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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n 25. 2019

홈스테이의 나날들 (1)

문화 충격이 시작되다

흔히들 외국 생활을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그려보곤 한다.


푸르고 드넓은 잔디밭에서 바게트가 삐죽 삐져나온 피크닉 바구니를 옆에 놓고 음악 들으면서 앞에는 강아지가 뛰어놀고 뒤에는 가족들이 하하 호호 웃고 있고, 주말이면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고 공기 좋은 대자연속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그런 그림 같은 그림들.


분명, 그 그림은 틀리진 않았다. 단지, 그 순간은, 잠시 지나가는 찰나의 모멘트일 뿐, 그 뒤의 수많은 다른 그림들이 우리가 모른 채 남아있을 뿐이다.


홈스테이에서 나는 총 5주가량을 지냈는데, 그 5주간 겪었던 문화 충격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음식도 그 중 하나였다.


홈스테이 할머니(성함: Feye)는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만들어 주시는 파스타도, 아시아식 스튜 요리도, 스테이크도 하나같이 다 간도 맞고 맛있었다.


하지만, 평생 한국을 떠나본 적 없이 '한식만 매일 먹다' 호주에 온 나에게 익숙한 맛은 아니었다. 오뚜기 카레만 먹고 자랐는데, 할머니께서 해주신 커리 요리는 어딘지 낯선 향신료 냄새가 났고, 커리 안의 소고기에서는 호주 소 특유의 독특한 향이 났다. 스테이크도 한국에서 먹던 부드러운 소와는 달리 거칠고 질긴 느낌이 있었다. 파스타도 한국서 먹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내가 놀랐던 점은, 우리는 반찬 두세개와 메인 요리 (불고기, 제육볶음 등) 한 가지 그리고 국/찌개를 놓고 먹는 것과 달리, 호주의 저녁 메뉴는 심플하게 1인 1 접시였다. 파스타가 나올 땐 빵 조각과 파스타만 놓여 있었고, 스테이크가 나올 땐 으깬 감자와 브로콜리 그리고 스테이크만 한 접시에 모두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사람이 4명이면 설거지 접시도 딱 4개만 나왔다. 한 사람이 한 접시만 쓰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신기했다. 스테이크도, 파스타도, 커리도, 스튜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저녁 밥상 앞에 앉으면 수저를 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나는 워낙 파스타 피자 등을 너무 좋아해 엄마가 너는 호주 가도 한국 음식 생각은 절대 안 나겠다~라고 늘 이야기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밥 없이 스테이크를 먹으니 속이 뭔가 굉장히 허전했고 된장찌개 생각이 절로 났다.


얼큰한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은데, 눈 앞에 놓인 크림 파스타를 볼 때면 차라리 굶고 싶었다. 하지만 늘 내가 잘 먹나 안 먹나 걱정아닌 걱정을 하시며, 맛나다는 찬사를 매일같이 바라시는 홈스테이 할머니 앞에서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아주 소량만 먹기 시작했다. 파스타도 두세 번 먹고 끝날 양만 먹었고 스테이크가 나오는 날에는 제일 작은 덩어리를 골랐다. 그렇게 내가 너무 적게 먹어서 저녁밥이 항상 남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그걸 다음날 도시락으로 싸 주셨다. 홈스테이는 가격이 비싼 대신 원칙적으로 아침, 점심(도시락) 그리고 저녁이 다 포함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점심 도시락까지 제공이 되었다. 하지만, 어제 먹기 싫어 남긴 음식은, 다음날 점심에도 먹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김밥. 떡볶이. 김치찌개. 비빔밥. 불고기. 삼겹살....


한국에 있을 땐 당연했던 음식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이제 와선 우습지만, 소고기 미역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고 싶어 눈물이 찔끔 나던 밤도 있었다.


