 거 재미있었다며, 이런저런 뉴스를 갖고 와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구불머리 회장은 뉴스나 이런저런 사건들에 대해 상당히 독특하고도 희한한 의견을 곧잘 냈는데, 흥미롭기도 하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신기하기도 해서 메신저로 밤에 가끔씩 떠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구불머리 회장이 그렇게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박사라는 사람이 공부도 별로 안 하는 것 같았고, 사람들 만나서 술 마시고 떠드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유부남이 새벽 1-2시에 나 같은 사람에게 메신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내 되신 분 입장에선 굉장히 별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난, 구불머리 회장이 유부남인 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나이도 있었고, 같이 다니는 안 박사님도 이미 결혼을 한 데다가, 대부분 박사하고 있던 오빠들은 다 이미 결혼을 해 유학을 온 상태였기에... 그런 등등의 이유로 인해 너무도 당연히 구불머리 회장도 결혼을 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했었다.


물론 아니었지만.


그렇게 이야기는 잘 통하고 재미있지만... 뭔가 한편으론 이 사람은 좀 별로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몇 주가 지나갔는데, 어느 날, 구불머리 회장이 갑자기 메신저로 내게 저녁 식사 초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 켈리. 이 시간까지. 또 안 자네??

-아 네. 과제가 너무 많아서요...

-에헤이. 석사가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좀 짜증이었다.


석사는 뭐 열심히 하면 안 되나? 나도 과제가 매일 버겁고 힘들다고.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안 하면 따라가질 못하니가 하는 건데... 물론 박사보다 훨씬 덜하겠지만 누구든 자기의 일이 제일 힘든 법 아니냐고.


안 그래도 산더미 같은 에세이에 과제에 기분도 안 좋던 차에 그런 소리를 듣자 짜증이 확 솟구쳐서,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머리가 나빠서 열심히 해야 겨우 따라가거든요.


하고는 메신저 창을 끄려는데,


-이번 주 금요일 울 집에 저녁이나 먹으러 와.


라고 하는 구불머리 회장.


금..요일 저녁에 본인 집에, 나를, 초대를 한다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하곤 당황해 있는데


-이번 주 금요일엔 울 집에 아무도 없거덩!!!!!! 꼭 와야 해!!!!! 나 잔다 안녕!!!!


하고는 페이스북을 꺼 버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게, 뭐 부인이 그날 집을 비우거나 한다는 거 같은데, 부인이 없는 틈을 타 나보고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초대를 한다?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초대를 하는 건지, 저런 무례함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너무너무 기분이 나빠졌다.


한 마디 하려고 보자 이미 구불머리 회장은 로그아웃 상태.


문자를 보내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일단 날이 밝고 다시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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