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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Feb 03. 2020

타링가의 구불 회장의 집


금요일 저녁.


구불머리 회장은 Taringa라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희영언니와 내가 살던 곳 (Mt Gravatt East)에서는 조금 많이 먼 곳이었다. 시티에서 버스를 한번 갈아탄 후 도착한 회장의 집에는 이미 왁자지껄 많은 사람들이 어림잡아 15-20명은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언니, 오빠들이었고, 우리처럼 석사 과정을 하는 사람들도 한둘 더 있었다. UQ에 이렇게 많은 한인 학생들이 있었다니! 모르는 사람은 새로 알게 되고, 아는 얼굴은 알아서 더 반갑고, 그렇게 즐거운 저녁 시간이 되었다.


물론, 구불머리 회장에게 했던 오해 아닌 오해 때문에 혼자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 대했고 그런 일은 벌써 잊은 것 같았다. 


괜히 혼자 지난 일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그냥 맘 편히 있다 가야지 싶었다.


구불머리 회장은 다세대 주택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발코니가 커다란 집이었다. 그 발코니 바깥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 나무들 너머로 아스라이 브리즈번 시티의 풍경이 보였다.


이런 느낌.. 실제로는 더 멀리 보였다.


맥주를 홀짝이며, 즐거운 이야기가 가득한 곳에서 보는 시티의 풍경은 참 예뻤다.


발코니에서 창밖을 계속 쳐다보고 있자 불쑥 옆으로 다가온 회장이 


- 저 나무를 다 베어버리던가 해야지.


라며 갑자기 흥을 깨는 소리를 했다.


-왜요? 나무 사이로 보는 풍경이라 더 이쁜 것 같은데요.


라고 대답하자 


-보이려면 시원하게 보여야지 이건 뭐~ 보이는 것도 안 보이는 것도 아녀~


라면서 어떤 넘을 베어야 하나? 하면서 집 앞의 키 큰 나무들을 요모조모 살펴보는 구불머리 회장. 참 희한한 캐릭터가 아닌가, 또 그런 생각을 했다. 공대생의 시각인가...


그날 있었던 즐거운 자리 덕분에 정말 많은 좋은 사람들이랑 친구가 되었고, 그중 몇몇은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학교엔 아는 얼굴도 친해진 얼굴도 많아졌다.

구불 회장은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늘 누군가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도 스스럼없이 같이 웃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참 낯을 많이 가리던 나였다.


그런데 구불머리 회장은 처음 본 사람도,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도, 친한 사람도, 덜 친한 사람도 아무나 붙잡고 수다를 떨며 커피나 맥주를 마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점점 그를 만나는 일도, 그 자리에 처음 보는 얼굴이 나와 있는 일도, 모르는 사람과 수다 떠는 일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우리는 굉장히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정말 희한한 캐릭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생각과 굉장히 비슷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정치적 견해도, 삶의 가치관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구불 회장은 내게 


-나이도 어린 사람이 참 생각이 독특혀


라고 곧잘 말했고 나는


-제가 살아보니 생각의 깊이와 물리적 나이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던데요?


라고 되받아치곤 했다.


그러면 구불 회장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충청도스런 말투로


-하는 말마다 어쩜 저런가 몰러~ 애늙은이여~ 이길 수가 없어~


하며 웃곤 했다.


그러고 우리는 만나서 수다를 떨고, 별 시답잖은 주제로 토론을 하며, 밤늦게까지 페이스북에서도 메신저로 떠들면서 더, 더, 친해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게 그냥 단순한 '우정'이라고 생각했었다.

말 잘 통하는 학교 친구, 선배, 그냥 그런 정도. 특히 구불머리 회장은 발이 넓어 브리즈번에만 수십명의 친구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요즘 말로 그는 '핵인싸'였기 때문에.


시간은 더 흘러 어느새 1학기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나는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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