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도 그리운 써니뱅크
호주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의 주거형태는 주로 세 가지였다.
홈스테이 - 호주 현지인들 가정에 살면서 도시락과 식사를 제공 받음. 가격이 비쌈.
기숙사 - 학교가 한적한 곳에 있으면 굉장히 심심하다는 소문. 높은 가격.
쉐어 - 한 사람이 집을 렌트하고, 집의 다른 방들을 각각 또 렌트를 주는 형식, 위치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홈스테이보다는 저렴함.
나처럼 교환학생으로 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홈스테이를 하다 쉐어 룸을 찾아 이사 가는 식이었다. 나는 2주 반 만에 떠나기로 결심을 했지만, 보통 1-2달 있는 경우가 많았고, 홈스테이 가족과 잘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물론 이는 조금 드물었지만, 교환학생 기간 내내 그곳에 사는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홈스테이를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홈스테이 할머니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었는데, 사실 밤잠도 못 자고 고민을 했다. 왜 떠난다고 해야 할까, 무슨 핑계를 댈까, 말하고 나서 굉장히 불편해지는 건 아닐까, 언제 말해야 좋은 타이밍일까? 아침부터 이야기하면 기분 좋지 않을 테니 저녁을 먹고 나서 해야 하나.. 등등.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런 건 몽땅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할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혼자 살기로 결정했다고 2주 후 이사 나갈 예정이라고 조심스레 말씀을 드리니 할머니는 아무 이유도 묻지 않으시며 쿨하게 알겠다며 달력에 2주 뒤 날짜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고 허망하게 끝나버려 약간 당황스러워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나?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아직 뒤에 서 있는지 모르시던 할머니는 달력을 이리저리 들춰보시며 '얘가 지금 떠나면 올해는 이제 새 학기 시작하는 일정이 없어서 더 이상 학생을 받기가 힘들겠네.. 다시 받는다 하더라도 내년 2월이나 되어야 가능하겠는데.. 아이고...'라고 혼잣말을 하고 계시는 게 아닌가.
지금은 할머니가 왜 그런 걱정을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만, 그때는 그런 말들이 나를 돈으로 보는 것 같아서 서운했고 또 굉장히 슬펐다. 참 어린 마음이었다.
사실은 홈스테이 학생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일 수밖에 없다. 내 집에 다른 사람을 살게 하고 삼시세끼 밥을 챙겨주고 한 식탁에 앉아 밥을 같이 먹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호주에 사는 사람들에겐, 세계 각국에서 오는 유학생들과 문화나 언어적 차이도 너무나도 클 것이고,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학생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보호자 역할도 하며 도와줘야 하는 일련의 일들을 '경제적 보상' 이 있지 않으면 누가 그걸 나서서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들어오자마자 나간다고 하고, 더군다나 앞으로는 학사 일정이 없어 학생들이 오지도 않는 시기고, 또 곧 연말이고 -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각 가정에서 최고로 지출이 많은 큰 명절이다 - ... 사실 할머니가 새로 올 학생이 없어 걱정이 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홈스테이를 호스트하는 집들은 대부분 할머니 혼자 사시거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집이었다. 노인들은 호주라 하더라도 연금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홈스테이 학생 한두 명이 있으면 홈스테이 비를 받아 소소하게 용돈 삼아 쓰시기도 좋을 뿐 아니라 적적함도 조금 달래고, 호스팅 자체는 육체적 노동을 크게 요하는 일이 아니기에 노인분들께 딱 좋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의 홈스테이 집이 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호스트였는데, 정말 드물게 젊은 호주 여성분 집에 배정된 친구가 있었다. 그 집에는 아이가 4명이라 그 친구는 나중에는 아이를 돌봐주는 내니 일을 하면서 홈스테이 비를 내지 않고 살기도 했다.
여하튼,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곧바로 한 일은 살 집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사실 호주에 올 때 홈스테이에 대한 크나큰 핑크빛 환상을 갖고 왔기 때문에, 내 계획에 쉐어를 구한다던가 자취를 한다던가 하는 플랜 B는 하나도 존재하질 않아서 그저 막막했다.
일단 어디서 집을 찾아야 할지, 어디 동네에 살아야 할지조차 막연해 무작정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한참 찾다 보니, 내가 다니는 학교 주변의 '독방'이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 있었고 글을 올린 사람은 그 방에 지금 살고 있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전화를 해 상세히 물어보고 방을 보러 갔는데, 딱 처음 본 그 집과 그 방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방이 다섯 개 있는 예쁜 2층 집이었다. 내 방에서는 커다란 창문 너머로 앞마당의 예쁜 정원과 야자수들이 보이고, 1층에는 나와 옆방의 1명, 그러니까 둘이서만 부엌과 화장실을 같이 쓰면 되는 구조였다. 홈스테이에 있을 때 사람은 4명인데 화장실이 1개밖에 없어서 불편했던 적이 있어서, 둘만 부엌과 화장실을 쓰면 된다는 게 마음에 들었고 옆방 사람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는 것도 괜찮았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2층에 또 방이 3개가 있는데 그 방에 사는 사람 모두가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외국의 쉐어문화에 대해 정말 몰랐기 때문에, 한 집의 다른 방이라 하더라도 한 지붕 밑에 모르는 남자랑 살아야 하는 게 굉장히 이상하고도 어색하게 다가왔어서 집에 여자만 산다는 것에 굉장한 만족을 하고는 처음 보러 간 그 방을 당장 계약을 해 버렸다.
그렇게 써니뱅크에서의 내 생애 최초의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