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무게
김대리는 임대차 계약서를 책상 가득 펼쳐놓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율이가 까치발로 조심스레 따뜻한 차가 담긴 머그잔을 김대리 앞에 놓아주었다.
“하율아, 아빠가 우리 건물 한눈에 보이게 만들어 볼게.”
김대리는 엑셀을 열고, 빈 셀을 하나하나 벽돌처럼 쌓아올렸다.
건물과 비슷하도록 층은 세로로, 호수는 가로로 채워나갔다.
각 층과 호수가 가지런히 자리 잡아 뼈대가 생기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김대리는 계약서를 집어 들고,
만들어 놓은 칸에 채워 넣을 항목들을 고민했다.
'만기, 보증금, 월세, 관리비 이 네 가지가 핵심이구나.'
'임차인들의 이름과 연락처도 필요하겠다.
이건 별도로 표 하나를 만들어서 관리하자.'
클릭, 입력, 엔터.
탁 탁 소리와 함께 경쾌한 리듬이 반복되었다.
비었던 칸들이 하나 둘 채워지며, 뼈대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층을 바꿀 때마다 김대리는 스크롤을 올려 전체를 훑어봤다.
위층, 아래층, 월세 란이 비어 있는 칸, 월세 관리비 모두 꽉 들어찬 칸…
마치 건물 복도를 따라 걸으며 문마다 새 이름표를 붙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엔 합계 줄을 작성했다.
굵은 테두리를 딱 치고, 각 셀들을 더하는 수식을 입력한 후 엔터키를 탕! 하고 경쾌하게 쳤다.
드디어 표 전체가 하나의 건물처럼 완성되어 눈 앞에 서 있었다.
김대리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우리 집이 눈에 들어오네.
계약서 뭉치일 땐 막연했는데, 이렇게 정리를 해 놓으니 확실히 보인다."
표를 들여다보던 김대리의 시선이 보증금 합계를 나타내는 셀에서 멎더니, 불안하게 흔들렸다.
'보증금이 이렇게나 많구나. 은행 대출도 있는데.'
김대리는 매 월 작성하는 재무제표 파일도 함께 열었다.
자산 항목에 건물 매입가와 함께 매입에 들어간 비용들을 추가로 입력했다.
'매매가 뿐 아니라, 취득세와 중개수수료 역시 건물의 '취득원가'로 기록해야지.'
아파트 매도 이후 텅 비어 있던 부채 칸에도 입력할 것들이 생겼다.
'보증금도 부채고, 은행 차입도 부채지. 둘을 합치니까 금액이 어마어마하네..'
그날 밤, 김대리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희윤과 하율이 평화로운 숨소리를 내고 있는 포근한 밤이었지만,
김대리의 머릿속은 부채의 크기가 주는 압박감에 압도되어 있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늦도록 뒤척이는 김대리는, 밤 새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며 가위에 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