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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서울 구경

by Kelly You


1. 창경궁


혜화역 근처에서 피자를 먹고, 걷기 싫어하는 만3살 아이가 탄 수레같은 탈것을 친구랑 니가 끌겠다, 내가 끌겠다고 실랑이하며 창경궁까지 걸어갔다. 혼자 걸었으면 지루했을 수도 있었는데 서로 끌어주며 밀어주며 금새 창경궁에 도착했다. 여차하면 어둠이 내려앉을 것 같은, 그런 어스름이 낮게 깔린 오후의 늦은 끝자락. 물품 보관함에 아이 탈것과 남은 피자를 넣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보관함 위에 그냥 마음대로 올렸다. 남은 피자 두어 조각과 아이 탈것, 가져갈테면 가져가라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 손을 잡고 궁을 거닐었다. 궁 여기저기서는 해설사와 이야기를 듣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틈에 섞여 창경궁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싶었지만 아이가 주변을 뛰어다니며 떠들어대니 그런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아이랑 함께 다니는 여행은 매번 다음을 기약해야 하지만, 사실 매번 다음을 기약하는 것 또한 재미의 한 부분이다.


친구가 궁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소나무들이 정말 예뻤고 한 폭의 예전 그림을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조금 어두워지고 궁 건물들 내부에도 불이 켜지자 마치 그 안에 진짜 누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저 문이 벌컥 열리며 여봐라, 게 웬 소란이냐! 하며 한복을 입은 누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상상.


예쁜 곡선을 그리는 처마를 올려다보니,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밤하늘과 색 조화가 정말 멋있었다. 검정 복면을 쓴 사나이가 짚신을 신고 저기 야트막한 궁궐 담을 넘어 침입해 처마 위를 타다닥, 달리며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넘는 그런 상상도 해 봤다. 그러면 저 멀리서 횃불을 잔뜩 든 보초병사들이 누구냐! 하고 쫒아오겠지.


어둠이 조금씩 내리깔리자 사람들은 어디선가 하나 둘씩 청사초롱을 들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걸 본 아이는 자기도 갖고싶다고 졸랐으나 우리 둘 다 그 초롱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어 그저 안된다, 없다고만 했다.


궁에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고 우리는 물빛연화라는 미디어 아트를 보기 위해 연못가로 향헀다. 그곳은 이미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미디어 아트는 분명 멋있었을 것 같았지만, 그걸 보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서울이 이렇게도 변했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고즈넉하게 지키고 있는 창경궁이 고마웠다.


2. 조계사


창경궁을 떠나 버스에 올랐다. 호텔까지는 버스로 세 정거장인 짧은 거리였지만, 기사님이 중간에 조계사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그쪽으로는 버스가 가지 않는다고 이야길 하셔서, 황급히 아무데나 내렸다. 그리고 아이랑 난 호텔이 그리 멀지 않아 걸어도 되는 거리라서 지하철을 타려는 친구와 인사를 나누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풍물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모르게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도로 전체가 통제된 채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거기서 풍물패가 신나게 풍악을 울리고 있었다.


북소리, 장구소리, 꽹과리소리, 너무 신명나는 가락에 어깨춤을 들썩이자 아이도 신이 났는지 탈것에서 내려 덩실 덩실 춤을 춰댔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았는데, 풍물패가 그들을 초청하자 다같이 신나게 춤을 추고 거리는 순식간에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아이와 친구와 나도 그들 틈에 섞여서 사진도 찍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크게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뭔가에 점점 이끌리듯 도로 안쪽으로 자꾸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화려한 불빛이 보여서 불나방마냥 그쪽으로 걸었다.


알고보니 조계사에서 다음 달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그날 대규모 연등 행사를 한단다. 누군가 아이를 보고 예쁜 연등을 선물해주셨고, 우리는 조계사도 구경하고 계속되는 풍악 행렬도 구경했다. 조계사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하늘에 빼곡히 메달려서, 밤하늘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부처님 오신날이 이렇게 흥겹고 즐거울 수 있다니 부처님이 만약 다시 오신다면 중생이 즐거워해서 기분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날만큼은 모두 ‘인생은 고해’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지 않았을까.


