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하다
“자아 다 끝났습니다. 한 부씩 챙겨가시면 됩니다. 잔금일 즈음 해서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가을 초입,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김대리는 퇴근 후 부리나케 지하철을 타고 달려와 부동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겨드랑이가 축축해질 정도로 긴장했지만, 정작 계약은 싱거울 정도로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내가 정말 그 큰 건물의 주인이 된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매도인 매수인 서로 신분증 확인 하시고요,
매수인분 여기 등기부등본 보세요. 건물 주소랑 소유주 확인 되셨지요?”
“말씀드린 대로 근저당 채권최고액 1억 2천만원 설정되어 있고요, 실제 대출은 1억 원입니다.
건물 앞에 있는 은행 지점에서 승계 받으시면 됩니다.”
“확인 되셨으면 계약금 송금 진행하시죠. 계약서에 계좌가 있습니다."
김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송금 버튼을 눌렀다.
순간, 한숨과 함께 묘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계약을 위해 ktx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온다는 건물주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장가도 들고 아이도 낳으며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굵직한 계약을 앞두고 있으려니 김대리는 다시 애숭이가 된 듯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의젓해 보여야 한다는 마음에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려 하였지만,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은 감출 수 없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부모님 연배의 건물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안함을 전하며 손을 내밀었다.
김대리는 허둥대며 손을 내밀다 찻잔을 엎고 말았다.
“이렇게 떠나보내려니 섭섭하군요.”
계약을 마친 매도인은 창 밖을 쳐다보며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가에 있는 깊은 주름이 그가 이 건물과 함께 보냈을 세월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도 치열하게 무언가를 쫓았던 거겠지...
김대리는 괜시리 마음이 뭉클해졌다.
“오빠, 우리 진짜 이거 사는거야?”
하율이의 머리를 빗어주며 희윤이 물었다.
“응.. 한번 저질러보고 싶어.”
희윤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현금이 턱없이 모자라잖아. 나머지는 어떻게 마련하지?”
김대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파트랑 주식을 팔자.”
“팔지 않는다던 원칙은?”
“예외가 있었잖아.
첫째, 현금이 필요할 때. 그리고 둘째는 더 좋은 투자 대상이 나타났을 때.
나는 이번이 바로 그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김대리가 희윤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세가 많이 껴있잖아. 갑자기 세입자들이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해?”
희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마이너스 통장 하나씩 만들자.
둘이 합치면 전세방 두세 개 빼줄 보증금은 될거야.
그리고는 꾸준히 모아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며 줄여나가는거지.”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하듯, 그러나 점점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아무것도 없던 우리가… 불과 5년 만에 여기까지 왔잖아.
이제는 더 큰 도전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절대 한 단계 위로 못 올라가.
우린 이미 깨달았잖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투자는 결국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를 지는 거라고 했잖아?
나는 우리 둘이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
희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우리 진짜 또 다른 시작이구나.”
김대리가 가져온 계약서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희윤이 중얼거렸다.
“다 잘 될거야.”
김대리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희윤을 꼭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