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16]

붕괴시키다

by Kema

“일단 페인트를 할까?”

김대리가 볼펜을 입에 문 채 물었다.


“그게 좋겠어. 페인트를 제일 먼저 해야, 나중에 묻을 걱정도 없고.”

희윤이 팔짱을 낀 채 방안을 둘러보았다.






둘은 건물 근처 철물점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한아름 사들고 왔다.

붓, 롤러, 프라이머와 흰색 페인트, 그리고 페인트를 덜어 쓸 트레이까지.


그림은 자기가 그리겠다며 하율이도 작은 붓을 하나 챙겼다.


“오빠… 우리 장갑 안샀다.”

바닥에 늘어놓은 준비물들을 보다 희윤이 말했다.


“그냥 하면 안될까? 조심하면 되잖아.”

김대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손에 페인트를 허옇게 묻힌 김대리가 헐레벌떡 목장갑을 사 왔다.

희윤은 온 몸에 페인트가 튀어 박힌 점이 찍힌 채 롤러를 굴리고 있었다.


“오빠, 싱크대 때문에 걸리적거려서 몰딩을 칠할 수가 없어.”

“음..그렇네. 싱크대는 어떻게 하지?”

“이것도 새걸로 바꾸면 돈이 엄청 들거야. 흰색 시트지를 붙일까?”


곰곰히 생각하던 김대리는 희윤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좋아. 시트지 붙이려면 어차피 분리해야 하니까 떼어 낼게.”


페인트를 칠하던 희윤은 작업을 멈추고 인터넷으로 시트지를 주문했다.

김대리는 싱크대를 살피며 어떻게 해체해야 망가지지 않을지 궁리했다.


“일단… 문짝부터 다 떼어내야겠어.”


싱크대 문에 달린 경첩들을 일일이 손으로 풀던 김대리는 드라이버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나 전동드릴 하나 사올게. 어차피 필요하잖아.”






“어이구 또 오셨네.”

철물점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전동드릴 있어요?”


“있지. 어디 집 고치셔?”

“네… 저기 건물을 저희가 샀거든요. 혼자 고쳐 보려구요.”


사장님이 입을 떠억 벌렸다.

“해보신 적은 있고?”


“처음입니다.”






“왜 또 오셨어?”

땀을 흘리며 건물과 철물점을 오가는 김대리를 보며 사장님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싱크대가… 다 풀어 냈는데 떨어지질 않아요.”

“싱크대 철거를 직접 하실려고?”


“네… 잘 떼어낸 담에 시트지로 마감해서 다시 설치하려고요.”

“하이고야. 대단들 하네. 저기 빠루를 가져가서 해야 혀.

실리콘이니 뭐니 잔뜩 쏴놔서 손으로는 못뜯을거야.”


김대리는 사장님이 ‘빠루’라고 부른 쇠지렛대를 들고 현장으로 뛰어갔다.

쇠몽둥이를 들고 달리니, 마치 영화에 나오는 살인마가 된 것 같아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빠!!!!!”

희윤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김대리가 조심스레 쇠지렛대로 떼어내던 싱크대 상부장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의자에 올라가서 작업을 하던 김대리는 그 충격으로 뒤로 나동그라졌고,

상부장은 하부장 위로 폭삭 쏟아져 내렸다.


희윤 옆에서 장난감 붓을 들고 벽에 그림을 그리던 하율이가 울먹거렸다.

“아빠… 아빠….”




김대리는 정신을 차리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군데군데 둔탁한 통증이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상부장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서는 아직도 먼지가 곰팡이 냄새와 함께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빠… 이러다 큰일 나겠어. 다치면 어떻게 해…”


희윤도 눈물을 글썽이며 김대리에게 다가왔다.

김대리는 하율이의 눈물을 자신의 볼로 닦아주었다.


“희윤이 네 말이 맞아. 싱크대는 안되겠어. 나같은 똥손이 할 수 있는게 아니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김대리가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하지만 욕실 도기 설치는 나도 할 수 있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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