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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Jan 19. 2024

돌고 돌고 돌고

회사문화 답사기 7

91년

지방지점으로 전배 발령을 받았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여 서울생활 3년이 지났고 그 사이 대리진급도 했던 터라, 고향으로 가는 것이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산지점으로 출근했다.

맡은 영업 아이템은 팩시밀리, 영업 대상처는 공공기관 및 지자체였다. 첫 직장 신도리코에서는 기업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했었기에 공공기관 대상 영업은 처음부터 영업프로세스를  다시 경험하고 익혀야 했다.


찻 번째 영업준비를 했다.

조달청 부산지청을 방문하여 메이커별 팩시밀리 조달구매 실적을 열람하고 시장수요와 마켓셰어를 파악했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든 기존 제품의 경우 기존  판매실적 파악을 통해 시장규모를 파악하고 메이커별 경쟁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영업 및 마케팅 전략수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영업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신도리코, 제록스, 대우전자 순으로 시장은 형성되어 있었고 40:50:10 정도의 마켓셰어를 보이고 있었다.


삼성전자 팩시밀리는 단 한 대도 실적이 없었다.

그 해 처음으로 공공시장에 진입하여 조달등록을 마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이유였다.


혼자서 공공영업을 담당했고 전임자도 동료도 없었기에  어디서부터 영업을 전개해 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두 번째  영업준비를 했다.

부산시내 지자체 및 공공기관 리스트를 전화전호부 책에서 찾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에는 직접 조달구매를 하는 공공기관은 거의 없었고 부산시청을 중심으로 15개의 구청이 팩시밀리 조달판매 영업의 주 대상처였다. 시청과 15개의 구청 내 통신계와 예산계를 집중적으로 찾아갔다.


당시 팩시밀리는 통신장비로 분류되어 통신계 담당자(주사) 님이 구매계획과 예산승인 요청을 하고 예산이 반영되면 기종을 선정하여 구매요구서를 예산계로 넘기는 공공구매 업무프로세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영업준비를 했다.

'구매담당자의  마음'을 잡고, 하반기 추경예산 및 내년도 본예산에 '대당 구매예산 잡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국가기관의 경우 조달청에 등록된 상품을 구매할 때 당초 잡은 예산을 100%에 가깝게 소진하는 것이 구매의 원칙이었다. 만약 구매담당자가 예산을 남기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예산절감'했다고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해에 부여받을 예산이 깎일 우려가 있기 때문에 확보한 예산은 초과도 절감도 하지 않고 꽉 채워 소진하는 것이 그들의 구매생리임을 알았다. 덤으로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엎고 새로까는 이유도 짐작하게 되었다.


기기의 공공구매 프로세스는 해마다 사용 중인 기기의 감가상각 년수가 도래하거나, 신규부서 발생 등으로 인한 신규수요로 구매계획 수량을 결정하고 대당 구매예산을 책정하여 매 년 9월부터 기초계획을 잡고 10월에 예산부서로 심의를 올린 후 12월에 확정되는 일정이었다.


시청과 구청 통신계의 구매담당자와 구매결정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주 얼굴을 비추면서 친분을 쌓는 일이었다. 매일 4~5개의 구청 통신계를 방문했다. 시청과 구청을 합하여 16개 사이트얐으니 주 2~3회는 방문하는 꼴이었다.


첫 방문에서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명함을 교환하고

구매담당자(계장님 또는 주사님) 께 제품에 대한 특장점을 설명하고 조달등록단가를 알려드리는 정도였다.


재방문이 숙제였다.

제품홍보는 한두 번이면 끝나기에 재방문에서는 구매담당자와 인간적으로 친숙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구매담당자별로 어떤 기호가 있는지? 취미는 무었인지? 선호하는 음식과 식당은 어디인지? 대화의 소재는 주로 어떤 것인지? 해당 기관에서 몇 년간 근무했는지? 진급이나 전배계획은 없는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집안에 경조사는 없는지? 자가용이 있는지? 어느학교 출신인지? 군생활은 어디서 했는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마치 학교 담임 선생님이 된 것처럼, 중매장이처럼 고객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성향과 기질까지 감안해야 했다.


오늘은 무슨 소재로 대화를 이어갈까?

매 번 서너가지의 소재를 정하고 구매담당자께 질문을 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나누도록 유도하였다. 자주 방문하다 보니 어떤 날은 대화의 소재꺼리를 준비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종종 그랬다.


그런 때는 '점심 챤스'를 사용했다.

"계장님. 지나가다 보니 구청 앞이어서 들렀는데 마침 곧 점심시간이네요. 구청 구내식당 점심이 맛도 있고 가격도 저럼하니 함께 식사하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그러면 구청 계장님은 웃으시면서

"민간업자에게 앋어 먹으면 큰 일 납니다. 한 끼에 800원이니 제가 살께요" 그러셨다.


10개월 정도를 시청과 구청 통신계 투어 주 2회이상으로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며, 어떤 날은 점심을 얻어 먹으며 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박카스를 들고가서 통신계 전 직원분들께 나누어 드리고~~~ 마치 보험영업사원처럼!


초겨울로 접어들던 10월 말경.

A구청 통신계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연도 팩시밀리 구매계획 15대 예산을 삼성전자 가격에 맞추어 올렸고, 올 해 추가예산이 있으니 3대를 먼저 구매하겠다고 하셨다.


해가 바뀌고 2월이 되자 B구청, C구청 등 10여개의 구청에서 구매를 해주었다. 시청에서도 꽤 많은 수량을 발주했다. 시구청의 본예산 집행이 끝나고 결산 결과 삼성전자 팩시밀리의 마켓쉐어가 30% 정도를 점유했다. 어떤 구청은 경쟁사 제품만 계속 사용했는데 전량 삼성 팩시밀리로 교체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 시점 해당구청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경쟁사 부장님께서 계면쩍게 웃으시며 '영업 좀 살살합시다" 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후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영업에서 판매대수와 점유율을 높여 나갔고, 몇 년 뒤에는 교육청을 상대로 한 PC 조달영업에서 9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는 성공스토리도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도 숨은 조력자 선생님이 계셨다.(다음 회에 게재 예정)


공공기관을 상대로 성공하는 영업비밀은 '돌고 돌고 또 도는 것'이었다. 단, 정신줄은 똑바로 부여잡고 돌면 안된다고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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