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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Aug 26. 2020

졸업을 앞두고..

구불 회장의 고백


구불 회장과 함께한 시간들도 어느새 1년이 지나, 그도 나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의 전공 분야는 Civil Engineering (도시공학), 나의 전공은 Applied Linguistics (응용 언어학)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유학을 떠났었다. 그리고 유학 후 꿈은, 원장 선생님 밑에서 강사로써 암기식 영문법이나 틀에 박힌 영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작은 영어 학원을 내가 직접 하나 차리는 것이었다.


내 학원은 햄스터와 이구아나도 있을 거고, 벽면에는 세계지도가, 책장에는 각종 영어 동화책이, 함께 레시피를 찾아 보고 같이 여행 계획도 세워 보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살아있는 언어'로써 영어를 접하고 하나의 문화로써 다가가게 되는 그런 학원.


20살 이후 쭈욱 풀타임, 파트타임으로 영어 강사로 지내면서 키워 온 내 소중한 꿈 한 자락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졸업이 늘 기다려졌고 한국으로 돌아갈 나날만 세곤 했다. 사실 공부에 더 욕심을 내어 미국 박사 학위 진학까지도 생각하고 호주로 왔는데, 호주에서 졸업 논문을 쓰며 박사 학위 생각은 싹 날아가 버렸다.


5-6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한다 한들, 언어학 같은 분야는 고학력 실업자기 되기 딱 좋은 전공이었다. 그리고 박사 학위를 해 교수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것조차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논문을 쓰는 과정이 즐겁기보다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언어 습득에 관한 책을 읽고, 배우고, 내가 알아가는 여정과는 달리 논문을 쓰는 과정은 정말 동떨어진 세계였다.


내가 석사학위를 하면서 깨달은 진리는, 나라는 인간은 습득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생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작도 않은 박사의 길을 깨끗이 포기하고 하루 하루 귀국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나와는 달리, 구불 회장은 조금 상황이 복잡했다.


구불 회장은 호주 현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박사학위 제안을 받고 박사를 시작한 케이스였는데, 박사와 일을 동시에 병행하기 힘들어 박사 끝날 무렵에는 직장을 그만둬 버렸다. 그는 박사 졸업과 함께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몰랐지만, 한 분야의 박사는 공대라 하더라도 전공을 살려 취업 하려면 취업 문이 상당히 좁다는 사실이었다.


정해진 학기에 끝나는 석사와는 달리, 구불 회장의 박사학위는 4월경에 끝났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내게 자신의 상황을 세세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졸업 후 한국으로의 귀국이 보장되지 않고, 경력을 쌓기 위해 호주에 계속 남거나 아니면 제3국으로 떠나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그리고 내게 괜찮으면 그 여정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그 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귀국하자마자 하려고 세워 둔 계획이 한가득인데. 구불 회장과 계속 호주에 남거나 제 3국으로 떠나야 할까? 어쩌면 그건 내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커다란 고민이었다. 사실 그 날의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연애를 끝내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그냥 장거리 연애 같은걸로.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 날 좋은 핑계를 떠올리고는, 다시 그를 만났다.


-생각해 봤는데, 호주에 남게 될 경우도 그렇고 내가 오빠를 따라 갈 경우도 그렇고 비자라는게 문제가 되잖아.

-그렇지.

-내 학생 비자도 곧 만료고, 다른 국가에 가게 된다 한들 나는 신청할 수 있는 비자가 없으니까.

-그렇지.

-좀 어렵게 됐다, 그치?

-그렇지.


굳은 표정으로 '그렇지'만 반복하던 그.


그러다 갑자기 구불 회장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 결정적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럴 때 써 먹으라고 있는 게 결혼이라는 제도 아냐?


순간 뇌가 모든 활동을 스탑한 것 같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만약 호주에 남아 있게 된다면, 혼인 신고를 않더라도 '사실혼'관계를 증명하면 되는 파트너 비자라는 걸 신청하면 돼. 그리고 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우리 결혼해서 너도 비자를 정식으로 받으면 되잖아.


