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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Nov 15. 2019

민망함은 나의 몫

오해가 풀리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생각을 해도 너무 기분이 나빴다.


이럴 땐 희영 언니에게 물어보는 게 답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똑 부러지고 현명한 답을 주는 희영 언니였다.


-언니, 이러이러해서 김 박사가 나를 저녁 초대를 한 거야. 유부남이, 부인이 집을 비운다고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게, 나는 너무 기분이 나쁜데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나 한 마디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헐... 듣고 보니 좀 그렇다! 음... 너가 지금 기분이 나쁘고 싫으니까 그런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건 나쁜 게 아니지!!!


언니까지 동의를 했겠다,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날 오후가 되자, 아니나 다를까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구불머리 회장.


심호흡을 하고, 큰 맘을 먹고, 회장에게 채팅을 걸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오~ 유켈리~ 뭐여 말해봐.

-금요일에 저녁 초대한 거 말인데요.

-응, 꼭 와!!!

-근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솔직히 부인분이 아시게 된다면... 엄청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


그러고 내 얼굴을 엄청나게 달아오르게 한 김박사의 한 마디.


-나... 결혼 안했는디??????????????????????





-네??;;;;; 아... 아니...;;;; 네?


당황한 나머지 타자를 치는 손이 떨렸다.


 -집..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집을 비워 그날 초대하니 뭐니 하신 건 그럼 뭔가요?


-나 지금 싱가폴 놈이랑 뉴질랜드 놈이랑 나랑 이렇게 셋이 방 한 칸씩 쓰면서 살어. 걔네가 이번 주에 다 어디 가서 집이 비어서 우리 한국 석, 박사 학생들 모임을 할려고 하는건디.... 너 말고도 희영이랑 안박사랑 한 10명 넘게 초대 한 겨.




그렇다.


사실 구불머리 회장은 싱글이었으며.

같이 산다는 사람은 뉴질랜드에서 온 박사 중인 젊은 청년과 키가 멀대같이 큰 싱가폴에서 온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날 저녁은 나만 초대받은 게 아니었다. 사람 좋아하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구불머리 회장은 하우스메이트들이 다 여행을 가서 집이 비니까 신이 나서 온갖 사람들을 초대하였고, 나도 그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물론 내가 멍청하기만 해서 한 착각은 아니었다.


자초지종 없이 그렇게 툭 말을 던지곤 페이스북에서 나가버려 오해를 일으킨 김박사의 잘못도 분명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하고 한참을 키보드에 손가락만 올린 채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는데, 구불머리 회장은 '뭐 음식 같은건 내가 준비하니까 그런건 됐고 맥주나 몇 사와~' 한 마디만 던지고 다시 페이스북을 나가버렸다.


다.. 행이다.


가출한 정신머리를 수습하러 거실에 나와 찬물을 마시는데 희영언니도 거실로 나와서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깔깔 웃기 시작했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구불머리 회장은 적어도 결혼 해 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늦게까지 집에 안 가고 다른 여자들에게 메신저로 말을 거는 바람둥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도대체 얼마나 그를 좋지 않게 보고 있었던지.. 혼자 오해를 한 일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편견에 차 그를 안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며칠 후 금요일, 희영 언니와 나는 나란히 맥주를 사 들고 구불머리 회장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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