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10]

초보 임대인

by Kema

낯설지 않은 일이 없었다. 생각대로 풀리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셀프 등기와 은행 대출 승계는 차라리 식은 죽 먹기였다. 서류만 왕창 준비하면 됐으니.

문제는 그 다음 부터였다.



김대리 부부가 인수한 건물은 열여덟 개의 호실 중,

단 한 호실을 제외하고는 각양각색의 임차인들로 꽉 차 있었다.


위탁 중개인으로부터 임대차 계약서 뭉치를 받아든 김대리는 곧장 입주 현황 파악에 착수했다.






계약서만 믿었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다.


계약서 상 임차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실제 보증금과 월세가 계약서와 일치하는지,

만기는 언제인지...


이런 것들이 확인이 되지 않으면 폭탄을 끌어안는 거나 다름없다.

특히 실제 보증금이 매매할 때 확인한 계약서보다 더 많다면 재앙이었다.



게다가 만기가 이미 지나버린 계약서도 수두룩했다.

구두로 갱신을 한 건지, 했다면 언제까지로 한 건지를 계약서만으로는 알 도리가 없다.

만기 현황이 파악되야 미리 준비라도 한다.

갑자기 차례로 "지금 나갑니다" 하면 큰일이었다.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려면, 최대한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게다가 소유주 변경 사실을 모르는 임차인들이 월세며 관리비를 이전 소유주에게 송금해 버리면?

남의 통장에 들어간 돈을 돌려받는 일만큼 고단한 일도 없다.


김대리는 일단 계약서에 적힌 연락처를 정리해서,

각 세대 모두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입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건물을 인수하게 된 김대리라고 합니다….’


김대리는 문자를 쓰다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었다.

다음 문구를 뭐라고 하지… 날씨 얘기를 섞어야 하나.. 곧 추석이니 명절 얘기를 꺼내야 하나.



‘다름이 아니오라, 9월 15일 부로 입주하고 계신 건물의 소유주가 변경되어 월 차임 및 관리비 납입을 위한 신규 계좌를 안내 드리고자 합니다.


유라은행 124-890203-10-221 예금주 : 김대리


풍성한 한가위를 앞두고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기존 계좌로 납입 시 차임 및 관리비 납입 효력이 없사오니, 착오 없으시길 부탁 드립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문자를 다 쓴 김대리는 전송 버튼을 누르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이게 뭐라고 떨리냐..'


뭐 하나 쉬운게 없다.

회사에서 업무 메일을 써 본 경험이 문자 작성에 약간의 도움이 됐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렇게 하나씩 해 나가면 된다.

김대리는 발송한 문자를 다시 읽어보다 ‘건물의 소유주’가 자신임을 새삼 깨닫고는 기분이 오묘해졌다.






“당신 누구야? 사기꾼 아니야?”



이런 상황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뒤늦게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입주민들은 김대리가 건물을 매수했다는 사실을 꿈에서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하룻밤 사이에 등장한 '신규 소유쥬'라니.


누구나 다짜고짜 이런 문자를 받으면 피싱이 아닐까 의심하기 충분했다.



대부분은 부동산에 확인 전화를 걸어 소유주 변경이 있었는지와,

문자에 찍인 예금주가 소유주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입주민들은 그러는 대신 문자가 발송된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몹시 흥분한 채로.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믿냐고!!”


김대리는 최대한 조리있게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사태는 악화될 뿐이었다.

애시당초 문자만 보내는 게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일을 빨리 처리하려다 더 꼬여버리기만 했다.






잔뜩 흥분한 채 김대리를 보이스피싱 일당으로 몰던 입주민을 비롯,

‘알겠습니다.’ 혹은 ‘그렇게 할게요’ 등과 같은 답신을 보내지 않은 세대는 총 일곱 가구였다.


직장인이 대부분에 대학생이 두 가구.

낮 시간대에는 집에 없을 확률이 높았기에, 퇴근 이후와 주말을 활용해 방문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자신이 낯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라는 것.

상대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면 본인은 천 배는 더 불편해져 얼어붙는 성격이다.

초대받지도 않은 세대의 문을 두드린다는 건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안녕하세요? 새로운 임대인입니다!”


문을 두드린 후,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김대리는 미리 생각해 둔 대로 밝게 외쳤다.



근처 상가 화장실에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일곱 가구의 입주민들을 모두 만나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를 치던 세대를 방문할 때는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잔뜩 겁이 났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며 인사를 건넸을 때 공격적이거나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일의 중요성을 김대리는 다시 한 번 느꼈다.

문자는 가장 오해를 부르기 쉬운 수단이다.

전화는 그나마 낫지만 얼굴을 맞대는 일에는 비할 수가 없다.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모든 세대와 연락에 성공했고, 임대 현황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김대리는 입주민들과 기존 소유주의 위탁 부동산에 부탁하여,

모든 임대차 계약서를 갱신하도록 하였다.


임대인을 자신으로 고치고, 만기는 현재 약정대로 작성하도록 했다.

이후 만기 시에는, 묵시적 갱신이 아닌 정식 서면 갱신이 원칙임도 모든 임차인들에게 고지하였다.


그리고 김대리는 밤 늦게 집으로 돌아와 임대 현황을 관리하는 엑셀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주 현황과 임차인 인적사항, 보증금, 월세, 관리비 등 적어야 하는 항목들은 명확했지만 어떻게 구성해야 월세와 관리비 납입 여부까지 한 눈에 확인하고, 만기 관리까지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밤은 깊었지만, 김대리는 늦도록 책상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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