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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Sep 05. 2020

김치 찾아 삼만리

김치인지 금치인지...

이프타르 (Iftar).


남편의 대충 둘러대는 설명에, 나는 이프타르가 하나의 메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프타르는 '피자'나 '스테이크'같은 하나의 메뉴 이름이 아니라, 라마단 기간에 해가 진 후에 '최초로 먹는 식사'를 뜻하는 아랍어였다. 레스토랑에는 이프타르라는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프타르라는 특별한 스타일의 메뉴가 새로 생겨 있는 식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 특별 코스.. 그런 기분일까 싶었다.


그를 따라 간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이프타르 특별 코스! 라마단 한정 메뉴!>


식당의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이프타르 특별 코스를 주문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특별 메뉴를 주문하자 제일 먼저 나온 건, 대추야자 열매였다.


대추?

대추가 왜 나오는 거지.


내가 아는 한, 대추는 작고 쪼글쪼글하고... 텁텁한 냄새가 나는 말라빠진.....뭐 삼계탕에 끓일 때나 넣던 그런 열매가 아니었나.


그런데 중동의 대추는 달랐다.


중동에서 즐겨 먹는 대추야자


이프타르 스타터로 나온 대추는 정말 크고 통통했고, 껍질 안에는 달콤한 과육이 가득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금귤(=한국 대추)과 오렌지(=중동의 대추 야자) 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프타르의 시작은 대부분 이 대추야자인데, 이는 하루 종일 굶은 사람들이 갑자기 폭식을 하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달콤하고 통통한 대추를 한입 가득 오물거리니, 그제서야 내가 정말 중동의 어느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알라딘에 나오는 한 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이국적인 대추의 맛과, 사방엔 이국적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가득한 그 곳. 대추를 다 먹자 양갈비와 각종 야채 요리가 서빙이 되었고, 약간의 낯선 향신료 느낌은 있었지만 맛있게 저녁 식사를 끝냈다.


그렇게 내 도하에서의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


그 후 며칠간은 하루하루 적응하느라 바빴기에 우린 주로 외식을 하였고, 중동 음식이 제일 흔했기에 (거의가 다 케밥이나 꼬치 같은 고기 요리다) 매일같이 별 맛이랄 것도 없는 그런 요리를 먹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어느 순간 한국 음식이 못 견딜 정도로 너무너무 먹고 싶어 졌다.


무엇보다도 매콤하고 아삭한 김치와 뜨끈한 미역국 같은 게 제일 먹고 싶었지만, 되짚어보니 그 어디에서도 김치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 무렵 남편은 어느새 카타르에 산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그는 이전에 두바이에 살아본 경험으로 중동 문화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어서, 나는 그에게 김치의 행방을 물었다.



-오빠. 김치가 먹고 싶은데 어디서 사면 될까? 여기 근처에선 한 번도 김치를 본 적이 없어.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여기 와서 한 번도 김치 먹은 적이 없어?

-응. 안 보이니까 그냥 안 먹고 살았지.

-헐...두 달이나 됐는데? 김치나 한식 같은 게 전혀 안 그리웠어?

-별로 생각 안 나던데... 없으니까 굳이 뭐...



그는 두 달간 김치를 먹은 적도 없고, 딱히 김치가 생각나지도 않았단다. 어쩜 그럴 수가 싶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해외 생활 이력이 꽤 오래 된 사람이었다. 20대 때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의 어학연수 1년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두바이 등을 거쳐 호주 브리즈번까지. 그가 제일 좋아하는 파스타는 알리오 올리오. 술안주로는 항상 올리브와 치즈.


아마.. 그는 어느새 한식 없는 생활에 꽤나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평생을 살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김치류를 정말 사랑했고, 김치볶음밥에 볶음 김치를 먹으면서 김치찌개까지 먹을 수 있는 진정한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 나는, 김치를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었단 말을 들으니 더더욱 김치가 생각났고 너무나 김치가 간절해졌다. 어디 김치가 포기가 되는 음식이던가.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그 곳엔 김치가 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 말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며, 나는 김치 사냥에 나섰다.


제일 먼저 내가 향한 곳은 카타르에 있는 각종 마트들이었다. 카타르에는 주로 '까르푸'라는 마트가 많이 들어와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어릴 때 한때 본 적 있던 마트라서 이름이 친숙했다.


카타르의 까르푸


하지만.. 온갖 군데의 까르푸를 다 다녀봐도 김치는커녕 배추 비스무리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배추, 열무, 무..


셋 중 하나라도, 아니 그 비슷하게 생긴 야채 하나라도 있으면 김치를 만드는 건 무리가 아니었지만 그 세 개 중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5군데쯤 마트를 다녔을까. 험한 도하의 도로에서 운전하기에 지친 남편이 항복을 선언했다. 이제 그만 하자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지만, 이미 김치가 생각나버린 입엔 그 어떤 음식이 들어가도 행복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입맛도 없다며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를 보며 닥터 킴은 도하에서 제일 크다는 한국 식당에를 데려갔다. 하지만 그곳의 음식은 맛이 없었으며, 그나마 나온 김치도 도저히 김치라고 불러주기 힘든 정도였다.


너무 속이 상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고 오랜 노력 끝에, 나는 네이버에서, <카타르 생활백서 for 아줌마>라는 카페를 발견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서 구글만 주로 했는데, 의외로 해답은 네이버에 있었다.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카페 가입 절차를 마치자, 카페엔 내가 그렇게도 찾던 빛과 소금 같은 글이 보였다.


<김치 팝니다>


카타르에 도착한 지 1주일이 채 안돼 이룬 쾌거였다.


김치라니..

김치를 만들어 파신다니..


그 글을 클릭하고 그 분과 연락을 한 후, 나는 남편과 일정을 조율해 그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카타르에서 한국 사람이라니!

그분의 집으로 간다니!

김치를 사러!!


이건, 정말로, 참으로, 진짜로, 굉장히, 너무나도 익사이팅한 일이었다.




나는 두근대는 심장을 붙잡고 그분의 집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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