양식이란 건, 피자, 파스타, 햄버거, 스테이크라는 이 족속들은, 김밥과 떡볶이와 김치찌개와 불고기와 비빔밥을 매일같이 먹던 중에 간혹 섭취해야 맛난 그런 것들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학교에 가서 점심 도시락을 열면, 전날 밤 냉장고에서 묵어 메말라버린 스파게티, 바짝 구워져 육즙 빠진 스테이크. 밥알 사이에 스며들어 딱딱해져 버린 노란 카레밥이 점심으로 계속되었고, 그런 것들이 입맛에 맞지 않아 못 먹고 나날이 야위어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학교에서 다른 홈스테이에 있는 친구들이 샌드위치를 매일 도시락으로 받아오는 것을 보며, 용기를 내어 홈스테이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점심은 혹시 샌드위치를 싸 줄 순 없으시냐고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너무나도 쿨하게 '어렵지 않지! 난 핫 푸드(데워 먹어야 하는 음식은 핫 푸드라고 함)가 더 좋다고 생각해서 저녁 남은걸 싸 줬던 건데 네가 샌드위치를 좋아한다면 샌드위치로 싸 줄게!'라고 하셨고, 마침내 점심을 샌드위치로 받아올 수 있었다.


저녁 남은 건 입에 맞지 않아도, 그냥 점심때, 배 고플 때, 샌드위치는 무난하게 들어가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샌드위치조차 호주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건 한국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엄마가 샌드위치를 싸 주면, 식빵 한 면엔 딸기잼을 바르고 다른 한 면엔 마요네즈를 바른 후, 달걀 프라이, 토마토, 양상추, 치즈, 햄, 얇게 슬라이스 한 사과를 겹겹이 올려서 부드러운 빵을 꾹 눌러서 싸 주셨었는데... 아마 내가 생각한 샌드위치는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땐 그것조차 지극히 한국스러운 것이었다는 걸 몰랐다.


호주의 샌드위치는 사뭇 달랐다.


할머니가 싸 주신 샌드위치를 꺼내 베어 물자, 짠맛과 거친 빵의 식감이 가득 밀려왔다.


이게 무슨 맛이야.. 짜. 짜. 정말 짜다. 너무 짜!!!


너무 놀라 빵 사이를 열어보자, 빵의 한쪽에 발려진 정체모를 갈색의 잼과, 빵 사이엔 햄 한 장과 치즈 한 장만이 들어있었다.


무엇이 이렇게도 짠맛을 내게 하는 걸까 너무 충격을 받아 하나씩 맛을 보니, 치즈도 짜고, 빵에 발려진 갈색의 잼도 짠맛만이 가득했다. 훗날 그것이 호주의 악명 높은 Vegemite(베지마이트- 허브 즙에 소금과 이스트를 섞어 만든 스프레드. 내 입맛엔 썩은 간장 맛이었음)였던 걸 알게 되었다. 호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먹던 거라 익숙해 잘 먹지만 처음 경험한 내 입맛엔 정말이지 충격과 놀람의 연속인 그런 맛이었다. 또, 부드럽고 고소하던 한국의 치즈와는 달리 호주의 치즈는 짜고도 터프한 맛이었다. 빵도, 한국 빵은 살살 찢어지는 폭신한 식빵이라면, 호주 식빵은 질감이 단단하고 거친 맛이었다.


하여튼, 내게는 정말이지 충격 덩어리인 샌드위치였고, 너무나도 죄송했지만 홈스테이 할머니께, 짠맛이 나는 갈색 스프레드는 샌드위치에 바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려야만 했었다.


재미난 것은, 그걸 바르지 않는다고 해서 입맛에 맞는 샌드위치가 된 것이 절대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샌드위치는 맛이 없었고, 저녁마다 뜨끈한 국과 흰쌀밥이 그리워 밥상 앞에서 눈물을 삼켜야만 했고, 음식 때문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야 했던 진정 토종 한국인이었던 나는, 결국 홈스테이에서 오랫동안 살 순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길 떠나면 어딜 간단 말인지.. 한국에서조차 한 번도 자취를 해본 적 없기에 너무 걱정이 되었고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홈스테이에서의 계속된 일련의 사건들이 나가겠다는 내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해 주었다.




홈스테이의 나날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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