그렇게 호텔로 돌아갔지만 밖에서 들리는 축제소리는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시끄러워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아까 우리의 흥겨웠던 모습을 생각하며 저 축제 사람들도 우리처럼 기분 좋을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다 용서되는 기분이었다. 불심이 생긴건가..



3. 청와대


다음날 우리는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는 창경궁과 같이 또 인산인해였지만 그도 그럴 것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용산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관람이 가능하게 되었고, 누가 되든 새 대통령은 청와대로 다시 복귀하지 않겠느냐 하는 예상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사람들은 다시 청와대가 관람 불가능해질 것을 걱정해 기회가 있을 때 얼른 구경하자는 마음이 커진 게 분명했다.


청와대 건물을 실제로 보자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상상했던 것보다 청와대 건물이 크기도 했고, 늘 티비에서만 보던 그런 것들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자꾸 티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부로 들어가자 역대 대통령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자 마음이 더 착잡해졌다. 나이 들어서 돌아가신 대통령은 차라리 행복이다. 총탄에 살해당한 대통령, 스스로 생을 마감한 대통령, 파면 당한 대통령, 감옥살이에 고생한 대통령들 얼굴을 주욱 훑어보니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들이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청와대건만, 그들은 여기서 행복했을까. 여기서 권력과 명예를 얻었겠지만, 그 권력과 명예란 지금은 모두 스러져버리고 없다. 그저 사막의 신기루 같이, 아무리 달려가도 결국 실제하지 않는 그런 것.


역대 대통령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아이가 누가 죽었냐 누가 살아있냐를 물어대서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세 분을 가리키며 저 분들은 아직 살아계시고, 이명박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을 주욱 가리키며 저 분들은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이야기했다. 그곳에서는 다들 평안하실까.


전 대통령들이 모두 떠나고 없는 자리에, 청와대는 관람객들을 맞아 샹들리에만 빛나고 아름다웠다.


영부인들 사진이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왔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념에 따라, 지역에 따라, 진영에 따라 과와 오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육 여사에 대한 평가는 박 대통령에 비해 늘 후한 편이다. 그 분의 총기어린 눈망울을 보자니 육 여사가 40대에 그렇게 총탄에 가지 않았으면 우리 현대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또 문득 궁금해졌다.


육 여사가 떠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심적으로 많이 방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그 후 박정희 전 대통령도 총탄에 떠났으니, 부모님 두 분 모두를 그렇게 보내야만 했던 박 전 대통령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념을 떠나, 한 사람으로써 참으로 딱하다. 나도 딸이 있지만 그런 참극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는 T답게 통계를 생각해 본다.


부모님 중 엄마가 40대에 돌아가실 확률? 그리고 총을 맞아 돌아가실 확률? 그리고 두 분 다 총을 맞아 돌아가실 확률? 아무리 계산을 못해도.... 아마 이 확률은 0.00000000000001%가 아닐까...


내 이런 잡스런 생각처럼 청와대의 화려한 샹들리에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의 여러 장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함께 여기저기로 부서지고 있었다.


덧없구나, 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산들바람을 맞으며 잠시 앉아서 쉬었다. 아이 신발에 돌이 들어갔다고 해 신발을 벗겨 탈탈 털어주었다. 친구와 아이와 나는 웃었지만, 이 공간은 비극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자꾸 난다. 아이는 철없이 자기는 대통령이 될 거라고 얘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어서 대통령이 더 이상 아니게 된 것도 잘 알고 있고,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하는 시위 현장도 우연찮게 본 적 있는 아이가, 자기는 대통령이 될 거고, 그리고 칭찬을 많이 받는 대통령이 될 거라고 한다. 집안 사람 그 누구도 아이에게 대통령이 되어라고 한 적 없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청와대를 거쳐간 인물들을 한명씩 되짚어보면 절대 아이에게 대통령을 하라고 할 수가 없다. 아이가 뭐라고 떠들든, 그저 나처럼 청와대에 놀러 와서 ‘아이고 이들 참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평범한 소시민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소시민, 그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우리는 청와대를 떠났고,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대통령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텅 빈 청와대. 그 곳엔 앞으로 또 무슨 일이 펼쳐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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