-난.. 솔직히 그것까진 아직 생각을 못 해 봤는데.


-갑작스럽다는거 알아. 근데, 내가 그럼 오늘 내 인생의 청사진을 발표할게. 듣고 선택에 참고 해 줄래?


갑자기 그는 컴퓨터를 켜더니 구글 맵을 띄웠다. 그리고는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 내가 사실 지금 총 5개국에 지원서를 냈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영국, 캐나다, 그리고 카타르라는 나라에서 내가 원하는 포지션을 모집하더라고. 그 다섯 나라야. 나야 솔직히 다 되면 어디에 갈지가 고민이라 구글 써치를 좀 해봤는데,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라는 수도가 근무지야. 거기가 생소할 지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살기 정말 좋고, 회사에서 숙소부터 각종 지원이 다 나와. 말레이시아 음식 맛있는거 두말하면 잔소리고. 싱가포르도 내가 6개월 정도 살아본 적 있는데 정말 다이나믹하고 재미난 곳이야. 영국은 1년 정도 있어봤는데, 영국도 재미나. 너 영국 악센트 좋아하잖아. 캐나다야 말할 필요도 없는 대 자연이 있는 곳이고, 카타르는 중동 국가긴 한데, 내가 두바이에 있을 때 유럽 여행을 엄청 다녔어. 유럽과 무척 가까워서 여행 하기 정말 좋고 무엇보다도 면세 국가라 페이에 세금을 매기지 않아.


-나한테 말도 없이 이렇게 지원을 하고 있었어?


-너 논문 때문에 힘들어하고 스트레스 받는데 나까지 머리 아프게 하기 싫었어. 합격 하면 그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러면 이미 늦을까봐...


-그럼.... 어딜 제일 가고 싶어? 그래야 나도 결정에 참고하지.


-만약 날 따라와 주기만 한다면 너가 가고 싶은 나라에 갈게. 나는 상관없어.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한국이잖아.


-그래도 어떻게 그래..


나는 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카타르 빼고 다 좋은 것 같은데? 카타르는 중동 국가라 위험하고 덥고 별로일 거 같아.


-그치? 나도 사실 캐나다나 영국을 제일 기대하고 있는데.


-그럼 캐나다나 영국이라면 우리가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함께 할 수 있잖아.


-아 그런게 있어? 그럼 니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같이 가 주기만 한다면... 우리 한국도 호주도 아닌 곳에서 즐겁게 같이 시간 보내고,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가자. 한번 한국에 정착하면 이런 시간 다시 오기 어렵다는거 너도 잘 알잖아. 그리고 너 학원은 1-2년 미뤄져도 괜찮지 않아? 다양한 경험을 하면 더 멋진 선생이 될 것 같은데!! 호주에서만큼 신나고 재미난 일이 가득할 걸!!!



그의 마지막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그날, 난 집으로 돌아가서 정말로 정말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은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그땐 모르고 계셨다.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고민이 있다고 툭 털어놓기도 힘든 상황. 내 일은 결국 나 혼자 해결해야 하는구나.. 그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 20대 중반의 어린 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구불 회장의 얼굴빛이 많이 어두웠다.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구불 회장.


그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나.. 다 떨어지고 카타르만 됐어. 어떡하지...?




제일 가기 싫던 한 나라, 카타르만 합격했다는 구불 회장.


-거기 가야만 하는 거지?



그는 내 눈도 못 마주친 채 답이 없었다.


-내가 거기 가려면 비자같은거 방법이 있어?


-아니. 결혼 비자 말고는 안 돼.. 무슬림 국가라 절대 아무 비자도 내 주지 않아..



이제 모든 결정은 내 손에 달린 상황이었다.


카타르라니.


카타르의 수도 도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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