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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Mar 12. 2024

눈 딱 감고 잘랐다

회사문화 답사기 17

99년 겨울 삼보컴퓨터로 이직 후 지사장 직무를 맡게 되었다. 어제까지 삼성브랜드로 세일즈를 하던 곳에서 경쟁브랜드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5년간 쌓아놓은 삼성브랜드 M/S를 삼보브랜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정리하고 세일즈 전략을 기획하였다.


☞고객의 마인드를 잡아라


첫 번째로 주력한 활동은 삼성브랜드로 세일즈 하면서 맺어놓은 고객관계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몇 년간 세일즈를 통해 친숙해진 구매결정권자 고객그룹을 리스트로 정리하고 브랜드 전환에 거부감 없이 나를 신뢰하고 지지해 줄 핵심고객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


두 달간 매일 10군데의 학교를 방문하면서 컴퓨터 기종선정을 하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실업계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특히 자주 인사드리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A정보고등학교 선생님은 실업계고등학교 정보화담당 선생님 모임의 리더 셨기에 제일 먼저 이직사실을 알리면서 도움을 청했다.


"선생님. 제가 목표한 것이 있어서 회사를 옮겼습니다. 그동안 삼성브랜드 보급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지지해 주신 그 성원을 저에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삼보브랜드로 선생님과 학교에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조만간 정보화담당 선생님들 저녁모임이 있으니 자리에 참석하여 인사하고 삼보브랜드 홍보를 하라고 하셨다.


모임 당일 저녁, 회의 후 식사를 하는 일정이어서 간식과 음료수를 준비하고 참석하였다. 선생님의 소개로 바뀐 명함과 신제품 컴퓨터카탈로그를 돌리고 간단히 제품의 특장점을 설명할 기회도 가졌다.

물론, 그날 저녁 식사비용도 공식적으로 후원했다. 그리고 인사의 기회를 가졌다.


"삼성브랜드 세일즈 할 때 찾아뵙지 못하여서 죄송했습니다. 어제까지 삼성 세일즈 하던 제가 오늘은 삼보 브랜드로 인사드립니다. 브랜드 선택을 고민하지 마시고 저를 선택해 주시면 선생님들 학교에 꼭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말을 올리고 90도 인사를 했다.

이후 브랜드 스위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Early Sales Promotion을 하라


인턴 세일즈맨 1기를 선발했다. 6개월간 세일즈 트레이닝 후 정규직 전환심사로 입사가 가능한 기회여서 많은 응시자 가운데

4명을 선발했다.


3개월 뒤에는 지역 내 중고등학교 컴퓨터 보급프로젝트가 시작될 시점이어서 미리 홍보세일즈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지점 내 250여 개 중고등학교 리스트와 학교별 구매예정수량을 기록하고 기존 사용 브랜드, 학교의 구매결정권자, 영향력자, 브랜드 선호도를 조사항목으로 잡아서 정보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인턴의 첫 번째 임무였다.


그들에게 균등하게 지역과 학교를 배정해 주고 한 달간 3회 이상 학교를 방문하고 추가정보를 기록하도록 임무를 주었다.


두 달째는 학교별 구매예정수량을 기준으로 방문일자, 고객반응, 세일즈 결과 등을 기록하고 스티커를 붙여서 표시할 수 있는 대형 전지 사이즈의 현황판을 만들어서 사무실 벽을 가득 채웠다.


인턴과 멘토 직원들은 매일 세일즈에서 돌아오면 현황판 앞에 가서 방문한 학교를 체크하고 고객반응을 스티커로 붙이게 했다.

삼보브랜드 구매검토의사에 대해 '초록(호의적반응), 노랑(중도적반응), 빨강(소극적반응)'으로 나누어 붙였다.


물론, 스티커를 붙이고 일과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학교별 스티커 색깔의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초록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 지?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나서 그날의 세일 활동을 마무리했다.


3개월째 세일즈 전쟁이 시작되었다.

5대 브랜드(삼성, 삼보, 엘지, 대우, 현대) 교육용 컴퓨터 세일즈맨들이 동시에 지역 내 학교 선점을 위해 총력전을 벌였다.

달 전부터 인턴사원들을 학교별로 배정하여 순회방문을 시켰고 조사된 학교별 구매의향도에 따라 빨간색 학교를 노란색으로 그리고 초록색으로 바꾸기 위한 서비스 프로그램도 미리 준비하였던 터라 수주확정을 짓는 학교가 매일 늘어났다.


당시는 학교에 충분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기에 컴퓨터용 책상과 네트워크공사 비용이 빠듯한 상황이었다. 이에 학교별 구매수량에 따라 삼보브랜드 컴퓨터 구매 시 사은품으로 적정범위의 컴퓨터 책상 또는 네트워크공사 무상제공 프로모션을 걸었던 것이 주효했다.


☞세일즈가 맞지 않던 인턴을 잘랐다


인턴 중 한 직원은 유독 땀을 많이 흘리는 직원이었다. 말수도 적고 자신감도 다소 부족하여 인턴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를 낼지 염려되던 직원이었다.

두 달간 세일즈 정보입수 방문기간 동안에도 일일방문숫자와 정보수집 내용도 다른 인턴에 비해 열위였다. 실전이 전개된 삼 개월 차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 주간이 지나면서 인턴들의 수주확정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 주간이 지나니 구매대상 학교 중 30% 정도가 수주 또는 실주현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문제의 인턴은 수주가 없었다. 동기들이 현황판에 금색 스티커를 붙이고 수주수량을 적어나갈 때 그는 침묵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과장으로부터 문제의 인턴이 세일즈 사고를 쳤다는 보고를 해왔다.

한 학교에 터무니없이 많은 서비스물품을 제공하기로 문서로 적어주고 컴퓨터 수주를 해 온 것이었다. 적자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 알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 것이어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다음 날, 해당 학교로 과장을 보내서 수주를 반납하고 무상으로 교사용 컴퓨터책상과 사은품세트를 소량 제공하는 선에서 마무리짓게 하였다. 신입직원의 실수에 대해 유감의 표명도 정중하게 하고 오게 하였다.


문제의 인턴과 면담을 했다.

전 직장에서 내부업무 관리직으로 일했던 그는 영업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타인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고객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도 어렵다 보니 하루에 여러 곳을 방문하는 활동이 힘들었다고 했다. 본격적인 수주경쟁이 시작되고 동기들은 수주를 하는데 본인은 성과가 없던 차에 과한 서비스품목을 제시하여 수주를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B사원. 삼 개월간 고생 많았다. 세일즈는 타고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 맞지 않을 수 있는 직무야. B사원이 부족하거나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대로 세일즈를 계속하면 B사원이 성취를 맛보기도 전에 패배감에 스스로 다칠 것 같아. B사원은 꼼꼼하고 정해진 규칙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적성과 역량에 더 부합하는 것 같아.

미안해. 서로를 위해서 정리하자."


인턴사원들과 함께 뛴 삼 개월간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컴퓨터 보급사업 결과는 약 1천대 규모의 수요에서 350여 대의 수주로 1위 삼성 55% 의 뒤를 이어 35%를 달성하면서 마무리했다. 불과 1년 전 동일한 프로젝트에서 삼보브랜드는 12% 였기에

브랜드 스위치 세일즈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서 기뻤으나 B사원을 내보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송별회식자리를 마련하고 B사원을 격려해 주었다. 그는 얼굴이 발그레한 채 연신 땀을 흘리며 말했다.


"지사장님. 참말로 영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디더. 죄송합니더..."


신입 세일즈맨들을 보면 B사원이 가끔씩 생각난다.

내게 원망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지낼까?

잘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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