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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n 26. 2019

홈스테이의 나날들 (2)

생일파티가 불러온 비극

약간은 지루하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홈스테이를 떠나 많이들 한다는 '쉐어 룸'에서 자취를 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무섭고 용기가 나지 않아 이도 저도 아닌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씨 좋던 주말, 청은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집을 비웠고 난 딱히 할 일이 없어 홈스테이에서 풰이풰이를 데리고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말엔 요리를 하지 않고 주로 피자를 사 와서 먹거나 냉동 라자냐를 데워 먹었기에 주방이 늘 한가해서 그때를 틈타 라면을 하나 끓여 먹거나 3분 요리를 데워 먹거나 했다.


그날도 풰이풰이와 한참 놀다가 배가 고파져,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어볼까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께서 무척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계셨다.


-웬일로 주말인데 요리를 하시네요?

-응, 오늘 집에 손님이 많이 온단다. 우리 딸 생일이야!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흥에 겨워 요리를 하시고 있었고 커다란 생크림 케이크까지 굽고 계셨다. 준비하는 음식 양으로 보아하니 집에 꽤 많은 사람이 오는 것 같았고, 그 심심하던 집에 누군가 오고 파티가 있다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꿈꿔왔던, 호주에서의 파티인가!!! 외국 파티는 어떨까!!!!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그럼 정말 좋지, 저기 오븐에서 양고기를 꺼내서 좀 뒤집어 줄래?


할머니를 도와 주방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하나둘씩 손님이 왔고 할머니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다 나를 소개해 주셨다. 여기는 내 딸 누구, 저기는 할아버지의 딸 누구... 테이블은 요리로 가득 찼고 손님들이 하나씩 들고 온 음식들로 주방은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되었다.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면서 신나게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아주 재미난 파티가 될 것만 같았던 기대와는 달리, 친척들끼리 모이는 자리다 보니 함께 얘기할 수 있을만한 주제가 하나도 없었다. 들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 길도 없어 점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다 같이 웃어도 왜 그게 웃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갑자기 부동산 문제 같은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더더욱 내가 끼어들 만한 틈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어 식탁을 둘러보니, 모두 다 한 가족인데 여기 앉아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슬며시 들었다. 사실 아무도 여기 와서 앉으라고 안 했는데 나 혼자 오버해서 여기 있는 건가? 지금이 빠질 타이밍인가? 자리를 피해 주길 바래 이런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눈치를 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갑자기 테이블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계셨고 언성이 슬슬 높아지던 남자분과 여자분은 당장에라도 크게 싸울 기세로 서로에게 뭐라 뭐라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울고 싶던 차에 뺨 때려 주는 게 이런 건가? 자리를 피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해 먹은 접시를 주방에 놓고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화가 많이 나있던 여자분이 슬금슬금 도망치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조용히 입모양으로 '쏘리~'라고 이야기하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그분이 싸우던 남자분께


-See? She is leaving!!!! Oh, well done!!!! (봤냐??? 저 학생이 방에 들어가잖아!! 잘 하네!!!)


하고 강하게 이야기를 했고 남자분도 벌떡 일어나


-So what??? She does not want to get involved!!!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엮이기 싫으니까 가는 거겠지!!!)


하고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뒤로하고 바쁜 걸음으로 방에 돌아와 문을 닫고는, 너무 너무 너무 한국의 우리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상황과 그때 들었던 영어들이 내게 나쁜 뜻을 가진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well done (잘했어)' 'She doesn't want to~(걔도 싫어~)' 이런 뉘앙스의 말들이 나를 쫓아내길 잘했다는 소리인가 하는 약간의 오해도 했었다.


바깥에선 왁자지껄 계속 시끄러웠고, 방에 혼자 앉아 네이버도 제대로 뜨지 않는 느린 인터넷과 느린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점점 뭔가 더 슬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상한 종류의 비참한 기분은 뭐지...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 딱 그런 거였다.


그러던 중, 밖에선 점점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생일 축하 노래까지 들려왔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모두가 모여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는데, 나만 혼자 방 안에 앉아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마음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나도 부산 우리 집에 가면, 케이크에 불 붙여 주고 노래 불러 줄 사람 있는데.. 나도 부산 집에 가면 풰이풰이보다 천배 만배 귀여운 몽이도 있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러 여기까지 와서 남의 집에 얹혀살고 집 밖에 나가면 당근이나 감자나 맞고 다녀야 하는지..


그때의 어리고도 어려 서러운 마음은 아직도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혼자서 방 안에서 혼자 만들어낸 서러움의 파도와 싸우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똑똑 노크했다.


문을 열자 할머니는 아까 만든 케이크 한 조각이 올려진 작은 접시와 포크를 들고 계셨다.


-이거 먹어봐 정말 맛있단다! 먹고 접시는 가져다 주렴.


사실 아까 봤던 그 케이크가 정말 먹고 싶었던 차였다. 평소 케이크라면 사족을 못 썼기에, 그래, 이 달달한 녀석을 한입 먹으면 모든 우울한 기분이 다 씻겨 내려갈 것 같아- 하며 자리에 털썩 앉아 크게 케이크 한 포크를 떠서 입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케이크가 아니었다. 외형상은 완벽한 생크림 케이크의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빵이 아니라 머랭으로 만들어져 바스락 부서져 내리는 공기를 가득 함유한 얇은 종이 막 같은 질감의 희한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파블로바 (케이크처럼 생긴 머랭으로 만든 디저트)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케이크를 기대하고 먹은 사람에게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맛이었다.


케이크... 정말 먹고 싶었는데.. 이 정체불명의 음식은 도대체 뭔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콜라를 마시려고 쭈욱 들이켰는데 막상 목에 넘어오는 건 미지근한 맹물인 그런 기분.


그때는 몰랐지만 이후의 내 호주생활은 파블로바의 연속이었다. 케이크인줄 알고 먹었지만 전혀 다른 음식이었던 파블로바처럼, 내가 기대하고 원했던 호주 생활이 케이크였다면 내가 실제 겪고 경험했던 일들은 파블로바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뭐가 더 낫고 못하고가 아닌 그저 다른 종류의 디저트일 뿐이다. 원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날의 호불호를 결정할 뿐.


한입 먹고 포크를 내려놓은 채, 처음 맛보는 요상한 맛에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것보다도 이 디저트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할머니께선 항상 음식에 자신감이 넘쳤기에, 남은 파블로바를 보고 분명 왜 남겼는지 뭐가 맘에 안 들었는지를 걱정스레 물어볼 것이고, 그 변명을 이리저리 머리 굴려가며 준비해야만 하는 마음이 참으로 씁쓸했다.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남기거나, 더 먹거나, 안 먹고 싶은데, 내가 생각 없이 누려왔던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냥 먹기 싫은데도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니.


매콤한 게 먹고 싶은 날은 매콤한 걸 먹고 싶었고, 점심 샌드위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넣어서 만들어 가고 싶었다. 냄새 걱정 않고 김치도 먹고 싶었고, 미역국도 한 솥 끓여 며칠 질리도록 흰쌀밥을 말아먹고 싶었다.


여길 나가자. 여기서 나는 도저히 더 살 수가 없다.


학교에서 준 홈스테이 관련 서류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니, 홈스테이는 최소 4주는 무조건 거주해야 하고, 그 이후에 떠나고 싶을 때는 2주 전에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달력을 보니 내가 온 지 2주 하고도 반 정도가 흘러가 있었다.


내일, 2주 뒤에 떠난다고 알려 드려야겠다.


그렇게 결심하니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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