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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Sep 03. 2020

카타르에 도착하다

도하의 첫 인상


카타르에 도착한 날은 7월 하순. 한창 여름이었지만, 중동의 여름은 더욱 더 숨막히고 뜨거웠다.


브리즈번에서 홍콩, 홍콩에서 도하까지, 장장 이틀이 걸린 기나긴 여정을 마치자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때는 도하의 공항이 지금처럼 크고 세련되지 않았을 때라, 공항에서 내린 첫 인상부터 별로 좋지 못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나오자, 구불 회장이 파란 장미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카타르로 와서 더이상 UQ한인 연구자 모임의 회장이 아니니, 구불 회장보다는, 지금도 장난삼아 부르고 있는 '닥터 킴' 아니면 남편이라고 부르겠다. ㅎㅎ)


파란 장미라니.


내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걸 알고 보라색 꽃을 찾으려고 했지만 없어서 대신 파란색을 골랐다는 그.


참으로 이질적인 색이었다. 꽃으로써 가지기엔 정말 자연스럽지 않았던 색을 가진, 희한했던 그 장미.


그는 앞을 내다봤던 걸까?

그때부터 시작된 우리의 결혼 생활도, 참으로는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피곤해서 잠시 샤워를 하고, 근처 쇼핑몰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그를 따라 나섰다.


쇼핑몰은 정말 화려했고, 처음 보는 아랍의 글자들이 이국적이고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유달리 파키스탄, 인도 계열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거의가 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했다.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쇼핑몰은 뭔가 휑한 느낌이었다.


마트를 둘러보고 당장 뭐가 필요한 지 몰라 일단 마실 물만 한 병 샀다. 계산 후 출구에서 물을 시원하게 쭈욱 마시고 있는데, 근처 모든 사람들이 대놓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마트 출구 주변에 앉아서 쉬고 있던 4-50명의 사람들의 눈동자가 빤히 나를 쭈욱 따라다니며 쳐다보는데, 그 표정이 사뭇 무서웠다. 동양 여자를 처음 본 거야 뭐야? 나는 나머지 물을 마저 들이키고는, 썩 기분이 좋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차에서 남편에게 왜 그렇게 사람들이 날 쳐다봤을까 하고 여기 동양인이 그렇게 없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지금 라마단 기간이라서 그런가 봐!!!

-라마단?


라마단은, 이슬람교의 금식 기간이다. 매년 1개월 가량 행해지는데 그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음식은 물론 물도 한 모금 마시면 안 된다고 한다. 나도 호주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우디 아라비아 친구가 있었기에, 라마단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지?


-내가 두바이에 있었을 때는 라마단 기간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이면 낮에 먹고 마시는 일이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런데 카타르는 두바이보다 훨씬 더 폐쇄적인 분위기야. 여자는 민소매나 반바지도 안 된다고 하고, 라마단 기간에는 바깥에서 물 마시는 것도 굉장히 예의가 어긋난다고 하더라고.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의 설명은 절망적이었다.


모두들 금식 중이라 정말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을 텐데, 그 앞에서 혼자 꿀꺽 꿀꺽 물을 들이킨 내 잘못이었다.


-라마단 기간에는 상점들이나 식당들 대부분도 낮엔 영업을 안 해. 그래서 아까 쇼핑몰이 썰렁했던 거였나 보다.

-그런게 어딨어!!


나는 하필 라마단 기간에 카타르에 도착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도로는 엄청나게 불어난 차들로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차들은 서로 얽히고 섥혀 빵빵거리고, 4륜차들은 도로를 나눠놓은 화단까지 넘나들며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배고픈 자들의 질주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알고 보니, 라마단 기간에는 사람들이 낮동안 활동을 않고 집에 있다가, 해 질 무렵이 되면 식당으로 출근해 해가 지는 그 순간부터 바로 음식을 즐긴다고. 그러기에 해 질 무렵이 되면 낮 동안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해 배가 고플대로 고픈 사람들이 순식간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게 되고, 배고픈 사람들의 인내심은 바닥에 닿아 도로에서 이렇게도 화가 많아진다는 것.


카타르의 교통체증. 뿌연 배경은 모래먼지.


정말 당황스러운 낯선 풍경과, 낯선 문화였다.

집에 도착하니 아닌게 아니라 해가 막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중동의 해는 유독 낮고, 이글거리며 지는 느낌이었다.


집 밖으로 보이던 풍경.



-우리도 라마단 만찬이나 즐기러 가 볼까?

-그게 뭔데?

-라마단 기간에는 식당마다 다르지만 보통 금식을 끝낸 첫 끼, '이프타르(Iftar)'라는 특별한 메뉴가 새로 생기거든. 카타르에 왔으니까, 이프타르를 먹어 보러 가자!


나는 여전히 어리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이프타르를 먹으러 나섰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프타르는 무슨 음식인지 몰라도 기대는 딱히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한 나라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렁 왔다, 는 생각이 엄습했다.


뭔가가.. 많이.. 잘못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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